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는 부드러움

홍대. 테이스티버거. 에그마니버거.

by Gozetto

독일 함부르크에서 시작해 미국에서 완성된 햄버거는 기본적으로 번이라는 빵 사이에 함박 스테이크 즉, 다진 소고기를 뭉쳐 구운 것을 끼운 음식이다. 여기에 추가로 각종 채소, 치즈, 소스 등을 곁들여서 더 다채로운 햄버거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거칠게 말하면 햄버거는 빵 사이에 다짐육구이를 끼우기만 하면 햄버거인 것이다. 즉, 햄버거에 있어서 다짐육구이라 하는 소고기 패티는 햄버거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채소든, 치즈든, 소스든 뭘 추가하건, 바꾸건 간에 소고기 패티라는 정체성이 살아있는 한 햄버거는 크게 변하지 못한다. 어떤 햄버거를 먹든 간에 패티의 질이 나쁜 경우 새로운 요소가 있다 해도 새로운 햄버거보다는 기본도 못 지킨 질 나쁜 버거로 인식되고 반대의 경우엔 새로운 요소가 없어도 기본을 잘 지킨 질 좋은 버거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완전히 새로운 버거를 만들거나 만나기 위해서는 햄버거의 정체성인 소고기 패티를 버려야 가능하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햄버거는 번 사이에 패티라는 무언가 끼워진 음식이라 할 것이다. 치킨 패티를 쓴 버거가 버거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그런데 치킨 패티도 고기니까 결국 번 사이 고기 패티를 끼운 음식을 햄버거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꼭 이렇게 해야 해!"라고 하면 "싫어!"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정체성이라고 여겨진 소고기로만 패티를 만드는 것에 의문을 가진 것처럼 고기로만 패티를 만드는 것에도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달걀로 만든 에그 패티는 고기 패티로는 보여줄 수 없는 맛과 식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보면 고기 패티와는 다른 의미의 부드러움과 고소함을 준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에그 패티는 고기 패티보다 못한 부드러움과 고소함을 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렇기에 고기 패티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고기 패티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에그 패티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그리고 그 답을 테이스티 버거의 에그마니 버거는 찾은 듯하다. 고기 패티를 사용한 버거와 다르게 흔들림 없이 끝까지 부드러운 버거로 말이다.

한 때 정말 좋아했던 발라드 가수 테이 씨가 2018년에 론칭한 식당 테이스티 버거. 주황색 공룡(?)을 마스코트로 한 테이스티 버거는 상수역과 합정역 사이 홍대 골목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 주황색 공룡 마스코트를 제외하면 대로 근처 골목 안에 있어 자칫 잘못하면 지나가기 쉽다. 마스코트 빼면 잘 안 보이는 식당 외관처럼 내부도 새하얀 벽과 나무 테두리를 두른 검은 식탁과 의자가 깔끔하고 캐주얼한 느낌을 주면서 마스코트인 주황색 공룡만 돋보인다. 드러나지 않고 캐주얼해 편안한 식당이라는 이미지이다. 하지만 편안한 식당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너무 맛있어서 짜증나게 한다." 혹은 "그냥 믿고 먹어!" 등 식당 내 문구에서 보이는 자신감은 대단하다. 그런 자신감은 메뉴판에서도 느껴진다. 다른 수제 버거 식당들과 달리 시그니처 메뉴 중 소고기 패티가 한 장이라도 들어간 메뉴가 없다. 거칠게 말하면 모두 사파다. 에그마니 버거, 크라켄 버거, 통치킨 버거. 식당 이름을 딴, 100% 소고기 패티 버거인 테이스티 버거 조차도 시그니처 버거에 없다. 그리고 그런 시그니처 버거 중 가장 위에 있는 버거가 에그마니 버거다.

