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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Jun 16. 2024

일요일

| 일요일은 언제부터인가 내게 휴일이 아니게 되었다. 회사를 나온 이후부터 그랬을까.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일요일이라고 하면, 어쩐지 일요일의 기분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휴일의 분위기 같은 것. 예를 들면 동네를 산책할 때 문이 닫힌 상점을 볼 때. 혹은 해가 지고 있는 하늘을 볼 때 느껴지는 우울감. 그런 건 주 5일 혹은 6일로 일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어쩌면 일요일은 어린 시절부터 유지해 온 습관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다 문득 일주일 중 며칠이 더 그렇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혹은 일요일인지도 모르고 지나치는 순간도 있었다. 물론, '순간'이란 말은 비약이지만. 일요일을 느끼며 살 때는 확실한 무언가가 내 안에 있었다.


| 지금은 모든 것이 흐릿해져 버렸다. 어째서인지 모르겠다. 단순히 하던 일을 중단해서인지, 쓰던 소설의 진도가 더는 나가지 않아서인지 알 수 없다. 그냥 흐릿한 상태로 가만히 뜸 들이는 시간이 길어졌다. 성격 급한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요일. 일요일. 일요일. 일요일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기분으로 지내는 날들.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 오늘은 정말 일요일이다. 냉장고 속의 유통기한 지난 식품들을 몇 개 정리하고, 더는 먹지 않는 남은 김치통도 비웠다. 냉동실에 각얼음을 얼리고, 설거지도 하고, 음식 쓰레기도 버렸다. 바닥 청소를 해야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 오후가 언제까지나 기다려줄 것 같은 착각 때문인지 게으름이 길어진다. 그래도 일요일이니 괜찮다고 스스로 위안해보기도 하고.


| 예전에 알던 A는 일요일에는 전혀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일요일에 연락을 하면 다음 날이 되어서야 답장이 돌아왔다. A가 일요일 내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았고 오래 전 연락이 끊겼으니 영원히 알 수도 없게 됐다. 어찌 됐건 A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일요일을 뚜렷하게 가진 사람이었다.


| 쉬어가야 한다. 쉬는 중이라도 쉬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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