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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ze Jun 19. 2019

여보, 나 암수술 전에 산티아고 다녀올게.

암 수술을 앞두고 다녀온 나의 까미노


어쩌면 꽤 충동적인 선택이었을 수도 있고, 그래야만 했던 운명적인 일이었을 수도 있다. 암 수술을 40일 정도 앞두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녀왔고, 멀게만 느껴졌던 수술을 드디어 견뎌냈다.


-

느긋한 주말 오전, 소파에 기대 누워 슬아 언니와 연락을 하고 있었다. 언니는 늘 30살에 산티아고에 갈 거라고 말해왔고, 몇 년 전에는 언니에게 산티아고 책을 선물한 적도 있다. 그녀의 바람이 이뤄지길 늘 기도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산티아고가 버킷리스트의 10위 안에 들진 못했다. 그 결정을 내리기 전까진 그랬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 누구보다 산티아고가 필요했다. 그냥 인생에 한 번쯤 가봐야지라는 마음보다는 그냥 정말 절실했다. 나를 바꿔줄 무언가가. 떠나기 전에 쓴 일기를 지금 다시 보면 내가 그랬다고? 싶을 정도로 불안정하고, 극단적이었다. 사소한 일에 깊게 슬퍼해 거의 죽는 것 대신 이 길을 걷는 선택을 했다고 쓰여있었다.


-언니, 내년에 진짜 산티아고 갈 거야?

-아니 지금 가고 싶다.

-나도 지금 가고 싶다.

-갈래?

-가자. 진짜 가자.


몇 번의 고민과 계산은 더 있었겠지만 대충 이런 몇 번의 카톡으로 우리의 산티아고행이 결정됐다. 다만 나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수술을 앞두고 있었고, 아직 회사도 다니고 있던 때였기에 가족과 남편, 의사 선생님과 회사를 설득해야 했다.


가장 먼저 엄마에게 산티아고에 갈 거라고 말했고, 예상했던 것처럼 엄마는 반대했다. 체력이 떨어져 일상적인 것들도 못하는데 하루에 20-30킬로 걷는 게 말이나 되냐고, 수술 전에 잘 챙겨 먹어야 하는데 빵이나 먹어서 수술을 견디겠냐고 결사반대였다. 그냥 휴양지에 가서 좀 쉬고 오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냥 휴양지나 가라는 말'에 나는 덜컥 화를 내버렸다. 나는 지금 휴양이 필요한 게 아니라고. 나는 지금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한 거라고. 정말 걸으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나에 대해서만, 내 삶에 대해서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거라고. 놀고 싶은 게 아니라고. 생각해보면 늘 내 주변엔 걱정이 넘쳤다. 마인츠에 살던 시절, 친구들은 모두 스페인에 가고 싶어 했지만 나는 꼭 이탈리아를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냉정과 열정사이에 빠져있을 때여서 더 그랬다. 엄마는 그냥 친구들과 같이 가는 게 어떻겠냐 했고, 나는 그냥 혼자 이탈리아를 가겠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소매치기와 강도, 노숙자가 넘쳐나는 도시에 혼자 가는 건 엄청난 도전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일주일은 나에게 아직도 손에 꼽는 빛나는 시절이고, 그때 만난 소중한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나의 감을 믿는다. 이번에 떠나지 않으면 나는 내내 후회하게 될 거란 걸 감으로 알았다.


두 번째로는 외래 진료가 잡혔을 때 의사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저 조금 많이 걷고 오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늘 모든 걱정스러운 질문에 쿨할 정도로 시원스럽게 대답해주던 교수님은 "네, 가셔도 돼요. 일주일 전에만 와서 컨디션 올려주세요."라고 너무 쉽게 대답해주셨다. 동네 산책 정도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하루에 20-30킬로씩 한 달 동안 걷고 올 건데 괜찮은 거 맞죠..? 그전에 건강식으로 챙겨 먹어야 하고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요..?" "네, 마음 편하게 걷고, 지내다 오세요." 생각보다 두 번째 산을 쉽게 넘었고, 엄마에게 신나서 전화했다. 엄마 의사가 가래, 가도 된대.


