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인 라멘은 무엇일까?

연남동. 사루카메. 마약탄탄마제멘_히로퐁 & 카메 라멘

by Gozetto

상상해보자. 만약 '나'가 '나' 그 자체라면 그 존재를 뭐라고 할 수 있을까? ... ... ... '뭘 잘못 먹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 글은 라멘을 먹고 쓰는 글이다. 대체 무슨 라멘을 먹었길래 뭘 잘못 먹고 쓰는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싶을 것이다. 애초에 이미 자기 자신인데 그것을 상상해보자니. 하지만 우리는 자신을 너무나 쉽게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 각각은 그 자체가 될 수 없는데도 말이다. 현실적으로만 생각해봐도 각자가 자기 자신을 A라고 표현하는 순간 A는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A'부터 심하게는 Z까지 수많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뒤이어 나온다. '나'가 '나' 그 자체인 경우는 이론으로만 존재할 뿐인 것이다. 재밌는 것은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데도 우리는 앞서 말했듯 너무나 쉽게 '나 = 나'라는 등식을 실제에 적용하며 살아간다. 때때로 "나다운 게 뭔데?"라는 중2병 대사를 속으로든 입 밖으로든 내뱉고 살면서 말이다. 때로는 나답다라는 것을 고민하고. 때로는 가장 나답다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대체 현실에서 살고 있는 '나'는 무엇일까?

대체 무슨 라멘을 먹고 이런 글을 쓰냐고 묻는다면 막 여름을 지나 가을로 넘어가던 1년 전 9월 처음 방문했던 연남동의 라멘집. 1년 정도가 지나 다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 막 일교차가 서서히 심해지며 더운 바람과 찬 바람 사이에서 어떻게 입어야 할지 고민하는 10월의 어느 날 방문한 연남동의 라멘집 사루카메의 라멘이다. 1년 전 9월에는 대표 메뉴인 바지락 육수의 카메 라멘을 먹었다면 이번엔 이름부터 마약을 떠오르게 하는 마약탄탄마제멘 히로퐁을 먹었다. '아 이 놈이 마약을 했구나.' 싶겠지만 아쉽게도 이 집의 라멘은 마약을 넣은 것처럼 중독적인 감칠맛으로 혀를 유혹할 뿐 마약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마약을 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저런 정신나간 생각을 하는 건가?'라면 이 라멘집의 풍경이 1년 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니 일단 들어보고 판단해달라 말할 수밖에 없겠다. 그래서 현실을 살고 있는 '나'는 무엇일까?

1년 전 9월은 아직 세계적 재난의 코로나로 모두가 움츠리고 있던 시기이다. 3번의 백신 접종을 다 맞고도 3번째 코로나를 8월에 걸리는 기염을 토한 뒤였기에 개인적으로는 6개월 쿨타임을 믿고 덜 움츠렸지만 사회 분위기에 맞게 KF 마스크를 쓴 채 돌아다니던 때이다. 즉, 저녁 시간에도 연남동에는 사람이 거의 돌아다니지 않았고 외국인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던 때이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연남동의 라멘 탐방을 다녔지만 거의 웨이팅 없이 식당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요즘 연남동의 풍경은 작년과 완전히 다르다. 마스크가 무엇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은 한 달에 한 명 보면 많이 보는 것이다. 마스크가 사라진 거리만이 아니라 식당 앞 풍경은 어딘가 어색하다. 가장 전성기였던 시기와 비교하면 손색은 좀 있어도 이른바 맛집들은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기 전에 이미 대기줄이 서있다. 하지만 단순히 대기줄이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구성원이 조금 달라졌다. 과거와 비교해 대기줄에 외국인들이 보인다.


연남동의 풍경이 바뀐 것에서부터 위의 정신 나간 듯한 생각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루카메라는 이 라멘집의 특성과 바뀐 연남동의 풍경이 서로 맞물리면서 냉수 마시고 정신차려야 할 듯한 생각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읽으면서 한 번 상상해보길 바란다. 코로나 이후로 한국에 오는 외국인들이 다양해지면서 연남동도 그 영향을 받은 듯하다. 노동자, 유학생, 관광객 등 숫자 자체부터 전성기 때보다 더욱 많아졌다. 그런 가운데 연남동을 방문한 외국인이 식사를 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대기줄에 걸어놓은 식당이 한국의 라멘집이다. 일본의 음식인 라멘을 일본이 아닌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그 중 핫하다고 일컬어진 혹은 일컬어졌던 연남동에서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풍경이 생경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느껴져 당황스럽다 여겼다. 하지만 단순히 당황스럽다고만 여겼다면 아마 꿈틀댄 생각은 꿈틀대기만 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미셰린 가이드 서울에서 따온 네이버 식당 소개에 보면 사루카메는 '혼마 히로토'라는 일본인 셰프가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라멘이 일본을 다녀온 한국인에 의해 시작되었든 한국이 좋아 머물면서 장사를 시작한 일본인에 의해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뿌리가 일본이라 해도 만드는 사람, 재료, 소비자들의 입맛 등이 일본과 너무나 다르기에 한국의 라멘은 단순히 일본의 음식이라고 단정해 말하기는 어렵다. 한국과 일본 사이 어느 곳에 위치한 음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셰프인 혼마 히로토 역시 다양한 국가에서 외식업 경험을 쌓은 셰프이며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 일본식 라멘에 새로운 맛을 가미한 사루카메의 라멘은 이미 뿌리로부터 많이 멀어진 라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사루카메 앞 외국인과 한국인이 뒤섞인 대기줄은 사루카메의 라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사루카메의 라멘은 더 이상 한국인만이 소비자가 아니다. 각국에서 온 다양한 외국인들의 입맛까지 더해진 이상 사루카메의 라멘은 뿌리로부터 멀어졌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라멘이라는 이름에서 멀어졌다.

