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용기, 두려움, 그리고 숭고한 결단

음악극 <태일>을 보고

by 북두칠성

음악극 <태일>은 단순한 뮤지컬이 아니다. 두 명의 배우가 청년 전태일과 그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무대 위 그대로 구현하며 한 사람의 숭고한 희생과 인간적인 삶을 진솔하게 담아내 시대를 초월하는 울림과 메시지를 던진다.


이날, 필자는 김리현 배우와 이현진 배우의 회차를 관극했다.


거침없고 당돌한 소년 같은 리현 배우가 그려내는 태일(이하 '리태일'). 리태일은 일찍 철이 들어 자신의 신념을 위해 망설임 없이 돌진하는 10대 소년에 가까웠다. 배우 본체의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은 무대 위에서도 자연스레 스며든다. 해설 중 이현진 배우와 장난을 주고받는 모습에서, 무거운 서사 속에서도 태일이 끝내 잃지 않았을 생기를 떠올리게 했다.


음악극 <태일>만의 특징 중 하나는, 배우 두 명이 연기를 하지 않고 그들의 삶과 연관지어 인생의 원동력을 언급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정해진 각본이 없고, 매 회차 대사가 달라지며 온전히 배우들의 생각과 신념으로 구성된다. 이날 김리현 배우는 태일의 원동력으로, 태일 외 목소리를 담당하는 세 명의 배우들을 꼽았다. 그는 그들을 ‘누나들’이라 불렀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바로 이 지점이 리현 태일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그 감각이 김리현이라는 배우를, 태일이라는 인간을 끝까지 움직이게 했을지도 모른다.


리태일은 체급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벌꿀오소리처럼 달려들고 부딪친다. 겁이 없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한 번 옳다고 판단한 일에 대해서는 번복이라는 선택지를 애초에 고려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철이 일찍 들고 성격이 강직하다 하더라도, 태일은 결국 남들보다 조금 더 용기 있는 스무 살 남짓의 어린 청년일 뿐이다. 애초에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억누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마음에 가깝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리태일은 누구보다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용기는 태일의 분신 후 50여년이 지난 지금, 과연 세상은 달라졌는지, 우리는 그처럼 불합리에 맞서 행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만든다.


불가항력적이고 무기력하며 나약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한 채, 최후의 결단을 내리기 직전. 리태일은 늘 외면해왔던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마주한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책상 앞에 앉아, 끝내 참아왔던 눈물 한 줄기를 흘리는 순간— 한 인물의 감정이 그토록 깊게 파고든 경험은 흔치 않았다. 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일지라도, 결국은 온갖 감정을 느끼는 어린 소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 장면은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용기와 지극히 인간적인 나약한 면모는 태일의 숭고한 희생 후 50여년이 지난 지금, 과연 세상은 달라졌는지, 우리는 그처럼 불합리에 맞서 행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만든다.


커튼콜에서 책 위에 돈을 올려두고 기도하는 장면 또한 강하게 머리에 각인되었다. 그것은 ‘김리현 배우’가 아니라, 수많은 이를 위해 자신을 내던졌던 청년 ‘태일’의 고결한 영혼과 숭고한 대의가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하나의 몸짓처럼 느껴졌다. 여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프로그램북에서 리현 배우는 이런 말을 남겼다. 촛불 하나만으로는 무대를 밝힐 수 없지만, 촛불이 여러 개 모이면 조명 없이도 무대를 빛낼 수 있다고. 참담한 현실에 지친 태일이 눈물을 훔치면서도 촛불을 하나씩 켜, 사방에 펼쳐놓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미한 한 걸음일지라도 계속해서 쌓인다면, 결국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 그 절실함이 그 행동에 담겨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촛불은 집회와 시위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바람에 쉽게 꺼지는 촛불 하나는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하지만, 수십만 개가 모이는 순간 그것은 거대한 변화의 불길이 된다. 그리고 그 작은 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끝까지 지켜내는 시민들의 노력은, 그 자체로 이미 위대하다. 태일이 켰던 그 작은 불씨는 오늘날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타오르고 있으며, 우리 모두는 그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불합리에 맞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앞서 떠난 이들을 위해, 앞으로 살아갈 이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