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써온 반성문, 우리는 무엇을 채점해야 하는가

by 게으른 성실

엔터 키를 누르고 정확히 3초 뒤, 나는 모니터 앞에서 숨을 죽였다.


화면 위로 매끄러운 텍스트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챗GPT에게 던져준 몇 개의 키워드가 완벽한 논리 구조를 갖춘 '연구계획서'의 서론으로 둔갑하고 있었다. 시대적 배경을 적당히 버무려 내며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그 문장들은 놀랍도록 정교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 내가 며칠 밤을 새워 쓴 것보다 훨씬 잘 썼다.

그 순간 내 온몸을 감싼 것은 기술에 대한 경이로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서늘한 전율이었다.


'결국 언젠가는 모든 사람이 이토록 쉽게 글을 쓰는 시대가 오겠구나.' 그렇다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 그리고 이 거대한 파도 속에서, 생각하고 글을 쓴다는 행위로 살아온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니터의 푸른 불빛 아래서 나의 존재 가치가 통째로 흔들리는 듯했다.

연구계획서가 이토록 완벽하다면, 아이들이 학교에 제출할 '반성문'은 어떨까.


상상해 보자. 누군가를 때렸거나 규율을 어긴 아이가 챗GPT를 켠다. "선생님께 제출할 반성문 1,000자를 써줘. 내가 얼마나 깊이 뉘우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감동적으로 작성해." 10초면 충분하다. 문법적 오류 하나 없이, 기승전결이 완벽하며, 교육자가 읽기에 가장 '바람직한' 반성문이 출력된다.

선생님은 그 매끄러운 텍스트를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통과'를 외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멈춰 서서 아주 무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채점하고 있는가?


나는 아이가 지우개로 수십 번을 지워가며 쓴, 삐뚤빼뚤하고 맞춤법도 다 틀린 진짜 반성문을 읽고 싶다. 분량이 단 세 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진짜'이기 때문이다.

AI가 써낸 완벽한 글은 결국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만들어낸 가장 그럴듯한 '평균값'에 불과하다. 수백만 명의 문장을 갈아 넣어 빚어낸 평균값의 언어에는 결코 휴머니즘이 깃들 수 없다. 인간이란 본디 불완전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과 찌질한 경험, 그리고 숱한 착오 속에서 튀어나오는 날 것의 목소리가 있어야만 하는 존재다.


글을 쓴다는 것은, 특히 자신의 과오를 돌아보는 반성문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사고의 형벌'을 받는 시간이다. 빈 모니터(혹은 원고지) 앞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곱씹고, 변명하고 싶은 내면의 찌질함과 싸우고, 알맞은 단어를 찾지 못해 머리를 쥐어뜯는 그 고통스럽고 더딘 시간. 그 과정 자체가 바로 '반성'이다.

그런데 AI가 이 모든 '창작과 성찰의 고통'을 클릭 한 번으로 증발시켜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은 고통 속에서만 자신을 대면한다. 그 끔찍한 막막함을 뚫고 나갔을 때 비로소 발견하는 성취의 기쁨, 깊은 성찰, 그리고 그 끝에서 이전의 나를 깨부수고 나아가는 '변혁'이 있다. 그것이 진정한 창의와 성장의 과정이다. 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생략된 채 오직 '결과물'만을 쉽게 손에 쥐는 시대라면, 결국 인간의 내면은 무한히 얄팍해질 것이다. 모든 것이 평범해지고, 모든 것이 무의미의 늪으로 가라앉아 버릴 것이다.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완성된 '텍스트'가 아니라,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겪어내는 '과정'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AI 뒤에 숨어 쉽게 정답을 얻어내는 아이들과 그 그럴듯한 정답표에 속아 넘어가는 우리 어른들에게 묻고 싶다.


AI가 완벽한 문장으로 당신의 죄를 대신 고백해 주는 시대. 고통 없는 100점짜리 반성문으로 위기를 모면한 아이는, 과연 자신의 진짜 삶에서도 '합격'을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완벽한 텍스트를 얻기 위해, 0점짜리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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