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이라는 환상

교육에서 '기다림'은 왜 삭제되면 안 되는가

by 게으른 성실

"정답이 없는 질문을 하나 던져보겠습니다."


​회의실이든 교실이든, 이 한마디가 떨어지는 순간 공간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는다. 스마트폰 검색창에 입력하면 1초 만에 튀어나오는 지식이나 객관식 문항 앞에서는 앞다투어 입을 열던 사람들이, 오직 자신의 내면을 파고들어야만 꺼낼 수 있는 질문 앞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침묵한다. 조금이라도 정답의 궤도에서 벗어날까 두려워 흔들리는 눈빛들. 스스로 생각하고 끈기 있게 자신만의 답을 쫓는 '생각의 근력'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앙상하게 말라버린 것이다.


​우리는 지금 '효율성'이라는 달콤한 환상에 중독된 시대를 살고 있다. 클릭 한 번이면 최적의 경로를 알려주고, 챗GPT는 내 마음을 읽은 듯 매끄러운 문장을 단숨에 써 내려간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즉각적인 피드백이라는 축복을 내렸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은 '생각의 외주화'라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았다. 조금만 막혀도, 정답이 곧바로 보이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내 흥미를 잃고 펜을 놓아버린다. 끈기와 집요함이 사라진 자리에는, 타인이 만들어놓은 매끈한 요약본만이 남는다.


​그러나 인생의 진짜 비밀과 통찰은, 그 지루하고 미련해 보이는 '삽질'의 시간 속에 숨어 있다. 우리는 정답 없는 벌판에서 이리저리 흙을 파보고 헤매는 수고로움을 거쳐야만 비로소 일의 '디테일'을 온몸으로 감각하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숱한 삽질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실패와 좌절은, 우리에게 인간의 사고가 얼마나 잦은 오류를 범하는지, 그 생각의 빈틈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해 준다. 기계는 오류를 발견하면 차갑게 데이터를 수정하고 업데이트할 뿐이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에게 실패와 반성의 시간은 단순한 오답 노트가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모난 부분을 돌아보고 깎아내는 깊은 '숙성'의 과정이다.


​정답이 없는 곳에서 치열하게 헤매본 사람, 그 묵묵한 기다림과 반성의 시간을 견뎌낸 사람에게서는 대체 불가능한 짙은 풍미가 난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곁에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1초 만에 뱉어내는 기계의 차가운 정답으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이 뿜어낼 수 있는 고유한 향기다.


​물론 어른들의 딜레마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성과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내 아이가, 내 학생이 뒤처질까 불안한 마음에 우리는 자꾸만 조급해진다. 끙끙대며 엇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 답답함을 참지 못해, 결국 '효율성'이라는 핑계로 정답을 떠먹여 주고 지름길을 닦아준다.
​하지만 세상의 판도가 완전히 뒤집혔다. 지금은 AI가 인간의 지식과 논리, 심지어 코딩 능력마저 압도하는 거대한 시대적 전환기다. 시키는 대로 코드를 짜고 정해진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개발자(Developer)'의 빈자리는 이미 무서운 속도로 대체되고 있다. 이제 다가올 미래가 간절히 원하는 인재는, 완벽한 기계가 아니라 기발한 생각을 툭툭 던질 줄 아는 '기발자'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창의적인 발상을 그저 몽상으로 남겨두지 않고, 끝내 섬세한 창조물로 이끌어내는 힘. 그것은 화면 속 정답을 암기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무수한 삽질의 경험과, 그 거친 마찰을 기꺼이 견뎌낸 도전의 근육에서만 벼려진다.


​기술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1초 만에 답을 주겠다며 시간을 아껴주려 하지만, 교육에서만큼은 그 유혹을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아이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곁에서 묵묵히 버텨주는, 아주 미련하고 더딘 작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아이가, 혹은 당신 자신이 엉뚱한 길에서 멈춰 서서 헤매고 있다면, 불안해하지 말고 그 시간을 온전히 허락해 보자. 그것은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생각 근육을 찢고 다시 붙이며 성장하는 가장 치열한 순간일 테니 말이다.


​우리는 지금 아이들에게 무엇을 쥐여주고 있는가.
1초 만에 남의 답을 복사해 내는 '저렴한 기계'를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깊은 풍미로 세상을 이끌어갈 대체 불가능한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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