<앞뒤가 앞뒤로 바뀐 세상> 복귀로부터 복귀(마지막화)

by 황준선

주상은 두통을 느꼈다.


머리가 아픈 게 아니라,

세계의 가장자리에서 무언가가 눌리는 느낌.

보이지 않는 테두리가

한 겹 더 얹힌 채로 움직이는 감각.


그가 관자놀이에 손을 올렸을 때

손끝에 닿은 건 살이 아니라

얇은 막 같은 것이었다.

부드럽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막이 흔들리고 있었다.


정신건강센터로 이송되는 길은

이상하리만치 매끄러웠다.

과장도 없고, 소란도 없고,

그저 절차처럼 흘렀다.


지후가 옆에 있었다.

언제나처럼 가까이 오지 않는 거리에서,

언제나처럼 먼저 말하지 않는 얼굴로.


“괜찮아요?”

주상이 물었다.


지후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 대신 말했다.


“지금은 조정 중이에요.”

“뭘.”

“당신이 무너질 수 있는 지점.”


주상은 그 말이

이 세계의 규칙을 떠올리게 했다.

앞뒤가 바뀐 사실을 드러내면

사람들의 잠재의식이 폭발하고,

미친 사람으로 격리되고,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설정.


그게 설정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 공포가 너무 정교했기 때문이다.


센터 안 공기는

병원의 공기와 달랐다.

여긴 치료가 아니라, 복구에 가까웠다.

지후가 주상 앞에 앉았다.


“이제 말해도 돼요.”

지후가 말했다.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권한 부여처럼 들렸다.


주상이 물었다.

“너는 누구야.”

지후는 잠깐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관리자.”

지후가 말했다.

“당신이 이곳에서 너무 깊이 들어가 버리지 않도록.”


주상의 입술이 마른 줄도 모르고 다시 물었다.

“여긴 대체 뭐야.”


지후는 주상의 얼굴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2030년.”

“현실과 구분이 되지 않는 가상환경이 가능해졌어요."

“당신은 그 환경에서, 세팅값이 정반대로 된 세계를 체험했고요.”


주상은 말이 없었다.

이런 설명을 들으면 모든 장면이 한 번에 무너져야 했다.

그런데 무너지지 않았다.


학교의 시험지.

법정의 판결.

병원의 질문지.

이혼정보회사의 조건표.


그것들은 ‘가짜’라기보다 ‘너무 진짜였던 가짜’였다.


“두통으로 이송된 건…”

주상이 묻자

지후는 짧게 답했다.

“종료하는 거죠.”

“당신의 인지와 감정이 설정값을 넘어섰어요.”



강제 입원 같은 설정은

세계관의 폭력이라기보다

사용자 보호 장치였다는 걸

주상은 그제야 이해했다.


지후가 물었다.

“원래대로 돌릴까요?”

그 질문이

마치 마지막 시험처럼 들렸다.

대단한 결심이 필요할 것 같았다.

영웅적인 결단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주상이 천천히 되물었다.

“돌린다는 건… 어떻게.”


지후는 말 없이 손을 내밀었다

“종료 버튼이에요.”

그 말이 너무 가벼워서

주상은 오히려 숨이 막혔다.


“끝이야?”

“끝.”

지후가 말했다.

“그리고 복귀.”


주상은 눈을 감았다.


그 세계에서 그는 2주를 살았다.


15분짜리 체험이라 해도,

그 2주는 그의 몸 안에

시간으로 남아 있었다.


주상은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후가 허공을 한 번 눌렀다.

버튼을 누르는 동작이었다.


세상이 멈췄다.

아니, 멈춘 게 아니라

정렬이 풀리기 시작했다.

벽의 결이 먼저 흔들렸다.

바닥 타일의 선들이 자기 위치를 잃고 떠올랐다.

공기 속 먼지들이 한 방향으로 흐르던 걸 멈추고 작은 격자에 붙었다.

소리가 먼저 접혔다.

그다음 빛.

그다음 무게.

마지막으로 감정.


마치 세계가 자기 자신을 압축 파일로 만들며 한 줄씩 접히는 느낌이었다.

픽셀 단위로 흩어지기보다는,

렌더링의 층이 하나씩 꺼지는 것에 가까웠다.

바람이 사라지고,

온도가 사라지고,

마지막에야 ‘현실감’이 꺼졌다.

지후의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렸다.

“괜찮아요.”

“정상 종료입니다.”


그리고 한 번의 완전한 정지.

주상은 눈을 떴다.


몸이 무거웠다.

갑자기 ‘무게’를 되찾은 것처럼.

그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장치를 벗었다.


손에 잡힌 건 생각보다 가벼운 기계였다.

그것이 그에게 2주를 준 것이었다.

벽면 디스플레이에 시간이 떠 있었다.

[15분 43초.]

주상은 멍하니 숨을 새었다.


“체험은 어떠셨나요?”

직원이 물었다.


주상은 한참 후에 말했다.

