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지북앤필름 ‘책방을 시작합니다.’
2025년 8월. 오늘엔 책방에 사람이 많다.
로 시작하는 일기를 적게 될까. 나는 늘 말하면 이뤘으니.
오늘 오후 7시 30분에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책방을 시작합니다’ 워크샵이 열렸다. 몇개월 전 온라인으로 열렸다가 인원이 차지 않아 아쉽게 폐강되었는데 그 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서점인에 대한 열망’이 강했을 시기여서 내가 주변인들을 모집할테니 열어달라는 메세지까지 보냈었다. 실제로 그 때 내 주변에는 책방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몇명은 그 사이에 책방을 열었다. 몇 개월 전이었으면 보자마자 신청했을텐데 요즘은 뭐랄까 회사일에 몰두하고 있는 시기여서 고민이 되었다. 할 게 많아서 고민했지만, 내일해도 상관없는 일을 하느라, 내 꿈에 다가가는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침에 입금을 했다. 신청 완료되었다는 메세지에 활기가 조금 생겼다. 점심시간에 친구에게 “‘책방수업’을 신청했어. 할게많아서 고민됐는데, 그냥 했어” 라고 했더니, “잘했어, 단기적인 일 때문에, 장기적인 일을 가로막을 수는 없지” 라고 했다. 그럼. 내 인생은 거기있는걸.
7시 30분에 시작하니 막히는 강남길을 생각하면, 6시 전에는 출발했어야 하는데 나가기 직전 동료와 일얘기를 하느라 출발 시간이 늦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1분도 놓치고 싶지 않은데 강남길은 막혀도 너무 막혔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배철수의 음악캠프. 휴가를 갔다 돌아오신 배철수 아저씨의 라디오였다. 오아시스의 재결합 소식을 전하며 wonderwall을 틀어주셨고, 가까워지는 남산타워와 한강위로 스며드는 주홍빛 노을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내가 좋아하는 건 여기 다있네. 라는 생각을 했다. 가려던 공유 주차장은 사라지고, 주민센터는 만차였다. 다른 주차장을 예약해두고, 한바퀴를 다시 도는 동안 조금 화가났다. 왜 늦게 나왔을까. 그렇지만 다시 마음을 데려왔다. 어쩔 수 없지. 노을을 봐. 아름답잖아. 다시 도착한 주민센터 주차장에는 마침 자리가 비었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숨이 멎을듯 아름다운 노을이 펼쳐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산 소월길 끝자락에서 보는 노을. 우다다 내리막길을 달려 책방에 도착해서 쭈뼛.. “저.. 책방.. 수업..” 했더니 여기는 ‘해방촌점’이라고 한다. 저번에 분명 왔었는데 마음이 급했나보다. 다시 108 계단을 우다다 내려가는데 또 노을은 아름답고, 남산은 눈부셔서 이거보려고 늦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게 들어간 책방에는 이미 몇 명이 둘러앉아 있었다. 몇 개월 전 책방 상담에서 뵈었던 마이크 사장님이 가운데 앉아 ‘스토리지북앤필름’의 시작을 설명해주셨다. 2시간 동안 이어진 책방에 대한 이야기와 질문들. 질문이 참 많았다. 예전에는 어떻게 입고하고, 재고를 관리하고, 그런 것들이 궁금했는데 이제는 실무적인 것보다는 책방 사장님의 마음이 궁금했다. 가장 힘들고, 가장 기뻤던 때는 어제였는지. 퍼블리셔스테이블은 어쩌다 시작하게 되셨는지 (얼마 전 신청했다 떨어졌다.). 책방을 하며 꼭 해보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는지, 못이룬 것은 있는지. 그런 마음들. 그리고 나에게도 우수수 질문이 떨어졌다.
“적자가 나도 즐기면서 할 수 있겠어?”
“너에게 책은 무엇이고, 책방은 무엇이니”
모든 일이 그렇듯, 일의 기쁨과 슬픔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정말 즐겁고 행복한 책방을 꾸리며,
시간을 내가 선택하여 살 수 있는 즐거움
언젠가 책방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꼭 해보세요.
라는 문장에서 ‘시간을 내가 선택하여 살 수 있는 즐거움’ 이라는 문장이 마음을 쿡.
나에게 시간은 나의 삶이다. 단순히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생산적으로는 의미없다. 본질적으로 내가 선택한 시간을 살고 싶다.
