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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의숲 Apr 02. 2019

여승무원 객실 침입사건

인턴 2

                           


주연과 정연, 정과장은 프런트데스크로 돌아오는 길에 로비를 지나쳤다. 로비엔 외항사 승무원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호텔엔 매일같이 서른명 정도의 외항사 승무원들이 투숙한다. 그들은 비행을 마치고 호텔에 하루정도 머물며 휴식을 취한 후 익일날 체크아웃을 하고 비행을 간다. 체류기간동안 한국 승무원들은 대부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외국 승무원들은 호텔에서 쉬면서 관광이나 쇼핑을 한다.


근무지로 복귀한 셋은 각자의 포지션을 찾아갔다. 정과장은 오피스 안으로 들어갔고 정연과 주연은 프런트데스크 스탠바이를 다시 시작했다.


정연과 주연은 이제 인턴 1개월차다. 아직 주어진 업무가 많진 있지만 객실키 만들기나 방번호를 키택(Key Tag:객실키카드를 넣어 보관하는 열쇠집)에 적어주는 일은 인턴들에게 가장 기초적인 업무중 하나다. 선배들이 체크인을 할 때면 그들은 옆에서서 모니터에 보이는 객실번호를 보고 키택에 적은 다음 객실키를 만들어

선배에게 전달해 준다. 선배들은 전달받은 객실키를 체크인 후 고객에게 건네준다. 


언뜻 보기에 복사업무만큼 단순해보일 수 있다. "그냥 방번호만 잘 적어서 선배한테 주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루에 평균 2~3백명정도 체크인을 하다보면 가끔 숫자를 잘못 적는 일이 생기곤 한다. 그래서 키택을 건네받은 선배는 반드시 객실번호를 재차 확인 하고 고객에게 전달해야 한다.


공항에서 도착한 버스에서 한 무리의 고객들이 내렸다. 그들은 양손에 짐가방을 쥐고 로비를 거쳐 프런트데스크까지 거침없이 밀고 들어왔다.


"주연씨!"


성호가 한 걸음 떨어져있는 주연이를 불렀다. 성호 또한 프런트데스크 인턴 출신으로 현재 5년차 이 호텔에서 근무중이다. 그는 사실 호텔VIP 중 한 사람인 K대 김박사님의 친구 자제분의 신분으로 인턴을 시작했다. 인턴업무를 하면서 직원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고 성호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성호는 배우 마동석만큼 거친 인상에 다부진 체격을 가졌다. 외모로 봐서는 세심한 인적 서비스보단 거친 주방 칼잡이가 더 어울리지않나 싶지만 의외로 꼼꼼한 구석이 있다. 가끔 누군가는 그를 가르키며 속된말로 빽으로 들어온거 아니냐며 의구심을 갖기고 하고 또 누군가는 그것도 능력이라며 추켜세우기도 하지만 그는 아랑곳않고 묵묵히 자신을 증명했다.


그의 부름에 주연이는 발목의 나비날개를 펄럭이며 성큼 다가섰다. 


"네 선배님! "


"내 옆에서 객실키 좀 만들어줘요."


"네!"


먼저 독일에서 큰 가방을 끌고 온 고객 일행 세명이 성호앞을 점령했다. 


"May I ask your passport?"


여권을 건내주던 세명의 일행 중 한 명이 조금 거친 말투로 회의가 있으니 좀 서둘러 달라는 의사표현을 성호에게 넌지시 건넸다. 그들은 그들 셋이 일행이니 같은 층으로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All right, Sir! Let me look it up!"(네! 찾아볼께요!)


성호는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지만 사실 그 날은 객실 상황이 좋지 못했다. 호텔은 오버 부킹이었고 예약했던 고객들이 노쇼를 내지 않고 모두 체크인을 한다면 타 호텔로의 안내도 미리 준비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행 3명을 전부 같은 층으로 배치한다는건 무리였다. 남아있는 객실 중 같은 층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성호는 세 고객을 최대한 서로 가까운 층에 배치하려고 애를썼다. 주연이는 성호가 체크인을 하면 옆에서 방번호를 키택에 받아적고 객실키를 만들어 성호에게 건네줬다. 성호는 체크인을 마치고 고객들에게 객실키를 건네주며 호텔 예약 상황상 동일한 층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단번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의심의 눈초리로 성호를 바라봤다.


"Are you sure??"


그때부터 그들은 떼를 쓰며 매니저 불러라, 우리가 누군지 아냐 등 온갖 추접한 행태를 부리기 시작했다. 성호는 그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최대한 부드럽게 얘기했다. 이런 일들은 워낙 흔하지만 응대하기 꺼려지는건 사실이다.


"고객님 마음 이해합니다. 저도 같은 층 드리고 싶은데 호텔이 만실이라 객실이 없네요. 대신 다음에 오시면 제가 매니저한테 얘기해서 더 좋은 타입으로 객실 업그레이드 해드리겠습니다."


썩 마음에 드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그들은 그 제안을 수락했고 그제서야 객실키를 받아갔다. 


"Enjoy your stay!"


