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 인터뷰 19: Dylan 님
사석에서, 혹은 AC 인터뷰 기획을 통해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스웨덴으로 유학 온 졸업생을 몇 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 후 그들의 공통점을 하나 꼽자면, ‘용기’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 생활과 새롭게 시작하는 대학원 공부라는 낯선 두 경로의 교차로에 서는 것이 쉽게 내린 결정일 리 없다. 어렵게 내린 결정 이후에도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정이 뒤따르는 경우도 많다.
그 과정을 헤쳐 나가며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필자를 포함해서, 낯선 길을 굳이 나아가려고 하는 (예비) 유학생 모두가 스스로 여러 번 묻는 말일 것이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그 질문에 어떤 답을 내렸을까?
2019년 가을학기에 스웨덴 린셰핑 대학교의 computational social science 석사 과정을 시작하고 현재 직장 생활과 논문 학기를 병행하는 Dylan이다.* 21년 5월부터 한국에 있는 북유럽계 회사에서 HRD (Human Resources Development, 인적자원개발) 업무를 담당해왔다. 졸업 학기에 인턴십 기회가 생겨 학위 논문 제출 및 통과를 조금 뒤로 미뤘다.
스웨덴 유학을 결심하기 전에 교사로 근무했으며, 아이들과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학교 밖에서 원하는 것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여러 직종에 계신 학부모님들이 종종 주시던 "다른 일도 잘할 것 같다"는 피드백도 이런 고민에 불을 지폈는지도 모르겠다.
긴 고민 끝에 석사 유학을 결심했고, 전공 관련성을 비롯한 여러 가지를 염두에 두고 다양한 나라의 석사과정을 알아봤다. 그러던 중 린셰핑 대학교의 CSS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전공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환영하며, 간 학문적 접근을 독려한다는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데이터 과학 관련 공부 경험은 없지만, 이번 기회에 도전해 보겠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죽는 줄 알고 지냈던 예민한 완벽주의자라고 정리하고 싶다.
낯선 전공 공부에 적응하고, 나름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절대 쉽지 않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그 자체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양한 국적,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이 의사소통하며 과제를 해나갔던 것도 도움이 되었고, 통계학 배경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과제를 수행하는 노력 끝에 공부 전반에 대한 마음가짐도 새로워졌다. 아울러 통계적 방법론과 코딩을 잘 모르고 관련 논문도 거의 읽어본 적 없던 내게 석사 과정에서 차근차근 이수한 전공 수업들은 내가 어떤 방향으로 진로를 정할지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배운 지식과 기술을 현재 업무에서도 때때로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겠다. 첫째로, 나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새로운 도전을 처음부터 시작하는 일에 용기가 필요했다. 특히 한국에서 취직하고자 한다면 나이를 완전히 무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면접 과정에서 실감하기도 했다. 어떤 회사는 나의 나이 때문에 나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도 현재 다니는 회사는 수평적이고 격의 없는 분위기 덕분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커리어 목표에 관한 생각을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명확한 목표를 갖는 것 역시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나도 처음에는 매우 불분명한 상태에서 시작했지만,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은 선택지는 지워가고, 나의 이전 경력과 현재 배운 전공 지식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직무 혹은 업종이 무엇일지 고민을 많이 했다. 현재의 HRD 업무가 적성에 맞는다는 것은 이런 노력의 결과 알게 된 사실이고, 현재 일에 만족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대입을 준비한 수험생 시절과 대학교 진학 후 선생님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생실습 준비에 견줄 정도로 석사과정 내내 열심히 공부만 했다. 불안감과 반드시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나를 짓누르기도 했다. 주변에서 날 지지해준 몇몇 좋은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힘든 시간을 극복하기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다시 석사 시작으로 돌아간다면 평일에는 적당히 공부하고, 주말이나 여가는 그동안 해보지 못한 다양한 것들을 즐기며 더욱 마음 편히 지낼 것이다. 특히 스웨덴 북쪽 지방이나 가까운 유럽을 여행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후회로 남는다.
늦은 때는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나는 전공 동기 중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았지만, 천천히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였고, 결국 또 좋은 기회를 만났다. 아울러 늘 치열하게 살려고만 할 필요 없고, 유학에 대해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눈앞에 놓인 것을 해오다 보면 적당한 시기, 좋은 기회가 온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나중에 스웨덴 유학을 오게 된다면 해가 짧은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취미와 같이 겨울을 날 사람들을 잘 찾아보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씀도 드리고 싶다.
나에게 스웨덴은 기말고사다. 마치 기말고사를 준비하듯, 유학 생활 내내 스트레스와 긴장 속에 살았는데, 그래도 그것이 나를 계속 열심히 공부하게 했고, 끝난 후에 깨달음과 후련함을 주었다.
*요청에 의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Dyl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