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기다리느라 외로워진 '너'를 당겨주며

홍대 인디밴드. 벤치위레오. 얌전한 고양이 벤치 위에 먼저 올라간다.

by Gozetto

* 실제 공연에서의 이미지나 모습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한 때 서울의 모 대학교에는 그 일대를 호령한 고양이 레오가 있었다. 대학교 일대 고양이 세카이에서는 사실상 왕으로 군림한 레오는 학교 캠퍼스를 자기 집마냥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홀리고 다녔다. 때로는 벤치 위에서 늘어지게 누워서. 때로는 학생의 다리에 몸을 비비면서. 고양이 사이에서는 카사노바이자 왕으로 군림하던 레오가 막상 학생들에게는 개냥이 이상으로 인간친화적인 고양이의 모습을 보이니 금새 대학교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학생들이 둘러 모여 사진을 찍는 곳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손길을 받으며 애교를 부리는 레오가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쓰다듬는 것이 행복했던 건지 레오는 누구의 손길도 거부하지 않으며 오가는 학생들의 손을 받아주셨다. 학생들은 강의를 들을 건물로 가기 전 레오의 모습을 보며 "귀엽다.", "사랑스럽다.", "얘 좀 봐." 등 다양한 말과 함께 레오를 귀여워했다. 멀리서든 가까이서든 학생들에게 사랑을 받는 레오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강의가 시작하는 시간이 되면 거짓말처럼 학생들이 사라지고 교내가 조용해진다. 쓰다듬어 주던 손길과 찰칵대던 핸드폰들도 모두 사라진다. 신기루마냥 사라진 사랑과 행복에 멍하니 누워있다가 레오는 발길을 옮긴다. 캠퍼스든 그 바깥 어디든 간다. 아마 그러면 나타날 것이다. 잠시 몸을 뉘일 수 있는 넓은 무릎을 지닌 누군가가. 몸을 쓰다듬는 따뜻한 손을 가진 누군가가. 자신의 모습을 보며 환호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어줄 누군가가. 아니 어쩌면 레오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누군가를 찾으러 간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잠시 동안 불타오르는 사랑과 행복의 허망함을 알기에 그저 조용한 곳에서 쉬고 싶었던 것일게다. 정신 없이 모두가 자신을 좋아하고 사랑해주는 상황이 오기 전에 잠시나마 쉴 수 있는 곳을 찾았던 것일게다. 그렇게 잠시 쉬고 나서 다시 때가 되면 어슬렁거리며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다가온다. 누구보다 찰나의 사랑과 행복의 허망함을 잘 알고 있는 레오이기에 계속해서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하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외롭게 기다린 것이다.

일상의 아이러니를 노래하는 홍대 인디밴드 '벤치위레오'는 앞서 언급한 고양이 레오의 이름에서 밴드의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레오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얌전한 고양이 벤치 위에 먼저 올라간다>(이하, <얌전한 고양이>)라는 데뷔곡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발표한 곡들 중 가장 인디밴드스러운(?) 제목인 <얌전한 고양이>는 청량한 아침 해가 떠오르는 멜로디로 시작하며 이름을 알 수 없는 고양이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레오와 비슷하게 곡의 고양이도 사람들에게 많은 귀여움과 사랑을 받은 듯하다. 누군가는 고양이를 지나가다 멈추고 쳐다봤을 것이고, 누군가는 다가와 츄르를 주고 사진을 찍었을 것이며, 누군가는 무릎에 앉을 수 있게 하며 쓰다듬어 줬을 것이다. 차갑고 위험한 세상에서 길고양이인 자신에게 따뜻한 사랑과 관심은 다가오는 인간에게서만 받을 수 있기에 고양이는 언제나 다가오는 사랑과 관심을 피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은 너무 찰나와 같다. 잠시 시끄러웠을 뿐 이내 벤치 위에 있던 고양이는 다시 침묵을 맞이한다. 차갑고 위험한 세상이 따뜻한 공기로 가득했던 벤치에 차갑고 외로운 공기가 가득차게 한다. 고양이에게 다가오는 인간은 사랑과 관심을 주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고양이가 세상에서 외로운 존재라는 걸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양이는 "어제 흘려놨던 눈물들로 세수를 하"며 본 적도 없는 인간들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다 다가오면 발톱을 세우며 말한다. 벤치 위에 얌전히 있는 자신을 내버려둔 채 스쳐 지나가는 눈으로 쳐다보지 말라고. 간만 보며 자신이 원하는 정도로만 사랑과 관심을 보이다가 갈 거면 그냥 떠나라고. 이제 허망할 뿐인 찰나의 사랑과 관심보다 진정한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양이가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자신을 사랑해준다고 생각한 이의 눈과 손이 사실은 찰나에 불과한 스쳐감 뿐임에도 그저 꺼져달라는 말만 한 것이 다행일 정도다.


