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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명못정함 Jul 01. 2023

알바 썰

수련원과 캠프장, 막전막후  

브런치에 슬슬 글을 써볼까 하는데 쉽지가 않다. 귀차니즘이 단연 최대 문제지만 뭘 쓸지도 솔직히 난해하다. 내 일상 썰이라지만 미래 얘기를 꺼내자니 오글거리고, 현재를 적자니 일 얘기뿐인데 할 말이 없다. 과거를 떠올려도 ‘추억팔이’ 느낌이 강해서 싫지만, 그럼에도 뭐 하나 고르자면 차라리 추억팔이가 나은 듯하다.


그렇다고 남 얘기를 쓸 수도 없고, 나 따위가 세상사를 진단하는 것도 우 않나.


바로 전에 쓴 글(내 OST)의 연장선에서 옛 알바썰을 풀어보기로 했다. 여러 일을 해봤지만, 사람들한테 잘 알려지지 않은 일과 뒷이야기들 위주로 정리해보기로.


청소년수련원 “여러분을 믿습니다”의 비밀

교사의 ‘피의사실 공표’와 조교의 ‘표적수사’

수련원 일하며
레크레이션 준비

청소년수련원 조교로 2년 조금 넘게 일했다. 학기 중 찾아온 중·고딩들한테 빨간 모자 쓰고 얼차려 따위를 주는 그 조교였다. 단 벌써 14년 전이라 지금과는 많이 다를 거다. 윽박지르고 얼차려 정도는 줬었는데 빨간모자까진 쓰지 않는 때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청소년수련원’을 떠올리면 공통적으로 스치는 장면들이 있다. 일단 조교들의 첫 대사. 학생들 집합시켜 놓고 “여기 놀러왔어!!!!” 소리 지르는 거다.


전국의 조교들이 미리 대사를 맞추는 것도 아닌데 이처럼 같은 패턴이 나타나는 이유는 다름 아닌 ‘학습 효과’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조교들도 어릴 때 수련원 다 다녀와 봤다. 그때 저들이 들은 말도 그냥 “여기 놀러왔어!!!!” 이런 거였다. 그러니 이건 별 생각 없이  내뱉는 거다.


허나 진짜 중요한 건 사실 따로 있다. 대사가 일치한다는 것보단 ‘굳이 왜 소리까지 지르느냐’는 의문을 품어야 한다.


이걸 변론해보겠다. 중딩이든 고딩이든 수련원에 막 도착한 애들은 상태가 카오스다. 모처럼 학교를 벗어났다는 해방감 때문인지 대단히 무질서하다. 저들끼리 웃고 떠드느라 줄도 못 맞추는 건 기본이고, 집단 무리를 이룬 탓에 기도 세다. 일종의 영웅심리 같은 게 발동해서 “난 쫄지 않았다”는 신호를 여러 형태로 내비친다.


이 때문에 조교들도 무리를 이뤄 소리를 지르고 만다. 이게 합당한 교육 방식일 리는 당연히 없겠지만, 당장 줄부터 세워야 하는 처지에 교육이나마나 뭣이 중허겄냐.


암튼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나면 아주 조금씩 질서가 잡혀간다. 초딩들은 제대로 잡히는데, 중고딩들은 솔직히 찝찝하다. 애들 얼굴 보면 “조교들도 고생이네, 뭐 줄 정도는 맞춰주지”하는 표정이다. 그렇게라도 협조해주면 다행이다.


다음으로 소지품 검사. 강당에 다 불러 모은 다음 앞줄부터 가방 뒤지는 조교들을 다들 봤을 거다. 대강 3∼4번째 줄까지만 검사하고는 “여러분들을 믿습니다” 하면서 결국 철수하는 바로 그 장면.


이게 허튼 짓이란 걸 조교들도 솔직히 다 안다. 그냥 ‘술 담배 등 소지품에 대해 나중에라도 걸리면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정도의 경고 표시로 이해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2년여 수련원에서 일하며 강당에서 바로 적발되는 학생(이라 쓰고 바보라 읽는다)은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이를 면피 행위 정도로 치부해서도 곤란하다. 분명 소지품 관련 경고를 미리 던진 거다. 또 조교들도 성인 된지 얼마 안 된 20대 초중반의 철부지들로서, 학생들에 대해선 꽤 잘 알고 있다. “내가 오늘 무조건 한 놈은 잡고 만다”며 눈에 불 켜는 조교들이 99%다. 나도 많이 잡아봤다.


단속이 어려울 거라 생각한다면 그 또한 경기도 오산이다. 저녁 점호 마친 뒤 단단히 맘먹고 각 방에 전격 압수수색을 단행하면 싸그리 털 수 있다.


여기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학교 선생님들이 “누구, 누구, 누구한테 술과 담배가 있을 것”이라는 식의 피의사실 공표를 미리 다 해준다.


학교마다 다르긴 하나, 교장이나 교감 혹은 학생부장 선생님 등이 ‘강한 단속’을 하달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런 사례에선 선생님들이 지목한 유력 용의자들을 대상으로 ‘집중 표적수사’를 벌여 정말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곤 했다.


조교마다 단속방식은 제각각으로 나는 드라이버로 천장에 에어컨까지 다 깐 적도 있더랬다. 한 동료는 복도를 포복으로 기어가 방안을 덮치곤 했는데, 하루는 베란다에서 담배 피는 아이를 현행범으로 검거하며 공범들까지 일망타진한 적이 있었다.


천사 같은 어린이들과 어린이캠프

뒤에선 돈봉투 오가며 ‘뽀찌’ 전쟁 

캠프장 일하며
캠프장 일하며

청소년수련원은 특성상 학기 중에만 운영된다. 그러나 수련원 역시 장사는 해야 하므로 방학 중에도 나름의 사업 계획을 갖추고 있다. 내가 일했던 수련원은 각각 ‘어린이 여름캠프’, ‘어린이 겨울캠프’를 운영했다. 난 더운 게 싫어서 겨울캠프만 했었다.