메뉴판에서 보이는 사진만으로도 에그마니 버거는 이름 그대로다. 고기는 익으면 모양이 잡히면서 살이 단단해지지만 잘 풀어낸 달걀은 익으면 모양이 잡히면서도 여전히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그렇기에 두툼하다는 말로도 부족해 보이는, 스크럼블화한 에그 패티가 번 사이를 꽉 채우다 못해 넘쳐 흐른다. 부드럽게 풀어지는 에그 패티를 따라 스리라차 마요 소스까지 함께 흐른다. 흔히 천국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표현하는데 젖과 꿀 대신 에그 패티와 소스가 흐르는 에그마니 버거는 천국을 본 눈처럼 외양으로 눈을 크게 뜨게 한다. 소고기 패티가 마이야르 반응을 통해 불향이 입혀진 고소한 향으로 첫 인상을 압도한다면 에그마니 버거의 에그 패티는 스리라차 마요 소스와 함께 흘러내릴 정도로 넘치는 양과 부드러움으로 감히 자신을 손으로 붙잡는 것을 거부한다. 버거를 먹을 때는 양손으로 붙잡고 베어물면서 먹어야 한다는 지론 대신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나이프가 지나갈 때마다 번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에그 패티와 소스를 모아 번, 토마토, 청상추, 체다치즈, 베이컨과 함께 한 입을 겨우 먹는다.

녹아서 사라진다. 달걀의 달달하고 고소한 맛이 스크럼블화해 부드러운 식감과 함께 스르르 사라진다. 자칫 느끼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 토마토와 청상추가 익히지 않은 날 채소의 신선함으로, 베이컨은 돼지고기가 가지고 있는 눅진하고 고소한 기름과 향으로 부드러움을 기반으로 한 달걀의 맛과 식감이 한 쪽으로만 향하지 않게 밸런스를 잡아준다. 하지만 음식에서 재료로만 맛과 식감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나 테이스티 버거의 에그마니 버거는 넘쳐 흐르는 스크럼블 에그 패티의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단순하게 평형이라는 관점에서 재료로 맛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은 에그마니 버거 자체의 방향성을 헤친다. 그런 점에서 스리라차 마요 소스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거의 매콤한 맛이 느껴지지 않는 가운데 달달하고 고소한 맛이 부드러움 식감을 타고 느끼한 맛으로 뻗어나가는 것을 차단하면서 전체 재료 간 밸런스를 유지해 스크럼블 에그 패티의 부드러움을 헤치지 않는다. 소고기 패티와는 완전히 다른 결인, 눈처럼 녹아내리는 달걀 특유의 부드러움이 강조되는 것이다.

그런 부드러움을 즐기는 와중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하필 곁들인 튀김이 고구마 튀김이라는 점이다. 재료 자체의 맛보다 포슬포슬한 식감으로 고소한 맛이 강조되는 감자와 달리 고구마는 그 자체로 단 맛이 굉장히 강한 재료이다. 그렇기에 감자 튀김보다 고구마 튀김은 고소하다는 느낌보다 달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준다. 심지어 바삭한 식감을 타고 달달한 고구마가 입에 들어오는 순간은 입 안에 고구마 천국이 펼쳐진다. 즉, 고소하고 부드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달기도 한 스크럼블 에그 패티보다 더 진한 단 맛이 입 안을 채우니 바삭함으로 다른 식감으로 에그 패티의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것을 제외하면 둘의 궁합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고소한 맛을 강조한 치즈 버거나 매콤한 소스를 곁들인 버거처럼 단 맛이 부족한 버거에 색다른 맛의 결을 더해야 할 때 고구마 튀김이 있다면 좋을 듯하다. 물론 고구마 튀김 그 자체로도 너무 맛있다. 감자 튀김과 다른 맛을 느끼고 싶을 때 적절한 버거와 함께 먹는다면 잊지 못할 맛의 경험이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양손으로 움켜쥔 채 베어물어야 한다는 버거에 대한 지론을 지키지 않았기에 에그마니 버거는 시작부터 아쉬운 버거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소고기 패티와 다른 에그 패티만의 달달하고 고소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을 매력적으로 돋보이기 위해 고민한 지점들이 하나하나 보인다. 특히 부드러운 식감만 강조하려고 하면 음식 전체의 밸런스가 무너질 수 있었을텐데 소스라는 탄탄한 기반 위에 다른 재료로 기둥을 세워 전체적인 맛의 밸런스를 잡으면서도 식감을 강조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 너무나 만족스럽다. 애초부터 "왜 패티를 소고기로만 만들어?"라는 물음에서 시작한 만큼 에그 패티에 맞는 버거에 대해서 고민해야 했을 것이고 고민에 대한 답을 향해 명확하게 연출하고 관철한 것이 보이는 것이다. 명확하게 목표를 묵묵히 나아가되 목표로 향하는 길을 탄탄하게 준비해 부드러운 와중에 흔들림이 없는 버거. 버거에 대한 지론을 잠시 잊고 흔들림 없는 부드러운 달걀에 편안히 몸을 맡긴 식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