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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jaC 카작 Jun 09. 2024

'꼰대 전도사' 활약기

꼰대도 힙하다

이른바 '꼰대' 담론이 한창 일기 시작한 시절, 가끔 꼰대들이 불쌍해 보일 때가 있었다. 고작 회사 막내였던 내게도 부장 등 꼰대들은  말 한마디 하려면, 시작 전 꼭 궁색한 밑밥을 깔았다. "이런 말 하면 꼰대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뭐 이런 거였다.


그냥 속 편히 말하면 될 것을, 업계 20여 년째인 상사가 입사 1년도 안 된 병아리에 이렇게까지 눈치 볼 게 있으려나…싶다가도, 세상이 원최 꼰대들을 '악의 축'인마냥 난리발광이었다 보니 한편으론 이해도 갔다.


암튼, 이렇게 저렇게 지내다 나도 어느덧 직장 8년 차가 됐다. 후배들한테는 가끔 '꼰대' 놀림을 받고, 부장급 이상 선배들한텐 'MZ' 소리를 들을 때도 간혹 있다. 정확히는 "너도 MZ인가? 하기야 1980년대생부터 2000년대까지 다 MZ라더라. 너도 MZ해라" 식인데, 이럼 어떻고 저럼 어떻냐.


다만 젠장. 꼰대는 예나 지금이나 욕먹지만, 요즘은 MZ마저 가끔 '무개념' 등으로 조롱당하는 현상이 맘에 좀 걸린다… 여기선 꼰대, 저기선 MZ라 일컫는 자체가 뭐랄까 정체성 대혼란이다.


이 얘길 한 후배한테도 한 적이 있었는데, 얘는 "에이, 선배! 선배가 MZ는 아니죠 ㅋㅋㅋ" 사이다길래 이 자식한텐 괜히 말했다 싶었다.


결국… 아무도 관심 없을 테지만, 혼자 속으로 'MZ와 꼰대, 둘 다 받아들이겠노라' 선언했다.


SNL코리아 'MZ오피스' 방송화면 갈무리.


이 같은 선언이 정말 내 내면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요근래 몇 차례 '꼰대 전도사'가 되곤 했다. 내 또래 동기 혹은 얼마 차이 안 나는 선배들에 "꼰대가 되길 두려워 마십시오" 응원(?)과 격려(?)를 해줬다.


이유인 즉, 많은 이들은 저들이 꼰대가 되지 않겠다는 지나친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다 보니 무슨 말 한마디도 속시원히 못한다. 거 참, 세상 힘들게 사는구나 안쓰러웠다.


예컨대 한 선배는 언젠가 회사 후배와 카페에서 같이 일을 했는데,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보니 와이파이 비번을 확인해야 했더랬다. 마음 같아선 후배한테 '여기 와이파이 비번이 뭐니' 묻고 싶었지만, 그냥 자기가 일어나 카운터로 가서 알아왔단다. 후배한테 시키면 꼰대처럼 보일 수 있다나 뭐라나.


난 당최 뭔 X소리인가 싶어 "그깟 것까지 눈치를 봐야 하냐"며 '미움받을 용기'를 갖고 삶을 대하시라 당부했다. 그러자 그 선배는 내게 "너 꼰대냐"고 되치기를 시전했는데, 타격감은 결코 없었다.


아니 세상에, 후배한테 와이파이 비번 하나 못 물어보다니 해도 너무하지 않냔 말이다. 이런 걸로 후배가 선배를 욕하 걔도 제정신이 아니고, 이를 눈치보는 당신도 정신이 어떻게 된 게 아니냐고, "참 잘나셨다"고 꼬집었다. 그러다 화병 걸려서 요절하지 말고, 꼰대임을 인정하고 속 편히 살라는 거다. 그게 뭐가 어떻냔 거다.


그러다 최근에는 여러 후배들과 술자리를 갖게 됐다. 나랑 차이가 얼마 안 나는 들이었다. 지들 밑으로도 후배가 꽤 있는데, 여차저차 또 꼰대 관련 얘기가 나왔다. 역시나 "어디서 꼰대 소리 들을까 겁난다"는 거였는데, 난 어김없이 "뭐 그런 걸로 눈치 보냐"라고 일장연설을 했다.


이 말을 들은 후배들은 마치 물 만난 고기들마냥, 이때다 싶었는지 나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선배! ㅋㅋㅋㅋ 그러다 진짜로 후배들한테 꼰대 소리 들으면 어쩌려 그래요!"


난 "아무렴 어떻냐"며‥'필살기' 발언을 이어갔다. 이건 사실 '와이파이 사건'으로 대화를 나눈 선배를 비롯, 내가 '꼰대 전도사'로서 곳곳에 웅변하는 논리인데…진정 최후의 병기다.    

    

허니제이는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출연해 스스로 꼰대라고 말했다. 유레카. 사진은 방송화면 갈무리.


꼰대가 힙하다


허니제이도 스스로를 꼰대라고 정의했다! 난 이 장면이 몹시 멋있어 보였다. 보자마자 "그래 이거다" 싶었다. 주변에 이 기쁜 소식을 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 자, 자, 여러분 잘 들어보십시오. 여기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이제는 꼰대도 힙(HIP)합니다. 아니, 꼰대가 힙합니다. 천하의 허니제이는 본인을 꼰대라고 직접 밝혔답니다. 여기서 허니제이보다 힙한 사람이 과연 있습니까. 있으면 어디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예기랄꺼, 허니제이가 꼰대라 인정하면 자신감이고, 우리가 꼰대임을 고백하면 걍 꼰대 그 잡채란 말입니까. 너무 자신 없게 지내지 마십시오.       


필살기는 더 있다.


SNL코리아 'MZ오피스' 방송화면 갈무리.


SNL코리아 이다희 편에서는 '꼰대가 아닌 척, 쿨한 척은 젊꼰(젊은 꼰대)이나 하는 짓'이라고 규정했다.


어디선 꼰대, 저기선 MZ로 불리는 이도저도 아닌 '낀 세대'로서 여러분들에 해방을 권고합니다. 쿨한 척 마십시오. 후배들에 '아닌 건 아닌 거다'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매사 '그래, 그럴 수 있지' 할 적마다 가서 당신네들의 거울을 보십시오. 진실을 밝히지 못한 탓에, 어느 한 구석 미세하게 일그러진 그대들의 표정을 관찰하십시오. 당신들이 마치 후배들을 세상의 모든 위계와 질서에서 해방시켜 주는 선배인 척하며, 늘상 '그럴 수 있지' 가식된 말을 던진다는 것. 그야말로 쿨한 척에 불과하며 '젊은 꼰대'나 하는 짓입니다. 이는 요새 가장 '힙한' SNL코리아의 깨어 있는 작가들을 거쳐 배우 이다희의 입을 통해 나온 진리입니다. 여기서 SNL보다, 이다희보다 힙한 자 있습니까. 잘 새겨 들으십시오.    


당시 이 말을 들은 한 후배는 "대단히 훌륭한 역발상"이라며 '유레카!'를 외쳤다. 또 다른 후배는 "오, 이런 역대급 개소리는 처음"이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받아들이는 건 저들 몫이고, 술은 재밌게 잘 마셨다.


'꼰대 전도사'의 깃발은 앞으로도 활기차게 춤을 춘다. 단, '꼰밍아웃'을 하더라도 주의해야 할 게 있다. 이는 바로…


다음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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