겨울캠프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유치원, 어린이집, 학원, 교회 등에서 온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눈썰매장, 비눗방울쇼 관람, 대나무피리 만들기, 미니바이킹 타기, 간식 먹기 등을 이어가는 코스다.


유치원, 어린이집 등에서 각각 하루 수십 팀씩 총 3000명 정도 왔다. 약 1000명은 교사들이고 4∼7세 어린이들만 대략 2000명. 학기 중 ‘조교’로 불렸던 알바생들은 ‘캐빈’(가이드)과 ‘썰매장 안전요원’ 등에 포진된다.


나는 캐빈을 주로 맡았다. 적으면 20명 규모 어린이집 한 팀을 맡고, 많을 땐 80명 어린이집 3곳씩 총 240명가량을 한 번에 맡기도 있었다. 이 바닥도 짬이 중요해 1년차 때는 캐빈도 한다. 안전요원으로 일하다 캐빈으로 승진(?)하고, 캐빈으로서도 경험을 누적하면 하루에 2∼3개 팀을 동시에 책임지곤 한다.


천사 같은 어린이들과 일하면 종일 미소와 웃음만 나온다. 학기 때 “여기 놀러왔어!!!!” 소리지르던 조교들이 방학  귀요미 동물모자를 쓰고 “친구들~ 두 줄 기차 서세요~”하며 동요도 같이 부른다. 개인적으로는 동요 ‘피노키오’를 좋아해 즐겨 불렀지만, 초반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CM송을 동요로 착각해 부르다 세상을 등질 뻔한 위기를 겪은 바 있다.


암튼 이 역시 마냥 재밌는 일이라고만 여겨선 안 된다. 아이들의 귀여움과 별도로 다루기 힘든 실태를 인정하고 격려해줘야 한다. 아이들은 결코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들으면 애들이 아니다”라는 격언이 우리 세계에선 진리였다.

 

물론 이는 어쩔 도리가 없다. 아이들이 말을 이해부터 해야 듣든 말든 할 텐데, 그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뛴다. 항상 뛴다. 그냥 뛴다. 목적지도 없이 뛴다. 냅다 뛴다. '세상아 잡아봐라'하며 뛴다. 얘네들을 번쩍 들어 올려 어디로 옮겨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천사들도 결국은 인간인지라 땀 냄새는 어쩔 수 없다. 또 틈틈이 간식도 먹지만 침을 많이 흘리며, 작은 손으로 작은 입에 음식을 제대로 넣을 리 만무해 발생하게 되는 입 냄새도 만만치 않다.


이 같은 여러 사정에 따라 어린이들하고는 하루만 일해도 진이 빠진다. 업무강도만 놓고 보면 차라리 1박2일 중고딩 수련회 때가 수월했다.


그럼에도 어린이캠프에 임하는 캐빈들의 열일 의지는 남다르다. 여기에도 충격적인 비밀이 있는데, 바로 ‘뽀찌’ 때문이다. 쉽게 말해 뒷돈. 뽀찌의 어원을 살펴보니 도박판에서 구경꾼이나 심부름꾼한테 용돈처럼 주는 돈을 의미한단다.


어린이캠프 세계에서도 뽀찌란 게 횡행했다. 요즘은 아마 없을 걸로 추정된다. 나 때도 1년차부터 3년차까지 매년 뽀찌의 규모가 급격히 우하향하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암튼 어린이집 원장님들이 캠프를 마치고 원대 복귀할 때면 캐빈들한테 수고비 명목으로 뽀찌를 건네곤 했다. 3만 원이 흔했고 많으면 5만 원, 아주 가끔 10만 원을 주시는 황송한 어린이집 원장님도 계셨다.


근데 이 뽀찌가 무조건 나오느냐. 아니다. 앞서 말했듯 ‘열일 의지’의 동기가 뽀찌였듯 정말정말 일을 잘해야 나온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아도, 계속 뛰어도, 계속 먹어도, 절대 웃음을 잃지 말고 놀아줘야 한다. “오늘 하루는 얘가 내 아들이다, 딸이다” 해야 나올까 말까다. 세상에 공짜 없지만, 쉽게 버는 돈도 없다.


무엇보다 약 3000명이 뒤섞인 캠프장, 인파가 몹시 북적이는 가운데서도 눈썰매장 등의 프로그램 진행이 막힘없어야 한다. 이게 어렵다. 추운 겨울캠프인데 코스를 잘못 짰다가 미니바이킹 등 앞에서 대기줄이라도 길어지면 망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뽀찌는 고사하고 원장님 컴플레인에 가루가 되는 수가 있다.


그럼 코스를 미리 잘 짜두면 되지 않냐는 의문이 뒤따르겠지만 안 된다. 기본적으로 먼저 도착한 어린이집부터 프로그램을 도는데, 각 코스별 인파가 얼마나 모였는지 등을 무전기로 실시간 계속 확인해야 한다.


게다가 ‘동선’도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비눗방울쇼를 관람한 뒤, 걸어서 10분 걸리는 썰매장이 비었다고 바로 가선 곤란하단 거다. 성인이 5분 걸리는 거리도 아이들과 함께라면 15분 걸린다. 어린이집 원장님도, 선생님도, 아이들도 이건 단호히 거부한다.


기타 “아....약속 시간이 다 돼서”

 

아, 백화점에서 옷이랑 여성구두 팔았던 썰도 풀고 싶은데 안 될 것 같다.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돼서. 이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쓰도록 하고, 당장 다음에는 축구장 썰을 풀어야겠다. ㅡ끝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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