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파마와 매립지의 제로 웨이스트 도전일기_다섯번 째 이야기
5.
나는 위선자일까.
문제가 생겼다.
세상사 제 멋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다만, 벌써부터 큰 난관에 부딪치다니. 이제껏 곤란했던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일. 어쩔 수 없잖아. 두 손 들 수밖에 없는 일. 바로 먹고사는 문제다.
이제까지 제로 웨이스트는 약간의 불편만 감수하면 제법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수세미를 바꾸고, 휴지를 친환경 휴지로 바꾸는 일. 한 마디로 방 안에서 쉬이 할 수 있는 일. 세상에 스며들지 않는다면 세상에 해를 끼치는 일도 적을 수밖에, 그것만으로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우쭐했다니.
물론 얼마 전까지 카페에서 일할 때에도 어쩔 수 없이 쓰레기가 발생하는 꼴이 일어나긴 했다. 화장실 휴지를 치우기 위해 일회용 장갑을 낀다거나, 손님들이 남기고 간 플라스틱 컵을 치우는 일. 하지만 그건 내 영역 밖의 일이기도 했다. 내 카페가 아닌 이상 테이크 아웃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없었고, 굳이 들고나가겠다는 손님에게 웃기지 말라며 마시고 가야 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어쩐지 여기서부터 위선자의 향기가 술술 풍기는 것 같다) 혀를 쯧쯧 차면서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은 오롯이 내 몫이다.
며칠 전, 책을 출간했다. 소설은 오래도록 간직해 온 꿈이었고, 앞으로도 간직할 꿈이다. 기왕이면 출판사의 도움을 받고 싶었으나, 어떻게든 세상에 나가고 싶었기에 독립 출판을 감행했다.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내 힘으로 해낸 일이다. 누구에게도 검증받지 않은 소설을 쓰고, 그 소설이 밉지 않게 북 디자인을 하고, 인쇄소를 찾아 샘플 인쇄를 했다. 여기까진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최종 인쇄를 넘긴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아 최종 인쇄 파일을 훑어보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보고 또 봐도 보이지 않던 오타와 비문이 왜 갑자기 툭툭 튀어나오는 것인가. 문장들은 약 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신의 부족함을 마구 뽐냈다. 이미 최종 인쇄가 넘어갔으니, 몇 백 권의 책이 쑥쑥 나올 테니, 단념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도저히 팔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새벽 세 시에 다시 일어나 수정 작업을 했다. 다음 날 아침, 인쇄소가 열기 무섭게 전화를 했지만 이미 인쇄는 끝난 후. 그렇게 나는 환경 파괴범이 되고 말았다. 몇 백 권의 내지를 다시 뽑는 일을 하고야 만 것이다. 고친 페이지를 일일이 찾아 갈아 끼울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했다간 또다시 무슨 사고고 날 지 몰랐다. 고민 끝에 결국 새로 뽑기로 했다. 입만 살았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 이런저런 자괴감에 휩싸였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여기까지 했으면 좋았으련만 그럴 리가 있나. 고행은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것 아니었던가. 최종 인쇄된 책에는 파본이 섞여 들어 있었고, 그 파본에 대한 책 역시 다시 인쇄해야 했다. 그렇게 환경 파괴 마일리지가 착착 쌓였다. 그래, 이쯤 했으니 끝내야 마땅하건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독립 출판은 유통까지 오롯이 내 몫이다.
판매를 해줄 서점을 찾고, 포장까지 해서 보내야 한다. 손님에게 가기 전에 몇 개의 손을 거쳐야 하니, 책이 망가지지 않게 신경을 써야 한다.
샘플을 제외한 책이 오염되지 않게, 비닐 포장을 하거나 종이 포장을 해야 했다. 첫 번째 서점에선 종이 포장을 받아줬기에, 예전에 사둔 유산지에 정성스레 포장했다. 메시지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 중이라 종이 포장을 했으니 양해를 부탁드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여기까지 좋았으나, 유산지 한 장이 택배의 마수로부터 보호해 줄 리가 없다. 그렇게 나는 '제로 웨이스트'를 언급하고서도 뽁뽁이로 둘둘 마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젠장. 차라리 '제로 웨이스트'라는 단어를 하지 말 걸 그랬다. 멍청해도 이렇게 멍청할 수가. 박스는 또 어찌나 꽝꽝 싸버렸는지.
택배를 쓰지 않기 위해 기왕이면 방문 입고를 하려고 했으나, 시국이 시국인 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 19를 벗어난다고 할 지라도 모든 서점을 돌아다닐 수도 없다. 뽁뽁이와 나는 이 책을 다 팔 때까지 함께 할 수밖에 없다. 대안이 있으면 좋겠지만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종이 포장은 책이 잘 보이지 않는 관계로 비닐 포장을 선호한다면 그 역시 완강하게 거부할 용기도 생기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바를 얻자고 망가진 책을 감수하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기왕이면 책을 잘 팔고 싶으니까. 환경은 뒷전이 되고 말았다. 순식간에 위선자가 되어 버린 기분이다. "전 위선자예요. 얼마나 우습겠어요." 한탄을 하고 난 뒤에도 마음이 편치 않다.
나는 늘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해 왔다. 이제껏 내가 좋은 말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좋은 환경에 있었던 덕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나와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시도라도 해보고 말하라고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부끄럽다. 적어도 부끄러움을 아니까 다행 아니겠어요?라고 웃어 넘기기에도 마음에 걸린다. 생활에 있어서 최대한 절제를 하고 있으니, 일 정도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모르겠다. 적당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걸까.
명쾌한 결론으로 이 글을 끝내고 싶지만 아무래도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좀 더 좋은 방법을 계속 찾아봐야겠다는 말만 늘어놓을 수밖에.
아무래도 나의 제로 웨이스트는 뽁뽁이와의 사투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