소비자 뿐이랴. 이 식당의 풍경 중 갑자기 꿈틀대기 시작한 생각을 더욱 자극한 것은 흑인 종업원 분과 배경 음악,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식당의 라멘이다. 사루카메의 종업원은 총 3명이었다. 일본인으로 보이는 종업원 한 명, 한국인인 것 같은 종업원 한 명, 그리고 앞서 말한 흑인 종업원 한 명. 아마 유학생이지 않을까 싶은 그 종업원은 재밌는 상상을 하게 했다. 저 종업원 분이 본인의 고국에 돌아가 라멘집을 차린다는 상상. 아마 라멘이라는 이름으로 식탁에 오를 그 음식은 세계에서 다양한 외식업 경험을 한 일본인 셰프가 한국에서 운영하는 라멘집에서 흑인 종업원 분에게 전수되어 그의 고국에서 대중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 라멘은 과연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사루카메의 배경 음악은 이 상상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한다. 사루카메는 라멘집인데 배경 음악은 프랑스 샹송이다. 그런데 한국인과 외국인이 뒤섞인 대기줄처럼 생경하지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일본에서는 서민 음식이지만 한국에서는 고급화되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외국인이 더 이상 외국인이 아니게 느껴지는 연남동의 거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어와 일본어와 한국어 등 주방과 식당을 채우는 언어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루카메는 샹송과 함께 일본, 한국, 프랑스 등의 사이에 위치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그저 생활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를 흑인 종업원 분이 고국에서 라멘집을 차린다는 상상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라멘은 그런 재밌는 상상에 마지막 정점을 찍었다. 1년 전에는 바지락 육수가 일품인 카메 라멘을 먹었다면 1년이 지난 이번에는 탄탄면이자 마제소바인 마약탄탄마제면 히로퐁을 먹었다. 카메 라멘을 먹고는 합정에 있는 세상 끝의 라멘과 비교하며 중화면이지만 조금 얇은 듯하고 섬세하게 느껴지는 사루카메의 면을 무협의 연검에 비유했었다. 1년이 지난 후 먹은 마약탄탄마제멘 히로퐁도 그런 연검의 중화면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연검의 중화면은 땅콩 버터의 감칠맛과 함께 살짝 칼칼한 맛을 담고 있는 탄탄면 혹은 마제소바 소스를 검기마냥 품고 혀를 강타한다. 바지락 육수를 검기로 둘렀던 카메 라멘 때는 면부터 속을 풀어주는 시원함을 담고 있더니 마약탄탄마제멘은 혈도를 탁탁 점혈하듯 자신의 검기로 혀부터 시작해 입안 전체를 자극해 정신없게 만든다. 검기 사이사이로 씹히는 다진 돼지고기는 고소함을 더해주는 가운데 마제소바인지, 탄탄면인지 헷갈리게 한다. 이번에 먹은 마약탄탄마제면은 탄탄면인가 마제소바인가? 둘 사이 어딘가에 위치했다면 이 음식은 어느 국가의 음식인가? 애초에 라멘집에서 파는데 그렇다면 라멘인가? 프랑스 샹송과 다양한 언어가 퍼지는 식당은 한국에 위치해 있는데 이 음식을 라멘이라 할 수 있는가?


마약탄탄마제멘 히로퐁을 흑인 종업원 분이 본인의 고국으로 돌아가 그 곳의 식재료로 그 곳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변형한다면 그 음식은 라멘인가? 마제소바인가? 탄탄면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흑인 종업원 분이 어떻게 이름 짓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으나 라멘이라고 한다면 그 음식은 라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만든 사람이 라멘이라는데 별 수 있나? 다만 어쩌면 일본의 라멘보다 라멘 그 자체에 가까이 다가간 라멘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한데 뒤섞여 너무나 변화무쌍하면서도 변화가 없는 상태이기에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정의를 내릴 수 없으나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상태. 그것이 라멘 그 자체 그러니까 라멘인 라멘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라멘 한 그릇 먹으며 갑자기 이게 무슨 생각의 흐름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사루카메의 라멘은 라멘인 라멘에 가까이 다가가는 중일 것이다. 한국의 식재료와 혼마 히로토 셰프의 경험은 라멘이라 이름 붙여진 무언가로 화해 한국의 연남동에서 프랑스의 샹송과 다양한 언어를 감각하고 있는 소비자에게 왔다가 그의 피드백과 함께 다시 돌아갈 것이다. 무수한 것들이 부지불식간에 교차하는 가운데 너무나 많은 경계가 쳐져 경계가 무의미해지면서 그 음식은 라멘인 라멘이 될 것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고? 음... 날이 춥고 배가 꼬르륵 거릴 때 라멘인 라멘이 되어 가는 사루카메의 라멘을 먹으러 찾아가면 된다. 이런 저런 자신만의 생각을 펼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