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과 위로가 된, 스쳐가는 '너'
홍대 인디 밴드. 벤치위레오. 델리만쥬.
어떤 기억에서 우리는 그리움을 느끼고 그 그리움에서 지친 하루를 이겨내도록 하는 위로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 기억에 의한 그리움이 항상 달콤하지만은 않다. 한국 지하철에서 고소함과 달콤함을 모두 지닌 치명적인 향기를 지녔음에도 향기 빼면 먹고 싶지 않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거의 인기가 없는 간식인 델리만쥬를 생각해보라. 겉면에는 옥수수 모습이 찍혀 있고 속에는 커스터드 크림이 들어 있는 델리만쥬는 고소함과 달콤함을 모두 가진 자신의 향기 때문에 굉장히 '창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겉의 빵 부분에 비해 속의 크림은 정말 코딱지만큼만 들어있기 때문이다. 기억에 의한 그리움도 마찬가지다. 떠오른 기억에서 느낀 그리움은 강렬한 향기에 비해 막상 먹어 보면 별 볼 일 없는 델리만쥬처럼 오히려 실망만 느끼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떠오르는 순간 그리움은 서서히 커져 간다. 처음에는 작은 바람인 줄 알았던 그리움은 어느새 거대한 태풍의 에너지를 지니면서 삶을 살아가는 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벤치위레오 싱글 3집 앨범 커버. 출처.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qX4GUMm6jsE그런 점에서 2020년 5월 발매된 벤치위레오의 싱글 3집에 수록된 <델리만쥬>는 지하철을 배경으로 델리만쥬의 향기에서 그리움을 느끼며 위로를 받는 노래이다. 지하철은 한국의 도시에서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이라는 점에서 승객들이 남기는 삶의 잔재물과 감정들이 묻어 있다. 출근길과 퇴근길에는 지옥철이라 불릴 정도로 피곤한 가운데 정신없이 이리저리 치이는 한국의 아침과 저녁 삶이 묻어 있다. 승객이 줄어든 오후라 해도 지하철은 목적지만을 조용히 생각하는 승객들로 가득해 삶의 활기보다는 고요하게 피로와 타인에 대한 무심함이 쌓이는 곳이다. 삶에서 느낀 피로, 무심함, 목적의식의 집합소인 지하철 역에서 풍기는 델리만쥬의 향기는 지하철 역의 피로, 무심함, 목적의식 등에 균열을 내어 과거를 떠올리게 할 수 있는 향기이다. 생명의 활기라고는 느낄 수 없는 죽어버린 공간인 지하철에 델리만쥬는 고소하고 달콤한 그 향기로 지친 승객들에게 스며들어 잠시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떠오른 기억은 가슴 아파 그리움에 몸부림치게 하지만 그리움에 의한 몸부림은 삶의 잔재물과 감정이 쌓여 죽어버린 공간에 갇혀 죽어가는 승객의 생명을 움직이게 한다.
떠밀리듯 열린 지하철
흩어지는 사람들 속에도
사라지지 않는 너의 향기에
지친 하룰 기대곤 했네
엇박으로 멜로디를 시작하는 잔잔한 기타 선율 뒤로 들리는 탬버린 소리와 조용히 기타와 탬버린 사이를 연결하는 건반으로 구성된 전주에 듣는 이는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지친 몸을 지하철에 실은 승객이 되어 지하철과 델리만쥬에 대한 경험과 이미지를 떠올리며 지친 오늘을 잊고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지하철 역과 그 역을 가득 채운 델리만쥬의 향기에 대한 듣는 이의 경험과 이미지로 노래의 포문을 여는 것이다. 재밌게도 델리만쥬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이 곡에서 델리만쥬라는 가사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명시된 가사가 없더라도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녀본 이들이라면 어느 역에서 한 번은 수많은 승객들의 체취를 뚫을 정도로 강렬하고 지나쳤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고소하고 달콤한 향기의 기억을 통해 델리만쥬를 떠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승객이 된 듣는 이는 떠오르는 지하철의 경험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친 상태에서 지하철을 타고 내리며 떠밀려 다니다가 델리만쥬 향기의 이미지에서 잠시 쉴 수 있게 된다.
