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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jaC 카작 Sep 27. 2023

'나의 사랑, 나의 수원' 단상

나의 K리그 복귀를 꿈꾸며 

살면서 가장 무의미한 짓 중 하나가 연예인·정치인 걱정이라지만 일 특성상 가끔은 그와 비스무리한 짓을 할 때가 있어 허무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그나마 올해 이직 뒤로는 이전처럼 세상만사 다 살필 필요까진 없어 한결 나아졌다. 고로 이제는 여가에도 관심을 가져보려 노력 중인데 의외로 쉽지 않다. 노비근성 탓인지 일은 어찌 하겠어도 놀 줄을 모르겠다.


와중에 잠깐 관심을 향한 쪽은 축구장이었다. K리그 직관을 재개하려 했으나 벌써 시즌 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심심한 좌절 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축구장 안 간지가 벌써 6년째다. 2017년 여름쯤 원정에서 전북에 발렸던 경기가 마지막 직관이었으니. 

 

난 수원의 지지자다. 한때는 여기에 미쳐서 축구장에서 평생 살 줄 알았다. 돌이켜보니 역사가 꽤 됐다. 1999년 종합운동장 시절 '그랑블루 어린이 회원'으로 시작해 2003년에는 청소년 모임을 만들어 수년간 대장놀이에 심취하기도 했다.

 

요즘도 인터넷으로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곤 한다. '이 팀이 내가 지지해온 수원이 맞나' 한탄이 심하고, 프렌테트리콜로의 응원 영상을 보며 그나마 '퍼포먼스는 살아 있네' 정도로 위안한다. 


더 드는 생각을 뭐랄까, 예전 분위기와는 많이도 달라졌다.

출처 : 수원삼성 블루윙즈 공식 홈페이지
삼성의 존재감 

경기력이 형편없어졌다. 스폰서가 기존 삼성에서 제일기획으로 바뀌어서란 지적이 크다. 삼성스포츠단으로 창단한 직후부터 김호 감독을 영입, 서정원·신홍기·이기형·박건하·고종수 등 초호화 스타군단을 꾸렸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


한때는 '레알수원'으로 불렸다. 안정환·김남일·송종국·이관우·이천수·염기훈·이운재·조원희 등 축구를 몰라도 이름은 모두가 알만한 선수들이 수원을 거쳤다. 패배에 익숙하지 않은 팀이었다. 


또 재밌는 점은 옛 시절엔 팬들 사이에서 '삼성'을 어떻게든 지우려고 안달이었다. 알게 모르게 수원 팬들이 K리그 문화를 선도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는데, 지역 연고 강화 일환으로 기업 대신 지역을 내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2007 시즌 수원 선발 라인업.

이런 노력이 얼마나 대대적으로 이뤄졌냐면 응원가부터 싹 다 바꿨다. 2003년쯤이었나 그랑블루(현 프렌테트리콜로)는 마치 적폐청산하듯 이를 단행했다. 응원가 가사 중 '삼성'은 다른 단어로 싹 바꿨고,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면 아예 노래를 없앴다. 


예컨대 잘 알려진 '대~한민국' 구호는 '수~원삼성'에서 유래한 박자다. 이걸 요즘 수원에선 잘 안 쓰는 이유가 있다. 그저 오래되고 촌스러워서가 아니다. '삼성'이란 단어가 들어갔으므로 2004 시즌부터 슬슬 안 쓰기 시작했다.

※ 잠깐 설명하자면 국대 서포터인 붉은악마의 초기 멤버들이 그랑블루였다. 국내 축구에서 최초의 서포터즈가 어딘지를 놓고도 이런 저런 말들이 있는데, 조직 자체는 부천이 먼저 했고, 직관 결집은 수원이 먼저라고 알려졌다. '대~한민국' 구호도 붉은악마 초기 구성원이었던 수원 그랑블루 멤버들이 도입했다고 한다. 그 시기에는 '한국'이라는 표현을 주로 써서, '대한민국'이라는 단어가 매우 어색했었다던데 응원 박자에 억지로 껴 맞췄다는 썰이 있다.

이밖에도 '우리가 원하는 건(승리!) 00의 숨통을 조여라~영원한 승리의 푸른 날개 00의 하늘을 덮는다'는 응원가, 원래는 '포레버 수원삼성~오오오~' 이거였다. 그 외에도 없어진 응원가가 여럿이다


삼성에서 3천 만 원짜리 통천을 그랑블루에 후원한 적이 있었다. 무지 멋있었다. 근데 이 통천에도 삼성 로고가 들어갔다며 비판하는 시각이 조재했다. 결국 몇 년 쓰다 버렸다. 물론 찢어지고 냄새나는 등의 문제도 컸지만 격세지감이다.

삼성에서 3천 만 원짜리 통천을 그랑블루에 후원한 적이 있었다. 무지 멋있었다. 사진 출처는 온라인 커뮤니티. 문제시 삭제.
낭만이 민폐로  

팬들의 인식도 매우 선진적으로 바뀐 것 같다. 수십 수백 명이 지하철을 타고, 그 안에서 응원가를 떼창하며 세를 과시(?)하는 문화가 예전에는 낭만처럼 묘사됐다. 이제는 민폐라고 한다. 자연스러운 변화다. 


폭력에 자비 없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2002월드컵 직후에도 서포터들 간의 패싸움이 꽤 빈번했다. 유독 과격하기로 유명한 집단들이 수원·부천·대전·안양 정도로 기억된다. 한심하지만 그땐 패싸움을 멋있게 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몇 년 전 수원팬의 서울팬 폭행 사건이 뉴스에 크게 나오면서 속으로 안타까움과 '잘 됐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이전처럼 헤프닝 내지 가벼운 다툼 정도로는 결코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라는 현실을 보여줬다는 생각이다.

