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zeze Feb 02. 2022

나는 왜 스웨덴에 오게 되었는가

40을 앞둔 불안감과 두려움

2021년 8월 15일

나와 아이들이 어느덧 스웨덴에 온지 4개월이 지나  한 학기를 보내고 2주간의 방학 동안 잠시한숨을 돌리고 있다. 어느 덧 버스를 타고 원하는 곳을 다니는 것도 마트에서 장을 보고 사람들과 마주치는 많은 일상이 자연스러워졌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고.. 해외 여행이라고는 고작 2-3번 해본게 다인 내가 

어쩌다가 40 넘어서 잘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무슨 용기로 아이들과 이곳에 와 있을까..


현재, 나는 스웨덴 북쪽의 우메오 대학에서 인터랙션 디자인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고  13살/10살 아이들은 이곳 초등학교에 다니며 스웨덴에서 새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간간히 써놓은 글들을 보면 즐거운 순간보다는 심적으로 힘든 날들이 정말 많았던 것 같다. 많이 힘들고  많이 울기도 했다.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닌 일들이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어서 누군가 툭 건들기만 하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영어스트레스,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  아이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나이에 대한 부담감과 뒤쳐진다는 불안감, 미래에 대한 두려움등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나의 어깨를 누르고 있었던 것 같다. 


다시 한번 이곳에 왜 오게되었는지 생각해보며 마음을 다잡고 도전을 계속해 나가려 한다. 


삐걱대는 톱니바퀴


40이 다가오면서 나의 불안감은 커져갔다. 30대는 일하고 아이들 챙기느라 정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것 같다. 한때는 워킹맘으로서 아이들을 키우며 일하는 내 모습이 나름 괜찮아 보이기도 하고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바쁘게 하루하루 사는 것도 재미있었고 내 생활에 대체로 만족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의 짜증은 계속 늘어갔다.  

아마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인 것 같다.  

가정과 일에 충실하고 믿음직스러운 남편, 잘 자라주고 있는 아이들, 남들 보기에 괜찮은 회사. 그런 객관적인 내 모습은 나쁘진 않았다. 다들 그냥 그렇게 산다는데 나는 무엇이 그리 불만이었을까. 

회사 가기가 너무  싫었고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언제부터인가 일과 가정 내 생활이 모두 삐걱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팀과 업무가 자주 바뀌면서 일에 대한 열정과 전문성을 갖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나이먹은 그저그런 월급 루팡하는 회사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신경을 써주는 엄마도 아니고 집안일은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 어느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이 돌아가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일에 대한 불만과 짜증은 남편과 아이들에게 옮겨가고 그렇게 계속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곳을 가도.. 맛있는 것을 먹어도.. 좋은 옷을 사도 .. 소비는 잠시의 기쁨을 줄 뿐 내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크면서 돈 들어가는 곳은 많은데 대출금 갚고 교육비 내면 생활은 계속 마이너스였다. 

일과 생활은 톱니바퀴와 같아서 어느것 하나가 균형이 틀어지면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나의 생활은 그렇게 비꺽대며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다들 그렇게 그냥그냥 애들 크는거 보면서 산다는데...  그냥 돈때문에 회사를 다닌다는데..

이렇게 버티며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 


다시 꿈을 꾸어도 될까.... 


생각해보면 가장 힘든 것은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었다. 이 나이에 그만두면 다시 갈 곳이 없을 것 같은 두려움과 당장 벌이가 반이 되면 서울을 떠나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 두려웠다.

그렇다고 이렇게 삐걱대는 상태로 괴로워하며 남은 인생을 보낼지 사이에서 답이 없는 갈등이 계속되었다. 

안정을 위해 그저그런 지금과 같은 삶을 살 것인가.. 그래도 한번쯤은 더 늦기 전에 내 꿈을 향해 도전해 볼 것인가. 

이런 상태로 삶을 계속 살아가는 것은 인생과 시간의 낭비였고 원인을 찾고 결단을 해야 했다. 

이럴때일수록 가장 본질로 들어가서 원인을 찾고 하나씩 해결해야 했다.나는 이미 그 원인을 알고 있었다. 

나의 짜증과 삐걱되는 삶의 가장 근본 원인은 "일"이었다. 

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막상 현실에서 용기있는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나에게 일이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내가 원하고 보람을 느끼는 일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다들 그냥 돈때문에 일한다는 말보다는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조금이나마 행복하지 않을까

그러나 아이들과 가정이 있고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는 건 내 욕심일까.

이 나이에 다시 시작해도 되는 것일까. 내가 너무 이상적인가.

그래도 더 늦기 전에 나도 한번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40대의 도전은 용기있는 도전일까 무모한 발악일까

그렇게 다시 학교를 알아보게 되었고 유학에 도전하게 되었다. 

지겹지만 고민과 결정 장애는 끝이 없었다. 

결심은 했지만.. 준비하여 학교에 합격했지만.. 과연 갈 수 있을까 내가 가도 되는 것인가..

스스로의 대한 의구심과 두려움은 계속되었다. 가장 걱정되는 건 부모님과 시부모님의 반대였다. 

그만큼 40대의 도전은 응원 받을 일이 아닌 모두에게 걱정과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동안 패배의식에 젖어 성공 경험이 거의 없던 나에게는 그 두려움은 더더욱 컸다. 어쩌면 내 평생 가장 큰 도전이었기에 또 나만이 아닌 아이들도 있기에 잘못되면 어쩌나.. 적응을 못하면 어쩌나... 


예전에는 나도 용기있게 도전하였는데 왜이렇게 패배 의식에 젖게 된 것일까 

이 고민은 스웨덴에 와서도.. 공부를 하고 있는 지금도 계속되고 앞으로 계속될지도 모른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내 선택이 옳았는지.. 괜한 발악을 한 것은 아닌지.. 아이들까지 힘들게 한 것은 아닌지 나에게 의문을 던지며 가끔 후회도 되었다. 

그럴때마다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는다 


꿈을 꾸는 기회, 다시 꿈을 꾸게 되며


그럼에도 지금 생활에서 가장 좋은 것은 목표를 가진 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다. 다른 세대, 다른 문화 사람들과 영어도 잘 안되는데 어울리고 공부하는 일은 분명 힘들지만 단조롭고 목표 없이 살던 생활에서 함께 목표를 이야기하고 꿈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들처럼 좀더 어릴때 나와서 공부했더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새로운 곳을 경험하게 된 것, 행복하기 위한 꿈을 꾸게 된 것을 감사히 생각하려 한다. 


이 글을 쓰며 오늘도 다시 한 번 멘탈을 바로 잡고 이 둘도 없는 기회를 좀더 즐겁고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내용들로 써내려 가고자 한다.

겨울왕국같은 우메오의 흔한 풍경 (photo:zeze)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 스웨덴은 기말고사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