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없는 글이 있을까? 혼자 쓰는 일기조차도 나의 하루를 털어내거나 정리하는, 기록하는 목적이 있다. 누군가는 어떤 사건에 대해 고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기도 하고 선행을 알리기 위해 쓰기도 한다. 무언가를 본 후, 그게 너무 좋아서 감상을 남기지 않고는 도저히 잠들 수 없는 기분이라 쓰기도 하고, 갑자기 떠오른 찰나의 아이디어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쓰기도 한다.
글쓰기의 시작이 되는 이러한 목적은 원래 순수한 것이었다. 목적이 있어서 즐겁게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의도'가 불쑥 끼어들 때가 있다. 그때부터 쓰던 글은 어쩐 일인지 오히려 목적성을 잃는다. 사전 상의 의미를 살짝 대입해 생각해 보자면, 목적은 목표에 가깝고 의도에는 결의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뭔가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특히 계약된 원고를 마감하기 위해 이러한 결의는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의도의 비중이 커지는 순간 글은 대부분 생명력을 잃는다. 평소 즐겨 먹던 토마토 스파게티의 맛을 조금 더 특별하게 내보겠다고 마지막에 고추장을 잔뜩 넣었다고 해보자. 물론 그것도 맛있겠지만, 그걸 처음 만들고자 한 토마토 스파게티라고 부르긴 애매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의도'의 위험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 채 어떤 결의로 글을 썼다. 다음 책을 얼른 내고 싶었고, 이번에는 기필코 많이 읽히고 싶다는 의도로 기획한 덕분에 즐겁게 쓰자는 목적으로 시작한 원고는 도입부에서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그렇기에 글을 쓰고 있다면 처음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목적이 무엇이든, 그게 하물며 자기만족이라 할지라도 기억만 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완성된 글이다. 사람들의 평가는 이후의 일이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만든 한 접시의 토마토 스파게티처럼, 우선 나부터 충족하려면 스스로 솔직해야만 한다. 오늘도 한글 화면 앞에 앉은 내게 하는 당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