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꿀떡이가 태어나고 통장을 만든 적이 있다. 아이가 생기고 인터넷이나 주변 귀동냥을 통해 알아보니, 아이가 태어나고 매달 나오는 이런저런 수당으로 아이들 통장에 넣어 복리를 노리는 사람들도 있고, 투자를 하여 재테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을 흉내 내보려고 이것저것 통장을 만들었는데, 내 투자도 못하는 한심한 마당에 아이들 돈으로 투자를 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3살쯤만 되면 영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낸다고 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첫째 꿀떡이가 또래 중에 똑똑하다고 하시니 귀가 팔랑거려 이것저것 알아봤는데 정말 너무 비싸서 우리 형편에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설령 형편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프로그램이 자유롭게 놀고 관찰하는 것보다는 공부에 중점이 맞춰져 있어 조금 꺼려지기도 했다.
첫째가 태어난 지 만 3년 반 정도, 둘째가 태어난 지 어언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는 아이들에게 돈도 많이 모아주지 못했고 유명한 사립 교육도 시켜주지 못한 못난 아빠가 되었다. 더욱이 작년 1년 아빠 육아휴직을 하며 돈을 모으긴커녕 버티기도 급급했으니 사립 교육은 언감생심이다.
그래도 뭐 밝고 건강하게 잘 크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나는 아이들에게 뭘 물려주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화목, 그리고 함께함
아마 다른 건 몰라도, 아내와 나는 꿀떡이와 찰떡이에게 '화목'을 경험하게 해주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신혼 때부터 아이 둘 낳고 지금까지 딱히 싸운 적이 없다. 거의 대부분 내가 혼나는 일 ('잠옷을 매일 갈아입는 이유가 뭐냐'와 같은)이고, 사소하게 삐지더라도 오래가지 않는다. 결혼 후에는 아내가 나의 가장 좋은 친구고 말동무라 퇴근 후 다른 곳으로 향한 적도 없고, 식탁에 앉아 하루종일 있었던 일을 말하며 아내와 내가 깔깔대는 것이 가장 좋은 힐링이다.
퇴근 후 아내와 내가 대화하고 있으면 꿀떡이나 찰떡이가 후다닥 뛰어와 질투하며 끼어든다. 말을 잘하는 꿀떡이는 손을 들고 '나도 할 말 있어요!' 하며 인어공주나 백설공주 이야기를 펼쳐놓기도 하고, 말이 서툰 찰떡이는 엄마 옆에 폭 안겨 나를 경계한다. 요즘엔 나를 노려보며 '말 하디마!'하면서 손으로 X자도 그린다. 화목(和睦)이 '서로 뜻이 맞고 정다운' 상태라고 하는데, 아내와 내가 딱 그렇다.
생각해 보면 '가정의 화목함'은 집이 아닌 다른 곳이나 다른 방식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나 또한 지금껏 살며 힘든 순간을 지날 때 일종의 내력 (內力)으로 작용한 것은 통장의 돈이나 비싼 사교육보다 오히려 가족으로부터 오는 지지나 사랑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숨은 가치들이었다.
작년 육아휴직을 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다. 커리어가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부모님도 걱정하셨고, 주변 사람들도 경제적으로 한창 모아야 할 때에 쉬어가는 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나 또한 '이게 맞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당시 코로나 시기에 만삭의 아내가 첫째를 가정보육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여 안쓰러움에 결정했던 것이었다. 덕분에 2023년 한 해 동안 아이들의 통장에 많은 돈을 넣어주진 못했지만, 네 가족이서 완전체로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힘들어하던 아내는 웃음을 되찾았고, 첫째 꿀떡이는 사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아빠가 하루종일 집에서 책을 읽어주고 함께 놀러 다니고 대화한 덕에 말이 일취월장 늘었다. 둘째 찰떡이는 태어나자마자 웃음이 가득한 집의 온기를 느끼며 자라날 수 있었고.
물론, 통장에 돈을 모아주거나 특별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도 여러모로 아이들에게 너무나 좋은 일이다. 나도 아내와 계속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기도 하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만 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비교해 볼 때, 어린 우리 꿀떡이와 찰떡이에게 '화목한 가정'의 기억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육아휴직은 돌아보니 참 좋은 선택이었고, 앞으로도 '화목을 지켜나가는' 준으로 의사결정을 해 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