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기술의 파도 앞에서, 18년의 분필을 다시 쥐다

by 게으른 성실

"딸깍."


마우스 버튼 한 번을 눌렀을 뿐이다. 경쾌한 멜로디 위로 매끄러운 보컬이 얹혀 교실을 채웠다. 아이들의 입에서 "우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AI로 노래를 만드는 수업 시간. 불과 몇 초 만에 그럴듯한 결과물이 스피커를 뚫고 나오는 순간, 아이들은 열광했고 나는 알 수 없는 서늘함을 느꼈다.


나의 상상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결과물이 너무나도 쉽게, 그야말로 '딸깍' 한 번에 탄생했다. 신기함과 동시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인간 고유의 성역이라 믿었던 '창의의 영역'마저 AI의 영토로 편입되고 있다는, 부정할 수 없는 감각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기술은 늘 우스운 얼굴로 처음 교실 문을 두드렸다. '패들렛(Padlet)'이라는 디지털 도구를 처음 소개받았을 때, 나는 시큰둥했다. '칠판에 진짜 포스트잇을 붙이면 되는데, 굳이 화면에 가짜 포스트잇을 띄워야 해?' 하지만 지금 초등학교 교실에서 패들렛을 모르는 교사와 학생은 없다. 기술은 가랑비처럼 스며들어 어느새 교실의 풍경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사람들은 AI가 교육의 질을 상향 평준화시킬 것이라 환호한다. 모두가 '고지능'의 개인 교사를 곁에 두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교단에 선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과거 KTX가 처음 개통될 때를 떠올려 보자. 사람들은 반나절 만에 전국이 연결되면 지방이 발전할 것이라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오히려 모든 인프라와 인력이 서울로 빨려 들어가는 '수도권 집중화'의 가속이었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역설적으로 아이들의 격차는 잔인하게 벌어지고 있다. AI 리터러시를 갖춘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 더 끔찍한 것은 '의존성'이다. AI가 고민의 시간 없이 너무나 훌륭한 정답을 내어주자,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잃어가고 있다.


고민하고, 망설이고, 서투른 결정을 내리고, 결국 처참하게 실패해 보는 것. 그 뼈아픈 과정 속에서 굳은살이 배며 '인간다움'이 완성되는 것인데, 매끄러운 기술은 아이들에게서 '실패할 권리'마저 우아하게 앗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매년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최첨단 에듀테크 기기들의 전원을 끄고 나의 '가보'를 꺼내 든다.

낡고 커다란 종이. 거기엔 내가 온 열정을 다해 가르쳤던 한 아이의 온 가족이, 졸업을 앞두고 꾹꾹 눌러쓴 편지가 담겨 있다. 삐뚤빼뚤한 글씨 속에 담긴 눈물과 진심,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며 만들어낸 거친 온기. 그 편지는 풋내기였던 나의 교직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이정표다.


AI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조합해 청산유수처럼 말을 뱉어내지만, 결코 이런 투박한 큰 그림을 그려주지 못한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인간으로서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 앞에서는 침묵할 뿐이다. 정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고, 함께 눈물 흘리며 답을 찾아 헤매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미련하고도 위대한 행위다.


이제 교실에서 칠판과 분필은 자취를 감추었다. 스마트 스크린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낡고 거칠며, 쓸 때마다 뽀얗게 먼지가 날리던 아날로그의 감성이 사무치게 그립다. 화려한 기술이 눈앞에서 춤을 춰도,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공책에 연필로 문제를 적고 빨간 색연필로 투박한 동그라미를 쳐주던 그 '인간스러운 마찰력'을 잊을 수가 없다.


18년, 긴 시간 동안 쥐었던 분필을 마음속으로 다시 고쳐 쥔다. 이것은 과거로의 퇴행이 아니다. 거대한 기술의 파도 속에서 결코 휩쓸려 내려가지 말아야 할 단단한 닻을 내리는 일이다.


우리는 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낙관도, 무조건적인 두려움도 경계해야 한다. 딸깍 한 번으로 모든 것이 완성되는 시대에, 굳이 손에 먼지를 묻히며 칠판 앞에 서는 이유.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당신의 삶 속에서 기술과 휴머니즘이 어떻게 손을 잡아야 할지, 그 실체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가지고 있는가?


거대한 파도 앞에서도, 나는 여전히 서툴고 느릿한 인간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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