반대로 고양이가 꺼져달라는 말만 한 것은 그만큼 오랜 시간 받은 상처가 너무 크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찰나의 사랑과 관심에 오랫동안 받은 상처가 아물어 큰 흉터로 남은 것은 아닌가 싶다. 짧고 단정적인 멜로디에 나른하게 꺼져달라는 목소리의 조화는 이제는 익숙해진 진심이 아닌 사랑과 관심을 그만 받고 싶다는 고양이의 차가운 분노일 것이다. 그렇다면 겉으로는 나른하면서도 리드미컬하게 톡톡 튀는 멜로디는 남들에게 상처 입은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고양이의 바람이자 마지막 자존심이다. 진심을 담은 사랑과 관심은 주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사랑과 관심의 주인공이 된 적이 없다. 쓰다듬는 손길을 받을 때건 귀엽다는 눈길을 받을 때건 사진이 찍히건 그 어느 때에도 인간들은 고양이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위했을 뿐이다. 고양이는 그런 인간들의 자기 사랑과 관심의 외부에서 반사되는 빛을 받으며 좋아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고양이는 다가오는 인간들에게 유쾌해 보이되 나른하고 차갑게 말한다. "어서 꺼져줘!"


이러한 유쾌하되 나른하면서도 차가운 고양이의 모습은 2절부터 밴드 벤치위레오로 전이된다. 지금은 인디씬에서 4년차에 접어들어 나름 중견(?) 밴드라 할 수 있지만 데뷔 당시 벤치위레오에게 팬들의 사랑과 인디씬의 클럽과 공연장 관계자들의 관심은 스쳐 지나가는 인간들이 길고양이에게 주는 사랑과 관심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다. 찰나의 순간만 기쁘게 할 뿐 결국 끝에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길고양이와 겹쳐진 상태에서 벤치위레오는 인디씬에 자신을 쉽게 보지 말라고 말한 것 같다. 오히려 다가온 인간에게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고양이처럼 벤치위레오 역시 오는 사랑과 관심을 기쁘게 받겠지만 그렇다고 다가온 사랑과 관심에 취하지는 않겠다고 말하는 듯하다. 어떻게 보면 도도한 고양이처럼 보여 다가가기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유쾌하되 나른하고 차가운 고양이처럼 패기있으면서도 도도한 듯한 벤치위레오는 진심으로 자신들을 이해해주면서 사랑과 관심을 주는 이들에게는 꺼져달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겨달라고 말하지.


결과적으로 <얌전한 고양이>는 겉으로는 밝으면서도 톡톡 튀는 멜로디로 재밌게만 들리는 곡처럼 보이지만 사실 진정한 사랑과 관심을 기다리는 고양이의 상처와 인디씬 데뷔에 조금은 겁먹은 밴드의 이야기가 담긴 곡이다. 둘 모두 다가오는 사람에게 발톱을 세우며 햘퀴거나 멀리 도망가지 않는다. 자신의 벤치에서 자신을 좋아해주는 행위가 지닌 찰나성을 그저 물 흐르듯 받고 흘려보낼 뿐이다. 저녁 해가 지는 듯한 노래의 마지막에서 알 수 있듯 고양이와 벤치위레오는 모두 망부석처럼 자신의 벤치에서 혹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을 당겨줄 인연을 외롭게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고양이와 벤치위레오 모두 조금씩 자신을 당겨주는 인연을 찾았고 계속해서 찾고 있는 듯하다. 앞서 말했듯 어느 덧 홍대 인디씬에서 4년차를 맞이한 벤치위레오는 계속해서 일상의 아이러니를 노래 전체의 멜로디와 리듬에 벤치위레오만의 감각이 담긴 날카로운 가사로 인디씬에서 벤치위레오만의 영역을 유지하고 있다. <얌전한 고양이>의 고양이도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겠는가.

서울의 모 대학교에서 비공식 마스코트까지 되며 유명해진 레오는 2017년 말쯤부터 서서히 안 보이더니 2018년에는 캠퍼스에서 자취를 감췄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학생들은 레오가 그저 어딘가로 영역 확장하러 갔나 보다 혹은 눈에 안 보이게 어딘가 잘 있을 것이다라며 레오의 안전을 기원했다. 나중에는 레오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 고양이 별로 잘 갔을 거라고 말하며 추모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마음 속에서 레오가 어느 날 갑자기 캠퍼스에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햇살이 쏟아지는 벤치에서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른하게 누워있을 모습을 말이다. 그만큼 레오도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갑자기 나타날 레오에게 전하고 싶다. 매일 스쳐가듯 사랑과 관심을 줘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보고 싶었다고.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벤치에 나른하게 누워있을 레오를 안아주리라. 벤치위레오의 <얌전한 고양이 벤치 위에 먼저 올라간다>를 들으며. 진심을 기다리느라 떠나진 못하고 외로워진 녀석을 당겨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