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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의숲 Mar 11. 2019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1

미세먼지만도 못한 인간의 어리석음


으레 밤에는 호텔을 찾는 고객들이 많지 않아 야간 업무가 수월할 거라고 생각을 한다. 가끔 속없고 생각도 없는 직장 상사들 몇몇은 그냥 자리만 지키고 있는 거 아니냐며 야근수당을 불로소득으로 보기도 한다.


물론 야간에는 고객도 뜸하고 업무 자체단조로운 건 사실이다. 그들 말대로 가끔 몇십 분씩 그냥 앉아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야근 업무는 절대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우선 밤을 꼬박 새우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되고 힘들다. 이십 대 때야 친구들과 어울려 밤을 새우는 일이 다반사라 그럭저럭 야간 근무도 견뎌내지만 그 나이를 넘어서면 서서히 야근을 기피하게 된다. 새벽 4시 즈음이면 피곤이 온몸을 꽉 껴안아 정신은 몽롱해지고 심장박동은 빨라지며 조금씩 몸에 무리가 오는 게 느껴진다. 아침이 되면 시꺼먼 다크서클이 볼 따귀에 좔좔 흐르면서 밤 사이 폭삭 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가끔 직원들끼리 야근수당은 수명과 맞바꾸는 일이라고 농담을 건네받기도 한다.



이유는 또 있다. 야근이 만만치 않은 건 밤 고객은 응대하기가 몇 배 더 힘들다는 것이다. 난동 부리는 취객들, 시비 거는 노숙자들, 몰상식한 불륜들, 개념 없는 미성년 커플들, 연예인 DC 없냐는 한물 간 연예인들 등 이들을 상대하다 보면 내가 호텔리어인지 방범도는 순찰대원인지 술집 종업원인지 아니면 외곽에 모텔 알바를 뛰러 왔는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그래서 매일 밤 야간 근무자들이 업무를 시작할 때면 일종의 의식처럼 중얼거리는 말이 있다.


'오늘 밤도 평온하기를!'


제발 어느 누구도 이 밤의 끝을 붙잡두지 말기를, 제발 아무 사건, 사고 없이 오늘도 무사지나가길, 제발 간절히 바라는 이 마음이 저 하늘 닿기하며 말이다.


아마도 우리뿐이 아닐 것이다. 편의점 알바, 24시간 배달원, 경비원, 소방서, 경찰서, 병원 그리고 밤새 갓난아이 곁을 지키는 육아 맘, 육아 대디 등  누군가를 위해 매일 밤을 지키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 모두가 같은 마음이 아닐까.


미세먼지가 코 끝을 괴롭히는 요즘 같은 봄날 저녁이었다. 호텔에 도착해 옷을 유니폼으로 바꿔 입고는 그날 밤도 무탈하기를 바라며 야간 근무를 시작했다. 객실 투숙 예약 고객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근무시간도 수월하게 흘러갔다.


자정이 넘어갈 무렵이었다. 데스크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띠릭띠릭 띠릭띠릭''


교환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지배인님! 지금 15xx호실 욕실에서 응급 폰이 울렸습니다!! 빨리 올라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모르겠어요. 처음엔 깊은 신음 소리만 겨우 들리더니 이젠 아무 대답도 없고 수화기에선 쿵 쿵하며 뭘 집어던지는 소리만 들려요."


''그럼 얼른 119부터 불러야죠!!''


응급 폰은 전 객실 욕실에 설치되어 있다. 사실 응급 폰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욕실 전화를 호텔에선 흔히 응급 폰이라 부른다. 고객들은 일반적으로 객실 내부에 있는 전화를 이용하지 의도적으로 욕실 전화를 사용하진 않는다. 욕실 전화는 대부분 자신의 의지로 뭔가를 할 수 없을 때, 말 그대로 응급상황 시에만 사용되곤 한다. 그래서 욕실 전화가 울리면 그 객실에 뭔가 긴박한 상황이 일어났음을 암시하는 것이고 그 이유직원들 사이에서는 욕실 전화가 응급 폰으로 불린다.


등록시스템에서 고객 이름을 확인해보니 그 객실에는 일본의 한 투자회사에 소속된 고객이 혼자 투숙하고 있었다.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일까? 혹시 객실에서 누군가와 싸움이 일어난 걸까. 아니면 호텔시설어떤 문제가 생겨 고객이 다친 걸까. 확실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지만 어쨌든 난 재빨리 마스터키를 들고 객실로 뛰어 올라갔다.


객실 앞에 도착해 벨을 몇 번 눌렀으나 방에선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죽은 듯한 정적만이 복도를 잠식하고 있었고 마치 환청이라도 들릴듯 한 기분이었다. 

나는 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고객의 이름을 불렀다. 


"하야쿠상!"


그러자 안에서 무언가 때려 부수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난 지체없이 마스터키로 문을 열고 객실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안을 들여볼 새도 없이 욕실로 향했다. 

비스듬히 열린 문 틈 사이로 쓰러져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는 그 자세에서 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는 다른 손으론 잡히는 모든 것들을 전부 집어 던지고 있었다.

바닥엔 호텔에서 제공되는 욕실 어메니티들이 나 뒹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참기힘든 고통이 느껴지는지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야쿠상!"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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