다음은 남편이었다. 사실 가장 먼저 얘기해야 할,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아무 준비도 대책도 없이 얘기했을 때의 반응을 너무나도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의사선생님에게 먼저 허락을 받았다. 분홍색 메모지에 빼곡하게 적었다. 내가 왜 가고 싶은지, 왜 가야만 하고, 얼마나, 누구와, 어떻게 지내다 올 것 인지. 단지 놀고 싶어서 뱉는 게 아니라, 깊게 고민하고, 생각해서 한 결정이라는 걸 알려줘야 했다. 그리고 저녁에 남편과 마주 앉았다. 지금에서야 말하면 사실 80% 정도는 남편이 반대할 거라는 예상을 했다. 너무나도 걱정할 요소가 많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남편은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며, 메모지를 천천히 보더니 "긍정적으로 생각해볼게"라고 했고,

그 뒤로

"등산복 사야 하는 거 아니야?" "나 허락해주는 거야?" "그건 아니야!"

"비행기표는 내 카드로 해" "그럼 지금 끊는다?" "이미 끊은 거 아니야!?ㅋㅋ" 이런 대화가 몇 번 오갔고, 나 오늘 비행기 티켓팅 한다!라는 외침으로 드디어 산티아고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회사에서는 몇 가지 서류를 떼고, 팀장님과 면담을 하고, 수술 전에 쉬고 싶다고만 간단하게 말했다.

-


산티아고로 떠나는 공항에 앉아서도 우리는 얼떨떨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 진짜 가는 건가, 생장에 도착하면 눈물이 날까.라는 대화를 하며, 프랑스로 갔다. 그리곤 매일매일 걸어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새벽의 어둠 속에서 부스럭거리며 침낭을 돌돌 말아 짐을 챙겨 선크림과 바셀린을 잔뜩 바르고 남색 하늘과 노란색 가로등 빛이 번지는 골목길에서 노란색 화살표를 찾아 까미노에서의 하루를 시작한다. 가장 먼저 만나는 마을의 첫 바르에서 카페 콘레체와 오렌지 주스 한잔씩을 먹고, 가끔 추운 날이면 콜라 카오 핫초코를 먹었다. 살아가며 한 번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는 사람들과 다정하게 올라, 부엔 까미노를 외치며 너는 오늘 괜찮은지, 아픈 데는 없는지 살갑게 서로의 상태를 살펴준다. 걷다 보면, 쉬다 보면 몇 번씩 자주 마주치는 얼굴엔 조금 더 반가움이 묻어나는 인사를 하게 되고, 조금 더 이야기를 하다가 깊은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다시는 못 볼 것처럼 인사하고 헤어져도 길 위에서 다시 만나기도 하고, 또 볼 것처럼 가볍게 헤어져도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뜨거운 햇빛과 무거운 배낭에 어깨는 빠질 것 같고, 옷이 축축하게 젖을 때쯤 나무 그늘 밑으로 쏙 들어가면 1분 만에 모든 게 괜찮아진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파란색과 초록색을 온몸으로 벌컥벌컥 들이켜며, 뜨겁고 건조한 온도를 만끽했다. 온통 파랑과 초록밖에 없는 세상이었다. 가끔 코너를 돌면 거짓말처럼 나오는 마법 같은 바르에선 맥주 한 잔에 수박을 먹고 신나게 놀다가 가기도 하고, 강가에선 그냥 드러누워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기도 한다. 아무것도 없는 평지를 몇십 킬로씩 걷다가도 하루 만에 1500 고지로 단숨에 올라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45킬로씩 걷기도 했다. 숨도 못 쉴 정도로 뜨거운 날도,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도 있었다.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신나게 걸을 때도, 울면서 걸을 때도,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겨 걸을 때도, 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을 때도, 가끔은 뛸 때도, 길바닥에 누울 때도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 빨래를 널고 밥을 먹으로 나와 햇볕 아래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앉아있을 때도 있었고, 유명하다는 성당을 보고 맛있는 타파스를 찾아먹은 날도 있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시골 마을에 도착해 반해버린 적도, 유명하다는 도시에 도착해 그 차가움에 실망한 날도 있었다. 다음 마을로 배낭을 미리 보냈는데 받지 못했던 날도 있었고, 숙소 하나 바르 하나뿐이었던, 골목이 전부였던 마을에서 따뜻한 도움을 받아 배낭을 찾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끼리 대가 없는 도움을 주고받고, 그 도움은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진다. 아픈 사람에게 약을 주고, 또 받고, 음식을 나눠먹고, 차비를 내어주기도 한다. 살짝 지나쳤을 뿐인데도 밝게 웃으며 서로 인사해주는 그 다정한 사람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가끔 수 십 명이 함께 잠드는 알베르게 2층 침대에 누워있을 때면 외로움이 밀려오다가도, 오늘 같이 걸어왔고, 또 내일 같이 길을 떠날 이 사람들이 함께 잠든다는 생각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피부는 엉망이고, 스페인 햇볕에 머리는 다 타버렸고, 얼룩덜룩 씨커멓고, 무릎과 발목은 고장이지만 몇 번을 되돌려보고, 다시 생각해봐도 그 어떤 시간보다 모든 것이 생생하고, 눈부시고, 찬란한 시간으로 남았다.


