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모순의 맛

신용산. 북천. 로스가스.

by Gozetto

창과 방패를 파는 장사꾼의 말도 안 되는 자기 PR 고사에서 유래한 모순(矛盾)은 성립이 불가능한 논리를 가리킨다. 다르게 말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재밌는 것은 모순이라는 단어 자체가 지닌 뜻에도 불구하고 있을 없는 일이라는 뜻을 있을 수 있게 하는 단어라는 것이다. 이처럼 없어야 하는 것이 있다는 점은 모순의 가장 큰 매력이다. 특히 있음과 없음 사이 격차가 크면 클수록 모순이 지닌 매력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모순을 지닌 존재가 색다르게 보이면서 다른 가능성은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게 되니 말이다. 물론 있음과 없음 사이 격차가 긍정적으로 느껴져야 모순을 지닌 존재를 색다르게 바라보며 궁금해지지 부정적일 때는 얄짤없이 손절당할 뿐이다. 이건 음식도 마찬가지다. 겉모습과 실제 맛 사이의 모순을 부정적으로 느끼는 순간 손이 가는 음식이 되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겉모습과 실제 맛 사이의 모순을 긍정적으로 느끼는 순간 그 음식은 손이 계속 가는 음식이 될 뿐만 아니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음식이 된다.


신용산역 1번 출구로 나와서 걷다 보면 3~5층 정도 되는 오래된 상가가 늘어선 용산의 오래된 골목이 나온다. 최근에는 용리단길이라고도 불리는데 개성 넘치는 맛집들이 숨어 있는 골목이다. 그런 개성 넘치는 맛집들 속에서 북천은 좀 특이한 모습이다. 가게 간판도 잘 안 보이고 외부에서 보기에는 너무 가게 내부가 좁아 보인다. 손님을 끌어 모으겠다는 의지보다는 "들어올 거면 들어오고 말 거면 그냥 가쇼." 하는 느낌이다. 흔히 쿨하다고 하는 이 느낌은 가게 내부로 들어가면 더 진해진다. 좀 진한 황토색 느낌의 벽과 가구들, 등산이나 캠핑을 즐기시는 듯한 사장님의 사진으로 꾸며진 벽, 가게 한 켠에 보이는 초 박스와 향 박스 등. 분명 바닥이나 식기는 모두 깔끔한데 전반적인 분위기 자체가 정돈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치울 것은 다 치웠으되 단정하게 보이도록 하려고는 안 한 느낌이 마치 필자의 방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어 뭔가 더 단정하게 보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메뉴 구성도 복잡하지 않다. 돈가스 메뉴는 브라운 돈가스를 필두로 로스 가스, 치킨 가스, 화이트 돈가스, 화이트 치킨 가스가 있고 여기에 가스오 우동과 크림 우동이 있다. 돈가스에 우동이 같이 나오는 세트 메뉴는 브라운 돈가스와 로스 가스만 있을 뿐이다. 고민을 안 했다는 느낌이 아니라 돈가스 식당하면 이렇게는 있어야지 하는 메뉴에 "그래도 좀 색다른 게 있을려면 역시 크림 소스지!"하는 느낌으로 크림 소스를 사용한 돈가스 메뉴를 넣은, 쿨한 느낌이다. 복잡하게 깊고 길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면서도 굵고 짧게 "그냥 당연히 이렇게 해야지!"하는 직선적인 느낌. 가게 외관, 내부 인테리어, 메뉴 구성 등 전반적인 가게의 첫 인상이 이렇게까지 단순하면서도 직선적이고 쿨한 경우는 오랜만이다. 서서히 분위기에 적응하면서 보이는 식당의 분위기와 풍경에서는 무뚝뚝하지만 굳이 꾸밀 필요 없다는 자신감과 일단 한 번 맛보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그래 식당이 분위기로 먹고 살아야 쓰나. 음식이 맛있어야지!