그렇게 독일에서 온 고객들을 순조롭게(?) 객실로 올려 보냈다. 다른 프런트데스크 동료들 또한 체크인을 거의 마무리 해나갔다. 어느 틈에 열댓 명의 고객들로 번잡했던 프런트데스크 앞은 다시 한산함이 찾아왔다.


"이따금씩 느끼지만 독일인들을 응대하다보면 은근 기분 나빠진다니까! 물론 다 그렇진 않지만."


성호가 얘기를 꺼냈다.


"쟤네들하고 얘기하다보면 말 끝마다 '동양인들' '동양인들' 하면서 동양인들 비하하는게 느껴져."


옆에 서있던 정연이도 정색하며 말했다.


"진짜 왜 저렇게 공격적인 어투로 툭툭 말을 내 뱉으면서 신경질적인지 모르겠어요! 그냥 딱 잘라서 없다고 하면 안돼요?"


"그럼 나중에 이메일로 컴플레인 한다니까. 직원교육이 엉망이다, 체크인 한 직원 서비스태도가 왜 그 모양이냐 를 시작으로 있는 말 없는 말 다 지어내가며...그게 저런 애들 패턴이야. 한 두 번 당한게 아니라니까. 에휴 그럼 또 부서장한테 불려가겠지. 앞뒤사정 듣지도 않고 무슨 일이었냐며 경위서나 써오라고 하고 뻔해! 나만 피곤해져."


"암튼 도와줘서 고마워 주연아!"

"네 선배님!" 



띠릭띠릭 띠릭띠릭


데스크 한 켠에 숨어있던 전화가 울어댔다.


"네? 더블체크인이요??"


고객지원실에서 더블체크인이 났다는 전화였다. 더블체크인이란 이미 투숙중인 고객의 객실에 또 다른 고객이 그 객실로 체크인을 하고 들어갔다는 얘기다. 시스템상으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화를 받은 성호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 옆에 서 있던 주연도 성호를 보고는 무슨일인가 싶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조금 전 성호가 체크인을 도와준 독일에서 온 고객이 다시 짐가방을 끌고 성호 앞으로 걸어왔다.


그는 성호의 가슴팍에 키를 던지며 "Again!" 하고 외쳤다. 왜 몇 번이나 키가 안되냐는 말이었다. 성호는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고 옆에 있던 주연이 다시 키를 만들어 왔다. 키를 받아 든 그는 한 마디 덧붙이며 엘리베이터를 향해 돌아섰다.


"But nice try! Thank you"


성호와 주연이는 저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뭔 nice try?"


프런트데스크 책임자인 정과장에게 보고가 들어갔고 사태의 전말을 밝혀나가기 시작했다. 그 객실에 시스템상 투숙중이던 고객은 30분전에 체크인 한 모 항공사 여승무원이었다. 시스템에서 체크인 한 기록과 시간순별로 키가 만들어진기록 그리고 손님이 성호에게 던진 키택에 적힌 방번호를 보고 대략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당직업무를 보고 있던 난 정과장에게 보고를 받고 객실로 득달같이 뛰어 올라갔다. 나는 문 앞에 당도해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노크를 했다.


똑똑똑!


비스듬히 열린 문사이로 손가락 한마디 정도 틈이 보였고 그 사이로 빛이 새어나왔지만 방안에선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나는 재차 노크를 했다.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문쪽으로 몸을 최대한 밀착해 한 쪽 귀를 틈사이로 밀어넣어봤다. 그러자 누군가 나지막히 흐느끼는 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나는 직감적으로 여승무원이라는 걸 알아챘다.


"고객님 실례하겠습니다!" 당직 지배인입니다.


그렇게 문 안쪽을 향해 외치고는 객실문 손잡이를 살짝 당기려다 말고 망설여졌다. 그 사이 고객이 문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와 난 객실 소파에 마주보고 앉았다. 여전히 그녀의 눈은 젖어 있었고 울먹임에 목소리를 잘 나오지 않았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긴 머리가 그녀가 겪은 상황을 짐작케 했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그녀는 감정을 추스리려고 애를 썼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어요."


겁먹은 사슴처럼 그녀는 젖은 두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스며있었다. 


"하아....." 나는 어떠한 말도 할수없었다. 오로지 탄식만이 나올뿐이었다.


"너무 놀라서 누구냐고 물어볼 틈도 없었고 움직일 수도 없었어요. 


어떤 다갈색 머리를 가진 외국인이었는데 그냥 문을 닫고 나가더라고요."


"하아....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이렇게 큰 호텔에서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 수 가 있어요."


아무리 그녀가 격분에 찬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모멸에 찬 말을 던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죄스러운 마음이 컷기에 오히려 그녀가 더 화를 냈으면 싶었다. 섣부른 변명이나 어줍잖은 보상얘기를 꺼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보다 우선은 그녀의 얘기를 충분히 듣고 또 듣고 또 들어주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 진짜!... 저는... 이해가 안가요!!"


다시 생각해봐도 끔직한지 그녀는 팔뚝에 돋는 소름기를 쓸어내리며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어떻게... 아니 어떻게..."그렇게 그녀는 몇 번이나 말을 이어가려다 멈칫했다. 


