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가무극 <천 개의 파랑>을 보고
천선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천 개의 파랑>은 휴머노이드가 상용화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천 개의 단어로 세상을 배운 로봇이 소통의 부재로 아픔을 겪는 세 가족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관객에게 희망차고 따스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경주마 기수 목적으로 개발되었으나 연구원의 실수로 천 개의 단어를 알게 된 로봇 콜리는 단어를 통해 세상을 깨닫고 자신의 경주마 ‘투데이’와 교감한다. 그는 투데이가 혹사당하며 달릴 때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깨닫고, 의도적인 낙마를 통해 스스로를 고장 낸다. 결국 콜리는 폐기 처분을, 투데이는 안락사를 기다리는 처지가 된다. 하지만 로봇 공학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던 소녀 연재가 전 재산을 털어 콜리를 집으로 데려온다.
연재의 어머니 보경은 과거 화재 현장에서 3%의 확률을 뚫고 생존한 뒤 두 딸을 사력을 다해 키우고 있었고, 언니 은혜는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었다. 연재 역시 불우한 환경 속에서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였다. 서로를 배려한다는 명목 하에 소통이 부재했던 이 가정에 들어온 콜리는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며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게 돕는다.
이 작품은 단 한 명의 인물도 헛되이 버리지 않고, 단 한 장면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마냥 밝지도, 마냥 어둡지도 않다.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긴 주인공의 과거를 잔잔하게 풀어내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모습은 희망차고 찬란하게 그려낸다.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인물들이 넘어지고 부딪히며 다시 일어나는 모습은 가슴 한켠에 파도 같은 묵직한 메시지를 남긴다. 과거의 그리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에 집중하고 가까운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모두가 질주하는 세상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의 중요성을 말이다.
세련되고 다채로운 시각적 효과 역시 시선을 사로잡는다. 직사각형 형태의 LED 판촉물들이 다각도로 움직이며 공간의 변화를 나타내고, 주인공의 벅찬 심경을 표현하기 위해 무대 전체가 푸르게 물들기도 한다. 과거를 극복하는 장면에서는 모든 상처가 흩날려 사라지듯 꽃잎 연출을 사용한다. 가무극답게 수십 명의 단원이 경주하듯 달려가는 장면과 배우가 직접 표현하는 경주마와 로봇의 모션 연기도 인상적이다.
콜리 역의 윤태호 배우는 특유의 소년미 넘치는 음색으로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로봇을 연기했고, 연재 역의 효정 배우는 청아한 음색으로 당차고 속 깊은 소녀를 보여주었다. 은혜 역의 강혜인 배우는 장애인이 겪는 고충을 깊이 있게 표현했으며, 보경 역의 김건혜 배우는 늘 미안함을 안고 사는 현실적인 어머니를 연기해 심금을 울렸다.
2주 남짓한 짧은 공연 기간이지만, 이 작품은 극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아낸 ‘완벽’에 가까운 공연이다. 모든 관객이 이 작품을 통해 감동과 희망, 그리고 행복에 대한 메시지를 얻길 바란다. 뜨거운 눈물로 상처를 비워내고, 그 빈자리에 새로운 깨달음이 자리 잡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