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릇에 닭 한마리 담기

합정. 라무라. 블랙라멘-병아리.

by Gozetto

요새는 밀키트든 레토르트든 조리과정을 단축할 수 있는 제품이 다양하고 좋은 품질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밖에 나가서 집에서 동일한 맛을 낼 수 있는 밀키트나 레토르트를, 한끼 평균 7000원을 내면서 먹을 이유는 없다. 굳이 '그'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이유는 그 식당만의 색깔을 느끼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색깔이 없는 식당의 음식은 메리트가 없다. 음식은 그 식당이 혹은 쉐프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의도 혹은 관점이다. 단순히 팔기 위한 행동이라고 해도 조리 과정은 요리하는 사람의 의도나 관점이 드러난다. 결국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음식을 만든 사람의 의도와 관점을 즉, 주장을 듣고 그에 반응하는 일이다. 그 주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주장이 잘 보이는 음식일수록 독특하면서도 특유의 대중성을 지닌 음식이 된다.


물론 음식 한 그릇에 조리한 사람이 자신의 의도와 관점을 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음식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식재료 손질 방법, 식재료의 맛, 산지에 따른 맛의 변화, 최적의 요리 환경 등 알아야 할 지식은 차고 넘친다. 즉, 그 음식에 미쳐야 한 그릇에 자신의 의도와 관점을 담을 수 있다. 어쩌면 백종원씨는 돈을 벌기 위해 외식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런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외식 사업에 뛰어들지 말라고, 할 것이라면 한 메뉴에 전념하기를 바라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에서 합정 라무라는 닭이라는 식재료에 전념해 닭의 부드러움을 라멘 한 그릇에 깊이 있게 담아낸다.


메뉴부터 닭에 미쳐있다. 알-병아리-닭으로 점점 커지는 메뉴 첫머리는 닭의 모든 것을 준비했다고 말하는 듯한다. 메추리알, 고구마순, 대파로 시작하는 알은 병아리가 되면서 닭봉과 닭다리살을 가지게 되고 닭이 되면 장각과 닭가슴살까지 갖게 된다. 블랙 육수와 화이트 육수로 나뉘는 육수 라인업은 닭육수의 전혀 다른 매력을 선보이는 느낌이다. 담백함을 중심으로, 닭의 단맛을 채소와 간장의 단짠한 풍미로 극대화 하는 블랙 육수와 닭의 진한 풍미와 단맛을 강조하는 화이트 육수는 닭이 다른 재료를 만났을 때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느낌이다. 심지어 라멘을 제외한 메뉴는 계피교자 하나다. 그 계피가 아니라 닭껍질이다. 닭껍질로 다양한 속을 감싼 교자는 닭의 어떤 부위도 쉽게 버리지 않겠다는 모습으로 보인다.

라멘 한 그릇이 들어오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고구마순 둥지 위에 놓인 메추리알이다. 보통 라멘의 한축을 담당하는 온센타마고를 메추리알이, 멘마를 고구마순이 대신하고 있다. 둥지 주위는 닭다리살, 닭봉, 대파가 다시 감싸고 있어 둥지 위에 둥지가 얹힌 모양이다. 둥지의 고구마순을 풀어내 면과 곁들이면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약간 꺼끌하고 질긴 고구마순이 멘마를 대신해 식감을 대신한다. 메추리알은 약간 쫄깃한 겉면 안으로 달큰한 노른자가 혀에 닿는다. 닭다리살과 닭봉은 부드러워서 입안에 넣으면 살이 녹아서 사라진다. 이 와중에 단짠한 블랙 육수는 담백함을 중심으로 모든 재료들이 한데 어우러지게 하면서 닭의 가벼운 단맛을 강조한다. 후추까지 더하면 단맛과 담백함이 진해지면서 한층 더 농후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계피교자는 닭껍질 겉면의 수분을 모두 날려 튀김 특유의 거칠면서 바삭한 기분 좋은 소리가 난다. 교자 안쪽은 야채와 닭고기가 각종 허브와 다져져 꽉 채워져 있다. 다져진 속의 빈 부분을 닭고기와 야채에서 뿜어져 나온 수분이 채우고 있어 씹으면 육즙마냥 수분이 진한 허브 향과 함께 뿜어져 나온다. 다져져 있음에도 속을 꽉채우고 있어 재료들이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인 것처럼 씹혀 식감이 두텁다. 그런 와중에 수분으로 촉촉하니 부드럽다. 조금 느끼하게 느껴질 때 함께 나오는 와사비마요를 곁들이면 코가 뚫리면서 더 농후해진 속재료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육수에 적시면 한층 더 부드러우면서도 담백하고 단짠한 맛이 곁들여진 교자를 즐길 수도 있다. 라멘 한 그릇과 교자 한 그릇이면 닭 2마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즐긴 기분이다.

가격 대비 양부터 시작해서 맛까지 가성비로는 거의 모든 라멘집을 씹어 먹을 뿐만 아니라 라무라라는 식당만의 정체성, 방향성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담백함을 중심으로 맛을 쌓아가는 것부터 담백하기만 해서는 심심하니 맛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변주를 준다. 이 모든 중심과 변주가 닭이라는 식재료의 단맛을 부각하면서도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게 하려는 모습으로 느껴진다. 즉,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닭이라는 식재료의 장점을 라멘을 통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색깔은 잊지 않고 있어 라무라만의 독특한 대중성이 만들어지고 있다. 불광불급이라. 한 재료에 미친 듯이 파고드는 이가 도달한 음식은 독특하지만 그 자체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넓고 깊은 음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