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씨엠립의 축축한 공기가 그리워져 되돌아보다 생각난 뚝뚝이 아저씨
한 달 여정의 긴 배낭여행이니까 조금은 긴-호흡이 필요할 것 같았다.
사실 첫날부터 달고 다닌 배탈 때문에 몸은 지쳤고, 씨엠립의 무겁고 축축한 공기는 우리를 나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도착하자마자 한 숨 자고 시켜먹은 오믈렛의 맛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옐로우 게스트 하우스'에서 20kg의 배낭을 내려놓자마자 친구와 포개져 잠이 들었다. 창밖에서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아이들이 옷도 걸치지 않고 축구를 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상하게도 갈색으로 뒤덮인 그 모습과 몽롱했던 기분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느껴진다. 5년이 지난 사무실에서도.
그렇게 한없이 나른하게 누워있고만 싶었지만 앙코르와트라는 세계 문화유산이 있는 곳인데 그건 봐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에 마지막 날은 그곳에 가보자고 했다. (사실 나는 똔레삽의 똥물 위를 떠다니는 게 더 좋았다.)
씨엠립에 머무른 사흘 동안 우리와 함께 다녀준 뚝뚝이 아저씨를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19살에 만난 아저씨는 뚝뚝이를 몰면서 덮어쓴 흙먼지 때문인지 꽤나 늙어 보였었는데, 24살이 된 지금 생각해보니 지금의 내 또래 정도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키도 체형도 왜소했던 그 사람은 다행히도 남자인 친구 3명이 타게 된 뚝뚝이 아닌 나랑 친구가 탄 가벼운 뚝뚝이를 담당하게 되었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출발해 덜컹거리는 뚝뚝에서 잠이 들었고, 차가운 새벽 공기에 덜덜 떨면서 일출을 기다렸다. 나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과 야경을 좋아하는데 이 때는 일출도 너무 좋았다.
장관인 그 모습을 카메라에, 두 눈에 담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으러 갔는데 뚝뚝이 아저씨들이 밖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기다리고 서있었고, 우리는 그 모습이 하나도 당연하지 않았다.
아저씨들은 이렇게 같이 밥 먹는 게 처음이라고 했고, 짧은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뚝뚝이 아저씨들은 우리를 캄보디아의 클럽에 데려가 주기도 했고, 우리는 밤새 슈퍼주니어 노래에 맞춰서 춤을 췄다. 그리고 다른 밤에는 아저씨들만의 히든 플레이스 마사지샵을 데려가 주기도 했다. )
밥을 먹고 007 시리즈를 촬영했다는 앙코르 톰을 구경하러 갔다.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친구랑 나는 그 유명한 사원들과 우리에게 의미 없는 돌기둥보다 그 나른한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젖어드는 그 시간이 더 소중했던 것 같다. 친구들 손에 카메라를 들려 보내고 좁은 뚝뚝이에 누워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침 흘리며 낮잠을 잤다. 비몽사몽 눈을 비비고 있으니 뚝뚝이 아저씨가 잘 잤냐고 물어본다.
20대 중반 같지만 자꾸 나한테 아저씨라고 불리는 그 사람은 결혼을 일찍 했고 가정이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다른 일을 하며, 다른 음식을 먹으며 사는 그 사람은 꿈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꿈이 뭐냐고 물었고,
그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자기만의 뚝뚝이를 사는 것' 이란다.
얼마냐고 물었고,
한화로 약 60만 원 정도.
당시 우리가 부푼 꿈을 안고 탔던 말레이시아행 왕복 비행기 티켓값 정도.
친구랑 나는 나름 어른스러운 행동을 하겠다고 우리가 돈을 모아 아저씨의 뚝뚝이를 사주자고 했다.
그게 그 사람의 꿈을 얼마나 가벼운 일로 만드는 일인지도 모르고
철없던 우리는 뚝뚝이 아저씨를 동정하는 마음을 가졌다.
꿈이라면 작가나 스튜어디스 같은 직업이나, 세계여행이라는 거창한 목표라고 생각했던 우리는
60만 원짜리 꿈은 1년짜리 새해 목표 정도로 치부했었나 보다.
회사를 다니면서 다시 꿈을 찾고 있는 요즘
당당하고 해맑게 웃으면서 꿈을 말해주었던 뚝뚝이 아저씨가 생각났다.
지금쯤 아저씨는 뚝뚝이를 샀으려나 모르겠다.
Siem Reap CIty
글은 zeze
사진은 TTmink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