모든 감각이 깨어났고, 눈빛은 빛났고, 표정은 살아있었고, 온몸에 에너지가 살아났다. 엄마는 늘 사진을 보며 건강해 보여 좋다고 했다. 신기했다. 매일 새벽 4-5시에 일어나 7시간씩, 많게는 12시간을 걷고, 잠을 푹 자는 것도, 몸에 좋은걸 챙겨 먹는 것도 아닌데 내가 건강해지고 있다는 게.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무엇보다 가장 신기했다.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 하루하루를 마냥 걸으며 충만하게 채워나갔고, 너무 아프고 힘들어 지친 날에는 그만 걸을까 생각도 했지만 '그냥 내일도 걷자'라는 마음으로 잠들었다. 이 길 위에서 내 모습은 느리고, 편안하고, 따뜻하고, 다정했다. 이따금씩 받는 인종차별과 한국인 비하, 나이가 어리다고 받는 대우 등에 예민한 날을 드러낼 때도 있었지만, 걷다 보면 그 날은 곧 다시 무뎌지곤 했다.


이 길을 떠나기 전 나는 늘 외부의 자극을 찾아다녔다.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격에 퇴근 후에 늘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렇지만 여기에선 남을 통해 얻는 자극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마주하는 내 속의 감정과 생각들이 진짜 자극으로 다가왔다. 한 달간 신기하게도 매일 다르게 떠오르는 느낌과 생각과 감정들에 집중하며 나의 모습을 그려냈다. 강한 내 모습이 멋있었고, 다정한 내 모습이 따뜻했다. 활짝 웃는 내 모습이 눈부셨고, 이 모든 자연을 느낄 수 있음이 감사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하고싶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곤 했던 나였는데 지금은 바쁘게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랑 밥을 해 먹고, 잠을 푹 자는 일상이 충분하게 느껴진다. 이 길을 걸으며 선명해진 그림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건강한 삶'이었기에 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나를 돌보고, 남편을 돌보고, 우리의 생활을 돌보고 있다.

몸이 아파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언니와 이 길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남기는 것 외에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아니, 여름이니까 바다에 가서 물놀이는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의사 선생님이 한 달은 물놀이도, 수영도, 술도 안된다는 말에 살짝 우울했지만 이 참에 정말 푹 쉬어봐야겠다.


당연하게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 나의 산티아고가 빛을 잃지 않기를, 나를 다시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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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대신 걸을게요]

산티아고에서의 날들을 잊지 않고 담아두기 위해, 나누기 위해 글을 남겨 책을 만들었습니다.

같은 길을 걸어온 언니와 동생의 다른 시선을 만나보세요.


주문서 작성 

https://forms.gle/FR5cJz73JdXo4gm67


지난 텀블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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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yooboo_in_santi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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