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입문자를 위한 라디오 소개
나는 라디오를 잘 듣지 않는다.
아침에 아빠 차를 타면 들었던 <FM대행진>, 명절에 가족들과 시골을 갈 때면 들었던 tbs 교통방송, 주말에 가족들과 놀러 갈 때면 들었던 <두시탈출 컬투쇼>, 저녁에 엄마 차를 타면 들었던 <볼륨을 높여요>. 이 정도가 내가 들은 라디오의 전부다.
M씽크 활동을 통해 <2시의 데이트 지석진입니다>를 방청하게 되면서 정말 몇 년 만에 라디오를 다시 들었다. 처음으로 차가 아닌 공간에서 라디오를 들은 것이었다. 라디오의 매력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가끔 라디오도 들어볼까?’
이번 글은 나 같은 라디오 입문자들에게 보내는 라디오 소개다. 라디오를 들어보려면 언제 어떤 프로그램을 하는지 먼저 알아야 하는 법. 제목으로 먼저 라디오와 친해져 보자.
라디오 프로그램에는 유난히 새벽, 아침, 오후, 밤 같은 단어나 2시, 정오처럼 시간을 알려주는 말이 많이 들어있다.
아침: <건강한 아침 황선숙입니다>, <아침&뉴스, 김성경입니다>, <세상을 여는 아침 김초롱입니다>, <굿모닝FM 김제동입니다>,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
점심: <박준형, 정경미의 2시 만세>,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 <2시의 데이트 지석진입니다>, <오후의 발견 이지혜입니다>
밤: <산들의 별이 빛나는 밤에>, <김이나의 밤편지>, <서인의 새벽다방>, <푸른밤, 옥상달빛입니다>, <비포 선라이즈 김수지입니다>
물론 시간과 관련된 말이 라디오 프로그램 제목에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수요미식회>, <악플의 밤>, <놀라운 토요일>, <취향저격 선데이>, <일밤>, <해피선데이>처럼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도 시간과 관련된 단어가 들어있는 프로그램은 옛날부터 꽤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차이점은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는 보통 토요일, 일요일 등 요일과 관련된 말이 들어있다면 라디오는 새벽, 아침 등 하루 안에 일어나는 시간을 알려주는 말이 들어있다.
이런 차이점은 아마 라디오 프로그램과 TV 예능 프로그램의 방영주기 때문에 생긴 현상일 것이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매일 방영하는 것이니, 몇 시에 방영하는지가 중요한 요소이고, TV 예능 프로그램은 일주일에 한 번 방영하는 것이니 어느 요일에 방영하는지가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그렇다. 라디오는 매일 방송된다. 그래서 하루의 리듬과 관련이 되어있다. 내가 아빠 차를 타고 학교에 가면서 라디오를 들었던 것처럼, 하루 중에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에 매일 만나는 것이 라디오인 것이다.
자, 생각해보자. 나는 언제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지. 언제가 적절할지. 지금은 방학이지만, 개강한 뒤까지 계속 들으려면 역시 나는 등굣길, 하굣길이 제격이다.
라디오 프로그램들의 제목을 찾아보던 중에 정말 거의 모든 프로그램 제목에 DJ의 이름이 들어있어 조금 놀랐다. TV 프로그램 중에는 <백지연의 끝장토론>, <집밥 백선생>, <백종원의 골목식당>, <유희열의 스케치북>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진행자의 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방영하는 프로그램이 드물다. 심지어 TV 예능 프로그램은 좀처럼 진행자가 변하지 않고, 라디오는 개편에 따라 여러 번 바뀌는데도 말이다. 라디오는 개편으로 진행자가 바뀌면 아예 프로그램 제목까지 바뀐다. <강타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산들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된 것처럼.
라디오 프로그램 제목에 이렇게 DJ 이름이 필수요소처럼 들어있는 것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TV 예능 프로그램의 내용은 게스트에 맞춰져 있다. <라디오 스타>나 <복면가왕>을 떠올려 보자. 긴긴 녹화시간 동안 진행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날 출연한 게스트의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라디오는 다르다. 물론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게스트가 있고, 게스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진행자와 청취자의 소통 또한 중요하다. 청취자의 질문에 답하고, 그날의 주제에 대해 말하면서, 진행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어있다. <산들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진행자 산들이 자신이 하는 운동을 소개하면서 운동기구를 추천해줬던 것처럼. 결국 라디오는 진행자가 매우 중요한 프로그램인 것이다.
앞서 들켰겠지만, 내 라디오 DJ 원픽은 산들이었다. 그 외에도 정승환, 정은채, 옥상달빛 DJ도 궁금하다. 다들 뽑아보자. 나만의 DJ 원픽!
라디오 프로그램들을 쭉 살펴보니, 보통 아침에는 전날 있었던 이슈를 전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점심에는 입담을 뽐내는 DJ들이 포진되어 있고, 저녁부터 새벽까지는 감성을 자극하는 프로그램, 특히 음악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IDOL RADIO>, <조PD의 비틀즈라디오>, <김현철의 골든디스크>,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FM영화음악 정은채입니다>, <음악의 숲 정승환입니다>, <신혜림의 JUST POP>
라디오에서 음악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신청곡과 사연은 라디오에서 빼놓지 않는 단골 소재고, 내가 방청한 <2시의 데이트 지석진입니다>에서 데이브레이크가 게스트로 나온 것처럼, 가수가 진행자, 혹은 게스트로서 라디오에서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는 경우도 많다.
음악을 듣기 위해 라디오를 듣는 사람도 있다. 우리 엄마가 그렇다. 가끔 엄마가 라디오를 듣다가 짜증을 내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왜 이렇게 말이 많아, 노래나 틀어주지.”가 엄마의 단골 대사였다.
음악은 ‘소리’로 전달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라디오와 매우 닮아있다. ‘듣는다는 것’의 매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두 작품의 만남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낸다.
요즘은 플레이리스트 기능이나, 자동 추천 기능을 이용해 개인의 취향에 맞게 얼마든지 자유롭게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고른 음악이 아닌, 내가 평소에 듣는 음악이 아닌 다른 음악도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우연히 예전에 좋아했던 음악을 듣게 될 때, 생경하지만 가수가 궁금해질 정도로 빠져드는 노래를 듣게 될 때, 내 지금 마음과 똑 닮은 노래가 흘러나올 때, 라디오는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나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라디오를 켜보자. 특히 음악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으로. 아, 다시 듣기는 안 된다. 저작권 때문에 노래가 제공이 안 된다고 한다... 온에어로 들어보자.
지금까지 ‘라알못’의 라디오 제목 다시 보기였다.
지금까지 나한테 라디오는 길에서 다른 사람이 들려주는 것, 그러니까 타의적인 것이었다. 그저 상황 때문에 듣게 된, 내가 선택하지 않은 소리였다. 그래서 집중하지 않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나가도록 두었다.
하지만,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혜리 분)와 친구들이 모여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듣던 모습처럼 라디오도 온전히 사랑받던 때가 있었다.
시작은 ‘가끔 라디오도 들어볼까?’지만, 언젠가 ‘오늘 라디오는 이거!’가 될 수도 있을 만큼, 내게도 매력적인 프로그램이 될지 궁금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주파수를 맞추는 라디오 애청자분들처럼, 우리 라디오 입문자들도 주파수를 맞춰보자. 오늘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