스쳐오는 봄 바람에
스며드는 그 날 그 밤의 향기
지워지지 않는 그림 속에
말 없이 번져가네
피로와 무심함이 가득한 지하철 역에서 맡은 고소함과 달콤함이 가득한 델리만쥬의 향기는 지하철 역에서 잠깐 동안만이 아니라 갑자기 튀어 나오는 건반음처럼 지하철 역을 나와서도 계속 이어진다. 바깥에서까지 향이 나는 듯한 달콤한 델리만쥬의 향은 문득 불어온 봄 바람과 함께 과거에 있던 어느 밤의 기억으로 승객을 이끈다. 겨울을 버티고 이제 겨우 싹과 생명력이 움트는 봄은 생명력을 가득 품고 있되 아직 미숙하고 풋풋한 기억으로 스며 있는 때이기도 하다. 왜인지 봄 바람이 이끌고 간 미숙하고 풋풋한 그 시절의 기억은 델리만쥬의 향기가 지하철 역을 나와서까지도 남아 바람을 타고 번지듯 하루 일과를 마친 뒤 바라보고 있는 현실의 풍경으로 번지면서 스쳐갔던 그 시절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인생의 한 시절을 함께 보내며 가슴을 설레게 했던 당신. 이제는 기억 한 켠에만 남아 있던 당신을 떠올리니 고조되어 가는 기타, 건반, 드럼 소리처럼 가슴이 서서히 뛰는 모양이다.
흐려지는 너는 없어 (없어)
진해지는 기억 앞에 서 있어
차라리 그 때 널 지나쳤다면
그랬더라면
잠시 잊고 있었을 뿐 기억에서 그 사람이 흐려졌던 것은 아니다. 여운을 남기듯 뒤에 남는 코러스처럼 항상 기억에 잔잔히 남아 계속 함께 하고 있었다. 봄 바람을 타고 점점 진해지며 피어오르는 델리만쥬의 향기를 따라 잔잔히 흐르던 기억도 점점 더 명확해지면서 그 시절을 함께 보낸 그 사람이 떠오른다. 기억에 명확이 계속해서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앞에 서 있어"라고 여운을 주던 코러스 없이 조금씩 높아지는 멜로디를 타고 한 음 한 음 끊어서 명확하게 노래하는 보컬의 목소리는 승객이 명확해진 기억 속 그 사람과 만나게 한다. 하루가 너무 고단해 달콤한 델리만쥬의 향기에 잠시 취한 걸까? 잊고 있던 그 사람을 만나니 떠오른 기억을 애써 외면하고 싶은가 보다. 봄 바람과 향기에 떠오른 그 사람을 애써 외면하려 하다 보니 높아졌던 멜로디가 차분해진 것과 달리 더 보고 싶다. 잊고 있었는데 다시 떠오르니 그리움이 차오른다. 어쩌면 그 때 당신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면 지금 차오르는 이 그리움은 없는 감정일 텐데.
떠내려간 나의 하루
토해내는 바람들 속에도
씻겨지지 않는 너의 향기가
아직 내 안에 가득 차네
한 번 떠오른 기억은 이제 더 이상 봄 바람이나 델리만쥬의 향기 없이도 불쑥불쑥 떠오른다. 어쩌면 지하철 역에서 델리만쥬의 향기에 너무 취했는지 아예 향기가 몸에 배었나보다. 이리저리 음이 바뀌는 건반음처럼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를 하루에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몸에 배인 기억의 향기는 지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바람을 타고 다시 피어오른다. 음의 변화가 거의 느껴지지 않던 "씻겨지지 않는"에서 갑작스럽게 고음으로 바뀌는 "너의 향기가"의 진행처럼 한 번 떠오른 기억은 봄 바람을 타고 스미듯 서서히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확 떠오른다. 한 순간에 떠오른 기억은 피할 방법이 없다. 그저 정신 없이 하루를 보내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지쳐버린 승객은 떠오르는 기억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일 뿐이다. 물론 그 기억이 마냥 기쁘지만 않다. 다시 음이 이리저리 바뀌는 건반음처럼 뭔가 복잡하다.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면서 이미 지칠대로 지쳤는데 떠오르는 당신은 위로가 되어 기쁘면서도 그리워지면서 울적해지기도 한다.
