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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ze Mar 30. 2019

진짜 암일 줄은 몰랐어요.

그렇지만 엄마 딸 씩씩합니다. 

유난히 늘 피곤해서 '와 역시 젊어서 막 쓴 몸은 확 꺾이는구나'라고 매일 웃으면서 농담삼아 던졌었는데 진짜 암일 줄은 몰랐어요. 


매일 심각한 수준의 피곤함이 계속되었고, 퇴근하기 무섭게 빤질나게 돌아다니던 내가 저녁부터는 바로 집으로 달려가 누워만 있었어요. 점심쯤에는 초점이 흐려져 멍한 상태가 계속 되었고, 친구들이랑 말을 많이 하거나 신나서 소리를 지른 다음날에는 말을 할 수 없었어요. 목에 무언가 있다는 사실을 안 뒤 최종 결과를 기다릴 때 유난히 마음이 힘든 일들도 많아서 '결과 기다리는 것도 지치는데 그냥 빨리 암이라고 나와서 1개월 남았어요. 라는 말이나 들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생각이나 말'에는 힘이 있다는 걸 내가 깜빡했던 것 같아요.


8월 건강검진 이후 엄마는 바로 암보험에 하나 가입해줬고, 나는 왠지 불안하다며 바로 검사를 받을까 했지만 결혼 준비로 정신없는 날들이 이어져 11월이 되어서야 대학병원에 예약을 잡을 수 있었어요. 


"모양이 안예쁘네요." 라고 덤덤하게 말하며 양쪽 방을 부지런히 오가던 의사 선생님은 나가서 조직검사 예약을 잡으라고 했어요. 12월 28일에 예약을 잡았고, 연말과 크리스마스에 유난히도 의미부여를 하며 여름부터 캐롤을 듣는 나에게 아프고, 슬픈 연말은 생각도 하기 싫었어요. 그 때는 결과도 모르니까 연말이라며 그 전과 다르지 않게 술도 마구마구 마시고, 잠도 안자고, 일어나지도 않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걱정과 불안, 속상함에 매일 울었어요.


1월 7일이었어요. 병원에 가면 유독 무표정이되고 몸이 굳는데, 벌벌 떨며 들어간 방에서 99쩜 몇프로의 확률로 암이라고 얘기해주었어요. 네. 하고 몇가지 얘기해주는 걸 가만히 듣다가 그럼 100퍼센트가 아니란건 아닐 수도 있는거네요? 하니까 아니요. 그럴리는 없어요.라고 했어요. 

뭘 물어봐야하는지 몰라 그대로 나왔는데, 나는 내가 암이면 하늘이 무너지고 엉엉 울 줄 알았는데 눈물도 안나던데요. 몇몇 걱정해주던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엄마에겐 '수술하면 낫는대. 수술하래'라고 최대한 가볍게 전했어요. 오전 반차여서 회사로 다시 돌아가야 했는데, 가장 먼저 보게 될 팀원들에게 '저 암이래욬ㅋㅋㅋㅋ'라면서 웃으면서 말해야 할지, 울면서 전해야 할지 메신저로 말해야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못 뗐어요. 그 때부터 나 혼자 견디는 날들이 시작된거죠.

어찌저찌 일이 끝나고 엄마랑 오빠에게 바로 달려갔어요. 엄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닭도리탕을 끓이면서 '야, 그래도 암은 아니니까 얼마나 다행이냐!!'하면서 웃었고, 나는 그런 엄마한테 '나 암인뒈???'라고 동그란 눈으로 말했어요. 엄마는 숨도 안쉬고, 눈도, 코도, 입도, 몸도 그대로 얼었어요. 근데 엄마도 오빠도 안 울었어요. 갑상선암은 요즘 암도 아니다, 수술하면 다 낫는댄다! 하는데 처음에는 이 말이 그렇게도 미웠어요. 자기 암 아니라고 아픔과 속상함을 가볍게 치부하는 사람들이 너무 얄미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암이라는 사람한테 나는 뭐라고 위로했을까요. 


그 다음 일주일은 정말 알아볼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잘 한다는 병원과 의사를 찾았고, 매일 이 곳 저곳에 전화해봤어요. 엄마도, 남편도, 친구도 모두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줬고,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어요. 

3월 6일은 강남 세브란스의 장항석 교수님을 예약했고, 1월 24일은 아산병원 성태연 교수님 예약을 잡았어요. 엄마가 매일 전화해준 덕분에 유명하다는 교수님 예약을 잡고 남편 손을 잡고 갔어요.  

아산병원에서 최종 확진을 받고, 6월 14일 목절제수술을 예약하고 왔어요. 흉터가 남지않는 로봇수술도 있다는데 흉터보다는 다신 이런 일이 없을 수 있도록 확실한 수술이 더 중요했어요. 그 다음 주였던가 전이여부와 수술범위를 확인하기 위해 정밀 초음파랑 CT를 찍었어요. 조영제라는 것을 먹고 CT를 찍는데 온 몸이 뜨꺼워지면서 어벤져스가 된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서울대병원에서 아산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수 많은 서류를 떼고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의사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밀리고, 조급한 상태가 스트레스로 다가와 엉엉 울어버렸어요. 그리고 암 환자는 중증 환자로 등록되서 의료비 90%? 정도 혜택이 있다는데 서류에 장애인 등록증이라고 써있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요. 그렇지만 이게 진짜 장애인은 아니래요. 