“너무 길었어요.”


직원이 웃었다.

“좋은 반응이네요.”

“대부분은 짧다고 하시거든요.”


주상은 그 문장이 이상하게 무서웠다.



밖으로 나왔다.

신호등은 초록이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건너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안도해야 했다.

그런데 안도보다 답답함이 먼저 왔다.

초록불에 건너는 사람들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주상은 집으로 가는 길에 지하철을 탔다.

전광판에서 뉴스가 흘렀다.

[편의점 간식 절도, 징역형 구형]
[수천억 사기, 집행유예 가능성]


주상은 화면을 몇 초 더 바라봤다.

문장이 머리에 들어오는 방식이 달랐다.

이전엔 익숙한 기사였다.

지나가면 끝나는 문장.


그런데 지금은 목 안쪽에 걸렸다.

그는 불현듯 그 법정이 떠올랐다.

간식 하나를 훔친 아이가

둥근 테이블에 앉아

배고픔을 말하던 방.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르기보다

상황을 복구하던 방.


반대로

수천억 사기 앞에서

사연을 잘라내고 결과를 들이대던 방.


그곳에선 큰 죄가 큰 무게를 가졌고,

작은 죄는 더 이상 커지지 않게 막혔다.


거꾸로 된 세계에서

정의가 제자리를 찾는 기분.


그게 시뮬레이션이라면,

지금 이 뉴스는 무엇이었을까.


지하철이 법원역을 지나갈 때 주상은 창밖을 잠깐 봤다.

법원 앞엔 사람들이 서 있었다.

누군가는 서류를 들고 떨었고,

누군가는 변호사와 짧게 말을 나눴다.


이곳에선

사연이 아니라

서류가 먼저였다.


주상은 창을 닫듯 눈을 돌렸다.



집에 가는 길에 식당에 들렀다.

15분의 시간이었지만 에너지 소모가 확실히 컸다.


주상은 계산대 앞에서 잠깐 멈칫했다.

손님은 정해진 가격을 그대로 계산했다.

주상은 카드 결제를 하면서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뒤바뀐 세계에선

손님이 음식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지불했다.


여기선

가격표가 진실이었다.

주상은 그게 틀렸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인 것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다음날, 두통이 남아

그는 병원에 들렀다.


흰 가운.

짧은 문진.

몇 분짜리 진료.


“스트레스 받으셨나 보네요.”

의사가 말했다.

“약 드시고 쉬세요.”


주상은 약 봉투를 들고 나오며

어제의 병원을 떠올렸다.


감기보다 바쁨을 묻던 의사.

증상보다 이유를 붙잡던 질문들.


여기선 이유가

시간 밖으로 밀려났다.


주상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학원 앞을 지나쳤다.


아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컴공대세가 끝난지가 언젠대~ 요즘은 전기 공학! 그 중에서도 배터리가 최고지!”

“야야 일단 시험이나 잘 보고 얘기해.”

“에혀 이놈의 시험. 난 돈 많은 백수가 꿈인데.”


주상은 멈춰 서지 않았다.

그저 지나쳤다.


그런데 머릿속엔

시험지에 보기를 추가하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수학 문제에 음악으로 답하던 아이들.

시험 보기를 다섯 개나 더 만들어 답하던 아이들.



강남에 갈 일이 있어 또 다시 대중교통에 몸을 맡겼다.

버스는 초록불에 출발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내릴 채비를 하는 것보니

정류장에 다 와가는 모양이다.


주상도 짐을 챙기던 차에

창밖에 옥외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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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은 광고를 보자마자

이혼정보회사의 상담 내용이 떠올랐다.

"이혼을 잘하려면 조건이 맞아야 해요."

"결혼은 사랑으로 하는 거죠.

저희는 이혼 전문이라 조건을 깐깐하게 따진답니다."


그곳에선 그 조건이

헤어짐을 깔끔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곳에선

그 조건이

결혼을 오래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둘은 방향이 다른데,

문장은 이상하게 같았다.


주상은

정상 세계로 돌아왔는데도

정상이란 단어만 떠올려도 속이 울렁거렸다


그는 문득

거울 속 자기 얼굴을 봤다.


정상으로 돌아온 게 맞는데,

정상이 더 낯설었다.


그 세계에서

사람들은 빨간불에 건넜다.


그건 규칙의 반전이었지만,

주상이 정말로 잊지 못하는 건

신호등이 아니었다.


법정이 작은 죄 안에 절절한 내용을 풀어내고,

그러나 큰 죄에는 예리한 칼날을 들이대던 방식.

병원이 약보다 질문을 먼저 내밀던 방식.

학교가 답보다 탐구를 먼저 허락하던 방식.


뒤바뀐 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날 밤,

주상은 검색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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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은 한참을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마우스를 움직였다.


구매하기.


주상은 클릭했다.


주문 완료.


그는 의자에 기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밖에서는 초록불에 사람들이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주상은 빨간불이 켜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어쩐지

조금 더 진짜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