※ 불편한 얘기지만 그랑블루가 프렌테트리콜로로 이름을 바꾼 배경에도 폭력이 일부 자리 잡고 있다. 자세히 말하긴 민망한하지만 핵심은 그랑블루 내 갈등이 폭력사태로 이어졌고 단체가 아예 분열됐다가 다시 합쳐지며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   
출처 : 유튜브 'J'

응원에도 문화란 게 있다. 이전엔 유럽을 본 딴다며 소위 '울트라스' 콘셉트가 대세였다. 홍염·연막 등으로 전투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멋있었다. 단 이게 '폭력' '훌리건'을 연상케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여전히 일부 팀 서포터즈들은 울트라스를 표방한다. 수원도 오래 그리 했었지만 요즘은 다른 듯하다. 표면상으론 특정 문화를 고집하지 않으나 대체로 남미의 '인챠' 퍼포먼스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현란한 북 박자나 우산 돌리기 등을 보면 그렇다.

수원 서포터 '프렌테트리콜로' 우산 퍼포먼스. 사진 출처는 온라인 커뮤니티. 문제시 삭제.
라이벌 인정

또 흥미로운 지점은 수원과 서울의 관계다. FC서울은 2004년 안양에서 연고가 이전된 팀이다. 안양은 분명 수원의 라이벌이었다. 이른바 '지지대 더비'로 불리며 양팀 선수와 서포터즈끼리 할퀴고 물어뜯는 게 일상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축구 팬들은 '지역 연고 강화'에 대한 애착이 매우 컸으므로 서울 연고이전을 못 마땅하게 봐야만 했다. 무엇보다 팬들 속내에는 '우리 팀도 언젠가 어쩌면…'하는 불안감을 커갔다.  


특히 북쪽 연고 이전(안양→서울)팀, 남쪽 연고 이전(부천→제주)팀의 스폰서가 각각 LG와 SK 등 대기업이었다는 게 큰 불안요소였다. 그래서 새 연고 팀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FC서울과 제주유나이티드를 각각 '북패륜', '남패륜'으로 명명한 이유다.


자연히 수원 입장에선 FC서울을 라이벌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두 팀이 맞붙을 때마다 언론이 '라이벌전'으로 묘사하는 데 대해서도 울화통을 터트리곤 했다. 이건 서울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하지만 지금은 '수원vs서울=슈퍼매치'로 자연스럽게 인식하는 분위기다. 아직도 수원은 이 경기 때마다 늘 '패륜송'을 부르는데, 서울은 이제 별로 타격감도 못 느끼는 것 같고…개인적으론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슈퍼매치는 K리그 붐업에도 기여하는 듯해 보기 좋다. FIFA가 선정한 세계 7대 매치라고도 알려졌고(믿을 수 있을진…) 실제 최근 관중수를 살펴보면 2006년 4만1000명, 2007년 5만5300명에 이어 최근에도 '어지간해선' 2만∼3만 명 정도는 되나보다.

나. 사진 출처는 옛 그랑블루 홈페이지. 
돌고돌고…

사람 삶이 상승과 하강을 반복한다는데 K리그도 그런 것 같다. '레알수원'이었던 내 팀이 2부 리그 강등 위기에 처했듯, 한때 평균 관중 최상위권이었던 대전이 2부로 강등됐다가 다시 살아나는 현실이 대표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전은 한때 '축구특별시'로도 불렸다. 이 타이틀은 수원이 이후 실지배했는데 내가 알기론 대전이 꽤 일찍 썼던 걸로 안다. 대전이 2000년대 초반에는 평균 관중수로 수원과 1∼2위를 다퉜던 팀이다.    


이 밖에 전북이 이렇게 강팀이 될 거란 상상을 옛날엔 한 번도 못해봤다. 울산에 대한 생각도 솔직히 좀 그렇다. 이 팀들의 성적뿐 아니라 응원 수준도 그렇다. 전북 '오오렐레'나 울산 '잘가세요' 같은 게 히트를 칠 줄 누가 알았겠냔 말이다.


결국엔 팀이 강해야 장땡이란 믿음이 확고해진다. 속된 말로 전북 오오렐레가 그리 참신하거나 매력적인 멜로디는 아닌 것 같은데 유명해진 걸 보면…팀이 골 많이 넣고 많이 이기니깐 '자주, 신나게' 부르며 남다른 기세를 보여주는 거다. 


울산 '잘가세요'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이 워낙 잘 뛰니 경기 끝 무렵 '발려버린' 원정팀에 전달해주는 치욕감도 크다.(응원가는 수원이 제일 좋다는 게 대부분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팀이 못하다보니 이젠 마치 프로야구 한화화된 듯한 느낌도…있다.)          

아, 그러고 보니 대구도 놀랍다. 과거 상암보다 더 큰 대구월드컵경기장 썼을 때는 정말 암담함과 처참함 자체였다. 지금 DGB대구은행파크로 옮긴 뒤로 엄청나진 현실은 보고도 못 믿겠다. 어떤 때는 진짜 맨시티 같다. 


개인적 바람으로는 전북이든, 울산이든, 대구든, 대전이든 어디든 다 잘됐으면 좋겠다. 경기도 응원도 잘하고, 그런 분위기에 관중도 많이 왔으면 싶다. 수원도 물론 마찬가지다. 일단 올해 강등부터 피해야 한다. 


한 번 내려가면 올라오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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