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천으로 깨어지는 금기와 드러나는 근원적 욕망

연극 <알앤제이>를 보고

by 북두칠성

미학적 완성도가 높다는 찬사를 숱하게 들어온 연극 <알앤제이(R&J)는 제작년 간신히 한 번 볼 수 있었다. 도저히 시간이 맞지 않아 포기하려던 찰나, 운 좋게 손에 쥔 총막공 무대석 티켓은 내게 '자첫자막(처음이자 마지막 관람)'의 기회이자, 이 극의 강렬한 여운 속에 침잠할 수 있는 행운을 안겨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 한 번이라도 이 극을 본 것이 다행이라 느껴질 만큼 매력적이고 예술적인 작품이었다.


조명이 채 켜지기도 전, 기계적인 박자에 맞춰 등장하는 학생들의 걸음걸이는 묘한 공포감을 조성한다. 세뇌된 듯 물리 공식을 읊조리고 맹목적으로 기도를 올리는 그들의 모습은 학교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보였다. 억압과 통제만이 실존하는 공간에서, 그들이 금기의 책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펼쳐 든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욕망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원초적인 동력이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 그리고 행복을 바라는 마음까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인간은 각자의 욕망을 품고 살아간다. 엄격한 규율 속에 박제된 학생들은 가질 수 없는 것을 탐닉하고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 본능적인 욕망을 위해 붉은 천 아래로 모여든다.


학생들은 속박이나 다름없는 넥타이와 재킷을 벗어던지고 무대 위를 질주한다. 높은 책상을 단숨에 뛰어오르고 객석 사이사이를 가로지르는 그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그 자체로 자유를 향한 갈망이다. 처음엔 가벼운 일탈로 시작했던 연극은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들의 숨소리와 손동작 하나하나에 스며든다. 그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어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특히 무대석에서 지켜본 그들의 땀방울과 거친 숨소리는 관객의 피부에 직접 와닿는다. 관객은 더 이상 제3자의 위치에서 공연을 관찰하는 구경꾼이 아니다. 배우들의 고통과 눈물, 열정을 오롯이 공유하며 연극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퍼즐, 즉 '학생 5'가 되어 극 속으로 편입되며 학생들이 느끼는 살아있다는 감각마저 공유하게 된다.


무대 위에서 독약이 되었다가, 칼이 되었다가, 때로는 연인의 옷이 되기도 하는 '붉은 천'은 상징의 결정체다. 그것은 현실을 도피하고자 하는 열망이자, 금기를 깨고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탐욕의 수단이다. 한 마디로 현실과 이상을 가르는 경계라고 할 수 있다. 테이블 위로 씌워진 붉은 천 안에서 촛불을 켜고 마주 앉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습은 영롱한 보랏빛으로 빛나며, 비극적인 현실을 잊게 할 만큼 신비로운 이상향을 그려낸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꿈은 잔혹하고 무거운 종소리와 함께 깨어진다. 다른 학생들은 서둘러 교복을 챙겨 입으며 다시 규율의 세계로 돌아가 타협하지만, '학생 1'만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절규한다. "어젯밤에 꿈을 꾸었다"는 그의 반복되는 외침은, 그 밤의 연극이 단순한 '한여름 밤의 꿈' 같은 허상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누군가에게는 찰나의 일탈이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현실 너머에 분명히 존재하는 이상향에 닿은 유일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배우들의 건강이 걱정될 만큼 에너지를 쏟아붓는 이 극을 보며, 나는 다시금 '기록'의 의미를 생각한다. 억압된 현실 속에서도 기어코 꿈을 꾸었던 학생들의 몸부림처럼, 우리 역시 각자의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저마다의 '붉은 천'을 흔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록 현실의 종소리가 우리를 다시 규율 속으로 불러들이고 속박할지라도, 나의 뜨거운 갈망과 간절한 꿈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내 곁에 함께하며 내 삶의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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