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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Apr 12. 2021

도시의 수많은 타인들, 그들의 연대가 돋보이는 영화

영화 '타인의 친절'을 보고나서


사람에게서 받는 감정적 상처, 그것은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으면서도 가장 피하고 싶은 요소일 것이다. 그리고 모순적이게도,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가 두려운 만큼, 사람과의 연대에서 얻는 행복도 크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역사를 되돌아보면 인간은 늘 타인과의 관계에 공부하고 분석한다. 상처 받지 않고, 더 큰 행복을 얻기 위해. 





도시는 이러한 인간군상의 모습이 도드라지는 대표적 공간이다. 개인과 집단, 경쟁과 연대가 공존하기에 도시는 매력적이면서도 모순적이고, 두려운 공간이다. 영화 ‘타인의 친절'은 이러한 도시의 특성을 주요한 배경으로 가져가 개인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결국 우리 사회의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그리고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곳, 뉴욕은 그러한 맥락에서 도시의 대표적인 특성을 지닌, 도시 중에서도 손꼽히는 도시이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뉴욕을 배경으로 영화는 개인들의 작은 행동들이 모여 큰 변화를 일궈내는 이야기를 선보인다. 도시의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영화 속 서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인공, 클라라의 이야기가 뉴욕을 배경으로 가장 먼저 펼쳐진다. 그리고 이 클라라를 중심으로 다른 주인공, 5명의 이야기도 함께 시작된다. 남편의 가정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에게만큼은 큰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 클라라. 남편의 차를 몰래 끌고 나와 뉴욕에서 아이들을 힘겹게 데리고 다니는 클라라의 모습은 눈물겹다. 국립도서관에서는 아이들에게 컴퓨터와 책을 접하게 하고, 오케스트라 연주회장 뒤편 쓰레기장의 주차된 차 안에서는 클래식을 들려준다. 


이렇듯 클라라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다소 억척스럽고, 청승맞아 보일지도 모르는 짓을 꿋꿋이 해낸다. 그러나 어떤 짓이든 할 기세처럼 보였던 클라라는, 결국 남편의 추적과 냉정한 뉴욕의 분위기에 차츰 부서지기 시작한다. 이 때 그녀와 아이들에게 각기 다른 다섯명의 손길이 다가온다. 





다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각기 다른 다섯명의 도움이 무조건적인 이타성에 근원하지 않는 데에 있다. 이들의 손길은 각자의 개인적인 결핍에서 시작한다. 이를 테면, 사회에서의 쓸모를 다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상실한 이에게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해 괴로운 이가 손길을 내민다. 과거 가족과의 가정사로 힘들어 본 적 있는 이가,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클라라에게 이해의 눈빛을 건넨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었다. 이 영화 속 타인들 간의 연대와, 구원은 안정적이고 마냥 행복하게만 보이는 이들에게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겪었던 결핍을 여전히 곱씹으며 괴로워하더라도, 그 기억은 타인에게 따뜻한 온정을 베푸는 매개로 작용한다. 그러니까,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개인적인 아픔을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서 선한 동력으로 활용할 줄 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덕분에 제목 '타인의 친절'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끔 했다. 







종종 그럴 때가 있다. 묘하게 사람 간의 연대에 있어 생각을 해보게 되는 때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아닌, 때로는 나에게서 완전한 타인이었던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상황이 그러한 순간을 야기한다. 과거로부터 다져온 관계나 특별한 이유, 목적에서 기인하지 않은 친절을 겪을 때. 그럴 때 '인생은 결국 혼자다'를 외치려다가도 다시 목구멍 밑으로 말을 삼키게 한다. 영화 '타인의 친절'은 오랜만에 종종 떠올렸던 이 기분을 다시 상기시키게 했다. 




살다보면 또 결국엔 혼자다라는 묘한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찾아 올 것이다. 그럴 때, 이제는 혼자 생각을 되씹으며 괴로워하기 보다는, 이 영화를 꺼내볼 수 있을 것 같다.



-원문링크: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3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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