스며드는 강 바람에
스쳐가는 그 밤 그 날의 우리
아직 너를 품에 안은 듯이
눈 속에 번져가네
복잡한 마음을 안고 승객은 강 바람에 향기를 씻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이미 향기는 씻기지 않는다. 기쁜 위로와 울적한 그리움이 교차하는 마음에 강 바람은 스며들어 다시 과거 그 어느 밤으로 데려간다. "그 날의"의 떨리는 보컬의 목소리처럼 당신과 함께 있던 그 어느 밤을 떠올리니 마음도 함께 떨린다. 그 밤에 당신을 안고 있었는데. 품에 한가득 안겨 있는 당신을 마찬가지로 눈에 한가득 담고 있었는데. 한 음 한 음 명확한 "품에 안은 듯이"처럼 이미 떨려버린 마음에서 당신을 안고 있던 그 밤의 기억이 다시 명확해진다. 끝음이 살짝 끌리면서 떨리는 "듯이"처럼 그 시절의 떨림까지 생생하다. 바람을 맞으며 강가를 보고 있던 승객의 눈은 더 이상 강을 담고 있지 않다. 그 시절 그 밤을 함께 보내며 함께 안고 있던 당신을 떠올리니 복잡한 심경은 모르겠다는 듯 고조되는 보컬, 기타, 건반, 드럼처럼 눈에 당신이 번진다. 마지막까지 고조되는 드럼처럼 눈에 당신이 번져가는 것에 이어 확실하게 가슴도 뛴다.
흐려지는 너는 없어 (없어)
진해지는 기억 앞에 서 있어
차라리 그 때 널 지나쳤다면
그랬더라면
흐려지는 너는 없어
흩어지는 너의 앞에 서 있어
그 겨울에 끝에 남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이제는 기억을 애써 지우려고 하지 않는다. 이미 떠오른 기억을 다시 반추하며 다시 당신을 생각해본다. 이전에 느꼈듯 당신은 기억에서 흐려진 적 없이 그저 기억 어딘가에서 계속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속절없이 떠오른 기억에 차오르는 그리움을 부여잡고 당신 앞에 선다. 지치고 고단했던 하루에 잠시 위로가 됐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차오르는 그리움은 위로와 함께 살아가는 힘이 되는 듯하면서도 굳이 떠올리면서 남기고 있을 감정은 아닌 듯하다. 다시 한 번 당신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 때 당신을 지나쳤더라면 무의미할 지금의 그리움을 상상하며 서서히 기억을 잊어보려고 한다.
아니...
아니.
아니!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그리움은 더욱 배가 되어 차오른다. 더 이상 여운도 필요없다는 듯 사라진 코러스처럼 잊으려고 했지만 떠오르는 당신은 기억을 반추하며 여운을 느낄 필요도 없이 이미 기억의 일부분이다. 흐려질리도 흩어질리도 없다. 차분하고 잔잔한 "흐려지는 너는 없어"에서 고음으로 치고 올라가는 "흩어지는"을 거쳐 조금은 뒤로 밀리며 끊어질 듯하지만 연결된 음으로 불리는 "너의 앞에 서 있어"처럼 당신을 향한 그리움에 대해 얻은 깨달음은 한 순간에 찾아와 당신과 끊어질 듯하지만 연결된다. 당신과 연결되는 순간 모든 생명이 조용히 땅에 들어가 숨어 있어 고요하며 그렇기에 오로지 당신에게만 가장 집중할 수 있었던 그 시절 겨울이 생각난다. 그 시절을 가장 행복하게 해주던 당신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던 그 겨울은 지금을 살아가게 하는 과거의 기억이다. 놓치고 싶지 않다. 놓쳐서는 안 된다. 명확하게 들리지만 계속해서 뒤의 음에 늘어지듯 걸리는 "남았더라면"처럼 떠오른 기억을 결코 잊히지 않는다. 그 때로 돌아가지는 못하기에 안타깝지만 당신을 향한 그리움은 계속 남아 앞으로의 생을 살아가게 해줄 위로가 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함에도 생명의 활기를 느낄 수 없는 죽어버린 공간, 지하철에서 승객은 델리만쥬의 향기에서 커져가는 그리움을 느끼고 위로로 나아간다. 죽음을 이겨내고 삶으로 나아간다. 모든 과거가 항상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떤 과거는 떠올리는 순간 위로와 그리움이라는 애매하면서도 모순된 감정 상태를 느끼게 하고 그러한 모순 속에서 그리움은 점점 커져 오히려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까지 살 수 있는 힘이 된다. 남아 있는 향기가 피어오르다 서서히 가라앉아 다시 차분해지는 듯한 밴드의 마지막 반주는 서서히 퍼져 풀어헤쳐지는 델리만쥬의 향기 같다. 하지만 향기가 사라졌다고 떠오른 기억 속 당신까지 흩어지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떠오른 당신은 그리움 속에서 남은 오늘의 잔재물을 위로로 풀어줄 것이며 이어질 내일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과거에 스쳐간 '너'는 그리움을 거쳐 위로가 되어 오늘의 '나'를 살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