결국 마지막에는 실소를 터트리며 입을 꾹 닫았다. 그녀는 어둠이 깃든 창밖을 내다보며 황망하게 앉아 시선을 고정시켰다. 입장바꿔 생각해봐도 차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거듭 사과를 할 뿐 달리 드릴 말이 없었다. 낯선 눈길이 급작스럽게 적나라한 상태인 내게 끼어든다는 끔찍한 일은 그 누구도 상상하고 싶지 않을 것이기에.


시간을 되돌려봤다. 저녁 6시경 1203호실에 승무원이 체크인을 했다. 그로부터 30분 후 저녁 6시 반 1203호실에 독일에선 온 고객이 그 객실로 들어갔다. 30분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성호가 독일 고객을 상대로 체크인을 하고 주연이 옆에서 키를 만들었으며 키택에 방번호를 적었다. 성호는 체크인 고객 3명에게 객실키를 각각 분출했다. 3명의 고객이 객실로 올라간 후 얼마 지나지않아 그 중 한 명이 객실층 복도에서 고객지원실에 전화를 했다. 


"나 방금 체크인 했는데 젠장 객실키가 작동을 안해! 어서 와서 손 좀 봐줘! 지금 회의가 급한데 이런 망할!"


12층으로 당장 뛰어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고객지원실에서는 손님 이름을 미쳐 확인하지 못했다. 어쨌든 고객지원실은 즉각 벨데스크로 전화를 걸었다. 보통 키가 작동을 안하면 벨맨이 새 키를 만들어 객실로 올라가는게 메뉴얼이었기 때문이다.


벨맨은 곧장 카드키를 새로 만들어 객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던 고객과 마주쳤다. 고객은 얼굴에 있는 모든 근육을 움직이듯 인상을 찌푸리고는 벨맨이 들고 있던 객실키를 빼앗은 뒤 그의 눈을 노려보며 말했다. 


"Please! please!" 


그 고객은 전달받은 키를 들고 1203호 실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가 객실 문을 열었을 때 안에 있던 여승무원은 하필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는 독일 고객은 문을 닫고 프런트데스크로 내려와 성호에게 키를 던진 것이다.


언뜻보면 업무상 별다른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애초에 주연이 키택에 적은 방번호와 성호가 시스템에서 체크인 한 방번호가 달랐던 것이다. 성호는 1208호를 시스템에 체크인 했고 주연은 1203호를 키택에 적었다. 그리고 객실키는 그대로 독일 고객에게 전달되었다.객실키는 1208호로 만들어졌지만 키택에는 1203호가 적혀있으니 고객은 1203호 객실로 올라가 문을 열려고 했던 것이고 당연히 1208호 키가 1203호에서 작동할 일이 없으니 고객은 복도에 놓여진 전화를 이용해 키가 작동을 안한다며 고객지원실에 전화를 한 것이다.


사실 이 사태를 막을 수 있었던 기회는 여러번 있었다. 최초 고객지원실에서 이름 확인을 했어야 했다. 벨맨도 올라가기전 시스템에서 손님 이름과 방번호를 한 번 더 확인하고 키를 전달해 줬어야 했다. 물론 고객이 윽박지르듯 전화도 끊어 버리고 키도 빼앗아 갔다지만 그것만으론 충분한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 시스템상 분명 한국이름을 가진 여자였는데 조금 더 능동적으로 업무를 처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일을 하다보면 이상하게도 일이라는게 한 번 어긋나려고 하면 이렇게 어긋나기도 한다. 다시 오피스로 내려온 난 성호에게 사건경위서를 지시했다. 내겐 누구의 잘못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실수에 대해 직원들을 추궁해봤자 분위기만 더 험악해질 뿐이었다. 그보단 시스템을 손 봐야 했다. 경위서를 검토한 후 난 인턴사원들이 키택에 객실번호를 적어주는 업무를 하지 못하게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게 늘 그렇듯 어딘가는 빈 틈이 있게 마련이다. 키택에 객실번호를 적어주는 행위는 효율적인 업무형태인건 분명하다. 하지만 효율만 따지다보면 업무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스템을 바꾼것이다. 


성호는 어둠이 내려 앉아 있는 밖으로 나와 자신의 잘못을 자책하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나간 주연이는 성호에게 다가가  두 손을 꼬물거리며 성호 눈치를 살폈다.


"죄송합니다."


"주연씨가 뭐가 죄송해 내가 미쳐 확인 못한 걸..."


"그래도 제가 방번호를 잘못 쓰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되버렸잖아요..."


"괜찮아 그럴수도 있지 뭐!"


문득 성호의 머리에 독일 고객이 마지막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사람이 왜 마지막에 그런말을 했는지 알겠어!"


"무슨 말이요?"


"우리한테 But nice try, thank you라고 했잖아!"


"아 맞아요! 그 말 했어요! 근데 왜죠?"


"그 놈 속으로 은근 좋았던거지. 키가 작동 안한 건 화가 났지만 객실에서 여승무원과 마주친건 좋았던 거야!"


"아 진짜 변태같은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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