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살 차이 남매를 키우다 보니 동네에서든 어린이집에서든 또래 엄마아빠들과 교류가 잦다. 재미있는 것은 아이를 1명 키우는 집은 '절대 둘째는 없어!'라고 단호히 주문을 외우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아이를 2명 낳아 키우는 집은 '셋째는 없어..!?'라고 외우는 주문 끝에 망설임이 묻어난다는 것이다.
우리 집도 그렇다. 분명 둘 키우는 게 너무 힘들고 지치는데, 아내는 '셋째'를 딱 잘라 끊어내지 못한다. 오히려 가끔 (예를 들면 유치원 다자녀 혜택을 3명부터 받는다거나 할 때 우발적으로) '이럴 바에 하나 더 낳지!'라는 말을 해서 나를 아연실색하게 만들곤 한다. 나도 말로는 '안 돼'라고 끊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
왜 그런가 들여다보면 아무래도 아이들끼리 노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인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싸울 때는 무섭게 싸워서 '저게 남매인지 원수인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2살 차이 꿀떡이와 찰떡이가 햇살 아래 소꿉놀이를 하는 것을 보면 가끔 너무 예뻐서 아내와 한참을 가만히 쳐다보곤 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첫째와 둘째가 너무 다르다는 것에서 떠오르는 궁금증이다. 첫째 꿀떡이는 12개월 전후부터 책을 미친 듯이 읽곤 했는데, 둘째 찰떡이는 21개월이 된 지금도 책을 부메랑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대신 찰떡이는 운동신경이 탁월해서 킥보드를 금방 섭렵하고, 힘이나 균형 감각이 좋아서 '얘는 운동인가' 싶기도 하다. 부모는 같은데 남매가 워낙 다르니 '셋째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들곤 한다.
마지막으로는 생명의 소중함과 신비를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첫째 꿀떡이가 태어났을 때는 우리 부부의 신혼이 없었던 느낌이었다. 아내와 수다를 떨다 갑자기 '우리 결혼식 때 꿀떡이 누구한테 맡겼지?'라고 이야기하다 웃은 적도 있었다. '아 우리 결혼식 때는 꿀떡이가 없었네?'라는 게 당연해 보이면서도 우리 부부에게는 낯선 느낌으로 다가왔다. 꿀떡이가 없었던 시절이 흐릿하게 느껴질 만큼, 아이의 존재감이 컸다. 둘째 찰떡이도 마찬가지다. 가끔 찰떡이가 태어나기 전 꿀떡이만 데리고 다니던 시절의 사진을 보면 가슴이 몽글몽글하면서도 신기하다. 찰떡이가 태어나고 난 이후, 우리 가족은 태초부터 넷이서 시작했던 것 같다. 그만큼,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이 신비롭다 보니, '둘째 찰떡이가 없는 것은 상상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다가 셋째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둘째가 너무 예뻐 '셋째는 얼마나 예쁠까'하는 그런 흐름이 이어지는 것이다.
아내에게 '셋째는 없다'라고 단호히 선을 그었지만, 사실 꿀떡이와 찰떡이를 키우는 아내를 보다 보면, '더 많은 아이들이 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자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내는 친절하고 상냥하고 선한 사람이라, 나도 옆에서 아내의 모습을 보고 배우는 점이 많지만 무엇보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에게서 아내의 그런 좋은 성품이 순간순간 묻어 나올 때 셋째 생각이 가장 많이 나는 것 같다.
생각은 자유니까, 셋째 생각은 계속하려고 한다. 혹시 복권에 당첨되거나 (사지도 않으면서) 일론머스크처럼 자산가가 되면 (회사를 다니면서) 또 모를 일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