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가 앞뒤로 바뀐 세상> 이혼정보회사

by 황준선

병원을 나오자 공기가 차가웠다.

주상은 목까지 올라온 숨을 천천히 내렸다.


병원은 이상했다.

의사는 약을 말렸고,

증상보다 이유를 물었고,

한 환자의 진료 시간은 30분이 넘었다.


"정말 바빴습니까, 아니면 마음이 조급했던 겁니까?"

그 질문이 몸을 지나

삶 전체로 번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주상은 다음 장소가 조금 두려웠다.


멀리서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지후는 여전히 가까이 오지 않았다.

그저 확인만 했다.

주상이 병원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주상이 어떤 질문을 들고 나왔는지.

주상은 모른 척했다.


이 세계에서 누군가의 시선을 사실로 만드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는 주머니 속에서 종이를 한 번 더 접었다.

병원에서 받았던 질문지였다.

약보다 먼저 바꾸라고 했던 것들.

그리고 그 아래에

지후가 적어준 짧은 주소가 있었다.


이혼정보회사 ‘리셋(Re-Set)’

주상은 한 번 웃을 뻔했다.

웃음이 아니라

입술 끝이 잠깐 올라갔다.

이 세계에선

결혼보다 이혼이 먼저였다.



리셋

‘리셋’의 입구에는

큰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다.

결혼은 경험입니다

이혼은 실력입니다

깔끔한 이혼이 다음 결혼을 더 좋게 만듭니다

오래 버티는 결혼은, 서로를 낡게 만듭니다


대기실에는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다들 깔끔한 옷차림이었다.


얼굴에는 기품이 아니라

‘준비된 태도’가 있었다.


누군가는 이혼을 앞두고 있었고,

누군가는 이미 두 번쯤 해본 사람처럼 보였다.


리셋의 상담사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어떤 이혼을 원하시나요?”


주상은 잠시 멈칫했다.

이 문장이 너무 자연스럽게 들려서

오히려 목 뒤가 서늘해졌다.


이혼을 잘하는 커플

상담실 벽에는 성공 사례가 붙어 있었다.

8개월 만에 상호 합의 이혼

재산 분할 분쟁 0건

양육권 협상 2주 내 마무리

지인 소문 확산 방지 98%

이혼 후 재혼 매칭 성공률 73%


‘이혼 성공률’이라는 단어가

이상할 만큼 선명했다.


주상은 생각했다.

여기서는

결혼이 목표가 아니라

‘다음 결혼을 위한 과정’이었다.


그럼 중요한 건

한 사람과 오래 사는 능력이 아니라

깔끔하게 헤어지는 능력이다.


그 논리는

이상하지 않았다.


이 세계에선

모든 것이 거꾸로였으니까.


그런데, 매칭 방식은 낯익었다

상담사가 말했다.

“자, 먼저 조건 확인할게요.”


주상은

그 말에서 숨이 잠깐 멎었다.


조건.


그 단어는

이 세계가 아니라

이전 세계의 언어 같았다.


상담사는 아무렇지 않게 서류를 펼쳤다.

“학력은요?”

“재산은 어느 정도 모아두셨고요?”

“키는요?”

“부모님 배경은요?”

“형제 구성은?”

“부모님 건강 상태는?”

“집은 자가인가요, 전세인가요?”

주상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건…

너무 익숙한 질문이었다.


“이혼이 목적이면…”

주상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왜 이런 걸…”


상담사는 웃었다.

“이혼을 잘하려면요.”

“조건이 잘 맞아야 해요.”


주상은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이해되는데 불쾌했다.


상담사는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이혼이 감정 문제라고 생각하죠.”

“아니에요.”

“이혼은 기술이고, 협상이고, 정리입니다.”


그는 펜으로 체크 표시를 하며 말했다.

“학력이 비슷해야 대화가 빠르고요.”

“재산이 비슷해야 분쟁이 적고요.”

“부모 배경이 비슷해야 외부 개입이 줄고요.”


주상은 그 문장을 들으며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결국.”

주상이 말했다.

“조건을 보고 매칭하면

이혼이 쉬워진다는 거네요.”


상담사는 아주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혼은 감정이 아니라 정산이니까요.”


조건이 사랑을 대신하는 순간

대기실에서
다른 상담이 들려왔다.


“남성분은 자산이 20억 이상이셔야

이혼 시 분쟁 가능성이 낮습니다.”

“여성분은 전문직이시면 협상력이 좋아요.”

“부모님이 개입하지 않는 성향이 중요합니다.”

“양가가 조건 비슷하면 소송으로 가기 전에 합의가 됩니다.”


그 말들은

너무 정확해서

너무 낡았다.


이혼을 잘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그 말이

이 세계에서는

‘정상’처럼 굴러가고 있었다.


본질이 빠진 이유

상담사는 주상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원하시는 이혼 스타일이 있으신가요?”

“조용한 이혼, 빠른 이혼, 감정 없는 이혼, 아니면 서로 성장하는 이혼?”


주상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은

모든 것이 뒤집힌 세상에서

처음으로

‘정상적인 척하는 질문’처럼 들렸다.


그는 조용히 물었다.

“… 사람들은 왜 이혼정보회사를 왜 찾나요?”


상담사는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곧바로 말했다.

“더 나은 결혼을 위해서요.”


그 대답은

너무 매끈했다.


“그럼…”

주상이 다시 물었다.

“결혼은요?”


상담사는 웃었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거죠.”

“우리 이혼정보회사는 이혼을 자알~ 할 수 있는 남녀를 매칭시켜 드려요.”

"그러니까 이런저런 조건을 따지는 거죠.

그 이유가 아니면 결혼에 조건을 왜 따지겠어요?"


주상은

상담사의 친절하고 상냥한 말투에서 나오는 그 말이,

이혼을 염두하지 않은 결혼에 조건을 따질 이유가 있냐는 말이,

어쩐지 자신을 놀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복도 끝의 시선

상담실을 나오자
복도 끝에 창이 하나 있었다.

창밖엔 사람들이
빨간불에 건너고 있었다.

주상은 그 장면을 보며

자신이 무엇을 본 것인지 생각을 정리했다.


결혼을 잘하기 위해 조건을 묻던 방식이

이혼을 잘하기 위해 그대로 옮겨왔다.

이곳에서는 결혼을 사랑으로 하는구나.


주상은 이곳이 정말로 앞뒤가 바뀐 세상이 맞는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그때, 주상은

멀리서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지후였다.

지후는 주상이 이 장면을 보고

어떤 질문을 품는지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주상은 자기 생각을 꺼내지 않았다.

꺼내는 순간

누군가의 잠재의식이 터질지도 모르니까.


주상은 문을 밀고 밖으로 나왔다.

초록불이 켜졌다.

사람들은 멈췄다.


빨간불이 켜질 때까지

그는 잠깐

멈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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