1월 말 이 시기에는 너무 스트레스가 컸어요.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고, 뭐가 맞는지 몰랐어요. 전이여부를 확인하러 갔는데 반대쪽 갑상선에 하나가 더 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이것도 악성이면 전체를 떼어내야 한다고 하는데 무서웠어요. 남편에게 말하고 전화를 끊자마자 병원에서 누가 보던 말던 한참을 울었어요. 암이라는 소리를 듣고도 몇 날 몇 일을 아무렇지 않게 지냈는데 그 날은 너무 서러웠던 것 같아요. 반쪽까지는 괜찮은데 다 떼어낸다는건 무슨 치료를 할지 모르고, 평생 약을 먹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란 말입니다. 엄마는 주말에 삿포로 여행이 예약되어 있었는데 걱정할까봐 차마 말해주지 못했어요. 


사실 암이라는 소리를 듣고 난 이후에도 몸 관리를 잘 하지 못했어요. 안 좋은 것만 먹고, 잠도 안자고, 스트레스만 받아서 커진 건가 싶어 심각성을 느꼈어요. 반대쪽 덩이 소식을 들은 이후 술은 거의 입에도 안대고, 당도 안먹고, 내 몸을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살면서 처음으로 들었어요. 사실 그 전에는 내 몸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내 몸이 어디가 아프고 불편한지, 어떻게 돌봐줘야 하는지를. 


2월에는 위염, 식도염, 임파선염으로 고생했고, 미세먼지가 심각해지면서 갑상선에 영향을 준건지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목이 아팠어요. 위염이 나아갈 즈음에 또 다른 염증이 생겨 작은 수술을 하게 되었어요. 화이트데이엔 병원에 있기 싫어 그 전날에 수술을 하고 엄마 집에서 조금 쉬었어요. 산부인과에서도 스트레스 호르몬때문에 여러가지 치료를 함께 하고 있어서 하루에 20알씩 약을 먹고 있어요. 

지난주에 반대쪽에 있는 무슨 덩어리를 검사하고 왔는데, 병원에 가는 날은 늘 차갑고 무서웠지만 그날은 최악이었어요. 처음엔 세침검사였는데 이번엔 목에 마취를 하고 총같은 걸로 쏴버렸어요. 


 정말 요즘 드는 생각인데 작년에 받은 모든 스트레스와 피로, 과음이 올해 이렇게 몸의 온 곳으로 터지는 구나 싶었어요. 일주일 내내 병원에 다니는 날들이 조금 지치지만 올해 다 고치고 앞으로 관리 잘하면서 평생 웃으면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 가장 많이 느꼈던게 건강이 없으면 그 무엇도 행복할 수 없어요. 아픈 상태에선 어떤 즐거움도 느낄 수 없고,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아요. 운동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여행도 못해요. 내가 상상하지 못햇던 것들을 견디며 3개월을 환자로 지내고 있는데, 아직은 그래도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에요. 근데 만약 더 심한 무언가가 온다면 나는 버틸 수 있을까요? 이런 가벼운 것들에도 심하게 흔들렸는데, 더 단단해져야 겠어요. 그런것들이 올 수 없게, 오더라도 버틸 수 있게. 


요즘은 건강하게 먹고, 잘 자고, 좋은 생각만 하며, 감사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니 평안한 날들이에요.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일어나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편안하게 생활하니 예민한게 조금 사라진 것 같아요. 어쩌면 쉴 용기가 없는 나에게 너 이제 조금 쉬고, 자신을 돌봐야해 라고 몸이 알려준 것 같기도 해요. 정말 조금만 쉬어가라고. 내 모습이 가끔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나대로 빛나는 유일무이한 사람이니까. 빛을 잃지 말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눈빛으로 살아가야겠어요. 그건 분위기로, 말투로, 표정으로, 행동으로,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 주변 사람을 대하는 방식으로, 앉아있는 태도로, 일상을 채워가는 방법으로, 꿈을 꾸는 방법으로 드러나니까. 


적지 않은 나이 하루하루가 더 소중해지고 있어요.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파란 하늘 밑에서 바람과 햇빛을 맞으며 조파비와 보내는 시간이 좋아요. 


진짜 약먹는 것도 싫고, 아픈거 너무 싫어요. 

저 반대쪽에 암없게 반쪽만 떼어낼 수 있게 기도할거예요.

그리고 요즘 하고 싶은 2가지가 생겨서 기대되는데 그것 또한 잘 이루어지길 바래요.


내 몸을 돌보면서 건강하게 살아갈 거예요.

이번에 생각해봤는데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거 두개만 꼽으라고 하면 사랑과 건강이에요. 

나머지 솔직히 없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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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대신 걸을게요]

암 수술 전에 산티아고에 다녀왔어요.

빛나던 그 날들을 잊지 않고 담아두기 위해, 나누기 위해 글을 남겨 책을 만들었습니다.


주문서 작성 

https://forms.gle/FR5cJz73JdXo4gm67

지난 텀블벅 

https://bit.ly/38HtI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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