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by 제로

사람들은 정의하는 걸 참 좋아한다. MBTI가 대 유행을 탄 것도, 무슨무슨 심리 테스트라고 하며 별별 테스트들이 인스타 스토리를 점령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런 간단한 테스트들이 그 사람의 모든 걸 정의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게 분류하는 것에 대해 조금은 반발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편이지만, 짧다면 짧은 인생에서 딱 한 가지, 사람을 정의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기질이 우울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가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마음의 감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도 아닐 뿐더러, 누구나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사람은 무너지고 나약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너는 기질이 그렇지 않으니 우울하지 않아 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만 태생이 우울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상황에 맞닥뜨리지 않아도 태생적으로 외로움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전자로, 그리고 상황이나 어떠한 계기에 의해 우울해지는 사람들을 후자로 나누는 나름의 기준이다. 대부분의 경우 후자는 전자를, 전자는 후자를 이해하지 못 한다. 이렇게 세상이 밝고 네가 가진 게 이렇게 많은데 왜 우울해라고 말하기 십상이고, 너는 참 밝아서 좋겠다라고 말하기 좋으니까.


누구나 아픔은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따져봤을 때 내게 큰 아픔이나 큰 시련이 있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고독하고 외롭다. 사람은 다들 고독한 거라지만, 결국 갈 때는 혼자 간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외로움을 사무치게 느낄 필요는 없지 않냐고 세상에 소리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가끔은 정말 지구에 불시착한 게 아닐까, 나는 이 세상에 안 맞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적도 많았다. 사실 지금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긴 신호를 기다리며 횡단보도에 서있을 때, 세상은 물렁물렁한 젤리같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 젤리에도 맞지 않아 비명을 지르는 꼴이라니 하며 자조적인 웃음을 지을 때가 있었다.


너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그 말을 들을 때면 내심 놀라기도 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니었어? 그렇게 물어보면 고개를 젓기 십상이었다. 그러고보니 나도 애인이라는 관계에 있는 사람이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너무 속상할 것 같긴 해서, 바로 사과를 했던 기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을 드러내는 것에 늘 벽이 있어 말하지 못 해 기어코 부서진 관계들. 그런 관계들을 몇 번씩 지나칠 때마다 결국에는 그런 생각이 든다. 나랑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외로움을 받아줄 존재가 있을까. 이렇게 관계를 맺고 끊어지기를 반복하다가 언젠가는 만나게 될까.


로맨스를 다룬 매체들을 보며 늘 그런 사랑에 감동받고 꿈꾸게 된다. 어떻게 저렇게 모든 걸 바쳐서 사랑할 수 있을까. 주인공들의 행동에 감명을 받아 울다가도 스크린이 꺼지고 현실로 돌아오면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과연 나도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누구한테서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는 사랑은 너무나도 숭고하고 거대한 것이라서, 내게는 너무 벅차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젓게 된다. 그런 영화같은 사랑은 영화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연애도 안 하고 있는데 무슨 결혼이에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가끔은 든든한 내 편을 갖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결국 상대도 사람이라는 점이 그 마음에서 조금씩 거리를 두게 만든다. 사람이잖아. 무한히 베풀 수 있는 사랑이 있을 리는 없다. 나에게 베풀어지는 사랑이 거대해질수록 나도 그만큼 베풀 수 있어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할까.


마음이 고장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고장이라기 보단 태생이 그렇게 태어난 느낌이다. 형태는 달라도 어쨌든 하나의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과 다르게, 뭔가 부족하게 태어난 느낌. 마음 자체가 80%로 이루어져 있어서 사무치게 외로워 사람을 찾아 헤매다가도 그만큼 줄 마음이 없어 관두게 된다. 언젠가는 이 생각의 결론을 만나게 될까. 아니면 내가 짓게 될까. 조금 더 살아보면 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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