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결코 풀지 못할 13살의 알고리즘

0과 1의 시대, 논리가 박살 난 교실의 뜨거운 온도에 대하여

by 게으른 성실

수만 개의 데이터를 순식간에 학습한 인공지능이 전문직 시험을 가볍게 통과하고, 알고리즘이 우리의 내일 입을 옷과 먹을 메뉴마저 예측해 주는 시대다. 사람들은 이제 0과 1로 직조된 완벽한 데이터 베이스가 세상의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거대한 빅데이터의 경향성 안에서 인간의 행동마저 예측 가능한 통계로 치환되는 사회. 하지만 그 오만하고 견고한 착각은, 아침 8시 40분 초등학교 6학년 교실 앞문이 열리는 순간 무참히 박살 나고 만다.


​교단에 선 지 어느덧 18년. 이제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을 연차가 되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교실이라는 소우주 앞에서 턱턱 숨이 막힐 때가 있다. 내가 이토록 버거운데 이제 막 교단에 선 젊은 후배 교사들은 이 혼란을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들 정도다. 그 혼란의 기저에는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 특유의, 어떤 빅데이터로도 설명할 수 없는 지독한 '비합리성'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 논리와 이성의 스위치가 완전히 고장 난 듯한 한 아이가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수업의 맥을 툭툭 끊고, 교사를 교묘하게 괴롭히는 아이. 하루는 굳은 결심을 하고 아이를 불렀다. 눈을 다정하게 맞추고, 행동의 결과에 대해 가장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언어로 설명하고 설득했다. 아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선생님 말씀이 맞네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 순간만큼은 완벽히 이해한 것 같은 맑은 눈동자. 안도하며 교실에 돌려보낸 지 정확히 10분 후, 아이는 보란 듯이 예전의 무질서한 모습으로 돌아가 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주변 아이들의 역학 관계다. 이 문제적 소년 곁에 있으면 안 좋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아이들도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아이들은 마치 거대한 자석에 이끌리듯 그 소년의 주변으로 몰려든다. 부정적인 영향력을 상쇄하고도 남을 그 아이만의 기묘한 인력(引力)과 매력. 도대체 왜일까? 어떤 최첨단 인공지능도 이 비합리적인 또래 집단의 이끌림을 명쾌한 수식으로 풀어내진 못할 것이다.


​어른들은 흔히 아이들의 세계를 '순수'라는 낭만적인 단어로 쉽게 퉁치려 든다. 하지만 고학년 교실의 온도는 어른들의 사회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 어제까지만 해도 까르르 웃으며 팔짱을 끼고 화장실에 가던 아이들 사이에, 오늘 아침 돌연 서늘한 기류가 흐른다. 누구 하나 소리 내어 싸우지 않지만, 공간을 가득 채우는 팽팽한 긴장감이 교사의 피부를 찔러온다.


​눈빛의 각도, 책상을 밀어 넣는 소리의 크기 속에 수만 가지의 감정적 암호가 오간다. 이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아이들은 매일같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교사의 어설픈 온도계로는 도저히 잴 수 없는 이 미묘한 균열 앞에서, "둘이 싸웠니? 사이좋게 지내야지"라는 어른들의 얄팍한 처방전은 얼마나 폭력적이고 무력한가.


​때로는 이 비합리성이 예측 불가능성의 극치를 달리며 나를 완전히 녹다운시킨다. 전날 오후, 당장이라도 서로를 부숴버릴 듯 주먹다짐 직전까지 갔던 녀석들. 나는 퇴근 후에도 끙끙 앓으며 밤을 지새웠다. '어떤 순서로 면담을 하고 학부모에게는 어떻게 전달해야 갈등이 최소화될까?' 수십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완벽한 '갈등 해결 매뉴얼'을 짰다.


​그러나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한 다음 날 아침, 교실 문을 열었던 나는 허탈함에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어제 피 터지게 싸우던 두 녀석이 나란히 앉아 서로의 어깨를 치며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 너 어제 그거 해봤어?" 밤새 머리를 쥐어뜯으며 준비했던 나의 논리 정연한 중재 알고리즘은, 녀석들의 해맑은 웃음소리 한 번에 속절없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이런 날이면 교탁 앞에 서서 멍하니 아이들을 바라보게 된다.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무엇을 추구하고, 어떻게 반응하며, 어떤 기전으로 분노하고 또 용서하는 것일까.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평균치로 재단되는 시대다. 세상은 우리에게 끝없이 효율적이고 논리적인 인간이 되기를 강요한다. 하지만 13살 아이들은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인간은 결코 0과 1로 해석되는 납작한 데이터가 아니라고. 이 좁은 교실 안에는 땀내 나고 눈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아름다운 짙은 비합리성이 매일같이 요동치고 있다고 말이다.


​어쩌면 이 첨단의 시대에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완벽한 인공지능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 논리 밖의 펄떡이는 인간들을 서로 껴안고 살아가게 할 것인가'일지도 모른다. 계산되지 않는 감정의 요동과 끈적한 관계의 온도를 잃어버리고, 우리 스스로가 예측 가능한 뻔한 데이터로 전락해 버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비극 아닐까.


​오늘 당신이 머문 자리의 온도는 어떠했는가. 통계표처럼 차갑고 반듯했는가, 아니면 도무지 해석할 수 없는 짙고 뜨거운 혼란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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