주체적으로 내가 시간을 설계하고 싶다.
마이크 사장님은 ‘독립출판물에서 본인이 느꼈던 감정을 다른 사람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셨다고 한다.
어제 다른 팀의 50대에 가까운 동료분과 점심을 먹으며, 기록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내 리포터로 활동하며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데, 그 글을 보고 여러가지를 물어보셨다.
어떻게 기록을 시작해야 하는지, 막막하다는 고민을 털어놓으셨고, 여러 얘기를 하다가 나는 ‘정보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을 일렁이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런 마음. 나는 누군가 나의 파도에 올라탔으면 좋겠다. 점심시간에 산책하다가 올려다본 은행나무에 알알이 포도송이같은 은행이 달려있었다. 친구가 ‘저길 볼 생각을 안했네’ 라고 했다. 누군가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나치는 그런 사사로운 아름다움을 같이 들여다보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건 그런거다.
상처받지 말고, 꾸준하게하라는 사장님의 말처럼.
서글퍼도 후회하지는 않는다는 책방 사장님의 말처럼.
집에 오면서 엄마한테 ‘나 책방하고 싶어!!! 책방할래!!!!’ 라고 외쳤다.
‘말하면 이루어지지, 드림 컴! 트루!’ 라고 같이 외쳐준 엄마덕에 나 정말 할 것 같다.
그건 근데 언제일까. 왜 지금은 아닌거지?
나는 언제 용기를 낼까.
언제 내손에 쥔 패를 버리고, 나를 위한 패를 잡을 수 있을까.
어떤 준비를 기다리고 있는걸까.
독립출판 한 권, 기성출판 한 권. 두 권의 책을 내며 작가가 되었다. 작가로써 책방 입고도 해보고, 북토크도 해봤다.
여러 온오프라인 커뮤니티를 처음부터 만들고, 키우고, 운영하고, 알리며 워크샵 기획은 내가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분야인 걸 안다.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
브랜드를 작게나마 운영해보고, 만들어봐서 굿즈 제작과 상품 제작도 가능하다.
9년차 서비스 기획자고, 브랜드를 운영하며 독립몰도 만들어봤으니 사이트 운영도 문제없다.
시작은 마케터고 6년간 마케터를 위한 서비스를 만들었으니 마케팅도 발은 걸쳐있다.
당장 매달 지금 월급만큼의 수입없이도 먹고 살 수 있다. 무엇보다 집욕심, 차욕심, 명품욕심은 없다.
무엇보다 읽고, 쓰는 일을 너무 사랑한다.
we eat book club 이 너무 좋다.
왜 못하고 있니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 적었지만, 이런 경험들은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고.
무엇보다 나는 ‘책방 사장의 매력과 심지’가 중요한 것 같다. 내가 그런 매력과 심지가 있을까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의심인 것 같다.
힘들고, 서글퍼도 이겨낼 수 있는 심지와 다른 곳이 아닌 이 곳이어야 하는 책방과 책방 사장의 매력.
나는 그 매력을 더 만들고 싶은걸까. 나만의 색을 더 굳히고 싶은걸까. 이유를 찾자면 이게 가장 큰 것 같다.
조금 더 읽고 쓰며, 내가 어떤 가치를 주고 싶은지 생각하는 것.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사랑과 자연’.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일까.
길게 길게 적었지만 정말 안할 이유를 못찾겠네..
내 시간, 온 종일 이것만 고민하고 싶은데.
얼마전 엄지 북토크 다녀와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타트업 물론 힘들지만, 온종일 내가 좋아하는 것에 시간을 쏟을 수 있다는 행복감은 비교할 수 없다고.
오늘 참석한 참석자 중 2월에 책방을 연 분이 계셨는데, 어떻게 마음을 먹으셨냐는 질문에 “그냥 했어요. 월세가 지나고보면 내 인생에 큰 돈일까 싶었어요” 라는 말에 또 내 고민이 가벼워졌다. 맞다 맞아.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얼마전 ‘마디다’라는 단어를 라디오에서 듣게 되었다. 헤프다의 반댓말로 쉽게 닳거나 없어지지 않는 것. 자라는 속도가 더딘 것. 내 꿈은 마디다. 그러니 자라는 속도사 더디더라도, 쉽게 닳거나 없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