주문한 로스 가스 세트의 모습은 여지없이 북천이라는 식당의 분위기와 판박이다. 아무런 무늬가 없는 하얀 접시에 큼직하게 튀겨진 돈가스가 큼직하게 썰려 있고 경양식 돈가스처럼 밥 한 스쿱, 양배추 샐러드, 초생강, 피클, 소스가 돈가스를 둘러싸고 있다. 우동도 아무런 색깔이 없는 하얀 그릇에 담겨 있을 뿐이다. "난 꾸밀 줄 모르니 외관은 그냥 알아서 보시고 맛이나 봐 보소."하는 느낌. 외관에서부터 이어져 온 분위기가 음식에서도 느껴지니 이건 숫제 압도 당하는 기분이다. 돈가스의 너비와 두께도 상당히 실하다. 한 입에 포만감을 느끼게 할 마음으로 시원시원하고 두툼하게 썰린 모습이 식당의 분위기와도 연결된다. 이런 와중에 재밌는 것은 주방이 오픈되어 있는데도 소리가 거의 안 들린다는 것이다. 돈가스 식당 주방이면 튀기는 소리라도 들릴 법 하건만. 무뚝뚝하고 꾸밀 줄도 모르는 녀석이 조용하기까지 하니 한결같다고 해야 할 지. 압도 당하는 와중에 갑자기 재밌다고 생각에 피식하고 웃으며 한 입을 시작한다.

어? 식당의 분위기와 맛 사이에 모순이 굉장히 크다. 두툼하고 큼직하게 썰려 있음에도 부드러운 것은 돈가스계에서 이미 기본 사항이다. 이가 고기를 스르르 가르며 나아가고 갈라진 틈에서는 돼지고기의 고소한 육즙이 촥 뿜어진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사항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두툼한 데도 적절한 짠기가 느껴지는 간이다. 소금의 단짠 덕분에 다른 그 무엇도 더 더하지 않고 돈가스만 먹어도 맛있다고 느껴진다. 중간중간 후추가 톡톡 튀어 나와 코와 입을 시원하게 해 맛의 변화를 주는 세심함도 엿보인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거 아니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애초부터 돈가스에 간을 충분히 했기 때문에 짠 맛과 후추의 톡 쏘는 맛을 오고 가는 흐름이 가능한 것이다. 단순히 돈가스에 충분한 간을 한 것만이 아니라 소스 조차도 의외다. 과일 향이 은은하게 나는 상콤달콤한 돈가스 소스는 전혀 다른 맛의 전개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과일향이 후추향을 대신하고 상콤달콤한 맛이 부드러운 돼지고기에 스며들어 돈가스의 맛을 다채롭게 한다. 무뚝뚝하면서 자신을 꾸미는 것에는 능숙하지 않은 식당에서 이토록 세심하게 맛을 연출할 줄이야.

다른 그 무엇도 필요 없다. 그저 돈가스가 지녀야 할 기본은 지키는 가운데 자신만의 매력을 과감없이 보여준다. 무뚝뚝하고 담백한 겉모습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세심함과 그에 따른 다채로움이 식당의 분위기마저 다르게 느껴지게 한다. 결국 겉으로 화려하고 인테리어가 예뻐서 음식 먹을 맛이 난다는 것은 나중에 필요하면 추가적으로 할 일일 뿐이다. 가장 기본은 음식의 맛이다. 비록 겉은 화려하지 않아도, 심지어 낡고 더러워 보일지라도 대접하는 음식이 맛있는 곳은 식당의 또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게 하는 추억으로 남아 식당을 다시 찾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꾸미지 않더라도 상대방에게 진심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단순히 무뚝뚝한 사람이 아니라 무뚝뚝하지만 꿀단지를 껴안고 있는 곰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 모순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사람들은 격차 사이에 수많은 가능성을 상상하며 그 사람에게 더욱 깊이 빠져든다. 사람이건 음식이건 모순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