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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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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이 Aug 06. 2019

우리 함께 산다

<나 혼자 산다>

작년 9월, 나는 혼자 4개월간의 유럽여행을 떠났다. 장거리 통학(편도 2시간..), 성적 스트레스, 장학금 등 이런 선택을 한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혼자 살아보고 싶다.’였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그때까지 줄곧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함께 사는 동안은, 대체로 편하고 좋았다. 집안일도 나눠서 하고, 배달음식도 함께 먹고, 무엇보다 나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편하게 말할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대학에 오고, 혼자 사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나니 혼자 사는 생활의 자유가 너무 부러웠다.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 나만의 선택에 대한 환상이 샘솟았다.

대학 생활 2년 내내 환상에 허우적거리던 나는, 혹독하게 돈을 모으는 시련기를 거쳐 결국 결떠났다. 외지에서 보내는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위해!


  

나 혼자 산다!

‘유럽에서 혼자 살기’를 결심하고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각종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때 <나 혼자 산다>도 꽤 봤다. 제목에 대놓고 ‘나 혼자 산다!!’라고 쓰여 있으니.

환상이라고는 했지만, 내가 꿈꾸던 1인 생활은 그리 거창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사소했다.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무지개 회원들의 일상, 딱 그것이었다.

나만의 공간을 내 취향대로 꾸며보는 것(여행 중에는 엄두도 못 내겠지만), “그래서 살이 빠지겠냐”는 동생들의 말쯤은 신경 쓸 필요도 없이 혼자서 흥겹게 홈트레이닝을 해보는 것,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딱 1인분의 요리를 해 먹는 것, 엄마 잔소리 없이 온종일 내 인생 드라마를 보는 것.

296회 / 294회
282회 / 249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나는 <나 혼자 산다>를 볼 때마다 이런 모습이 정말 부러웠다.  

   

나 혼자 산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나 혼자 산다>는 굉장히 아이러니한 방송이었다. 분명 제목은 <나 혼자 산다>인데, 혼자 ‘사는’ 모습만 나오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 혼자 사는 사람의 모습은 ‘셀프 인테리어류’나 ‘1인분 쿡방류’, ‘홀로 새벽감성류’ 등이었고, 물론 무지개 회원님들의 그런 모습은 내 환상을 충족시켜줬다. 하지만 <나 혼자 산다>에는 다른 사람, 특히 다른 무지개 회원과 함께 있는 모습도 자주 등장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일상을 다루는 관찰형 프로그램인데, 온종일 혼자서만 시간을 보내는 날은 살면서 그리 많지 않으니까. ‘혼자’ 살더라도 결국 세상은 ‘혼자서만’ 사는 게 아니니까.

<나 혼자 산다>의 에피소드 중 특별히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면 박나래 회원과 정려원 회원이 함께 김치를 담그는 모습이다.

273회

두 사람이 함께 김장할 정도로 친한 사이라는 것과 한번 따라 해보고 싶은 박나래 회원 집안의 김장 비법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같이 사는 사람이 없으면 다른 사람을 부르면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새삼 무릎을 '탁' 치게 했다.

혼자 사는 게 서러워지는 많은 순간이 있다. 아플 때, 밤새 수다 떨고 싶을 때, 외로울 때,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싶을 때. 나는 혼자 살게 되면, 이런 순간도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것조차 즐길 수 있을 때 진정한 싱글 라이프라고. 하지만 이건 아직 살아보지도 않은 ‘하수’의 생각이었다. 싱글 라이프 고수들의 답은 명쾌했다. 혼자 할 수 없으면 혼자 안 하면 되지!     


혼자 함께 산다

싱글 라이프를 함께 하는 무지개 회원들은 어느새 가족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시언 회원의 집에는 3형제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고, 박나래 회원은 헨리 회원의 엄마를 자처한다.

304회 / 254회

비록 프로그램 내 설정이더라도 무지개 회원들이 서로 얼마나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 혼자 산다>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다루면서도 ‘혼자’만 다루지 않는다. 혼자 사는 법과 함께 사는 법을 모두 보여준다. 그리고 두 삶 모두에서 재미를 끌어낸다.

사실 ‘혼자’ 산다고 하더라도 ‘혼자서만’ 보내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일하면서, 공부하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것도 ‘사는’ 일이다.

유럽에서 혼자 보낸 4개월의 시간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혼자 누리는 많은 것들은 달콤하고 자유로웠지만, 때로 나는 친구·가족이 필요하고 그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

아직도 나는 가족들과 살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독립해서 혼자 살 날을 꿈꾼다. 하지만 예전처럼 환상에 젖어있는 채로 지금의 삶에 불평하지 않는다. 함께 사는 일 안에도 혼자가 있고, 혼자 사는 일 안에도 함께가 있다. 지금 누릴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누리고 독립하자는 생각이다. 부모님과의 시간, 동생들과의 대화 그런 것들.          



<나 혼자 산다> 속 무지개 회원들은 ‘혼자’ 살지만, ‘혼자’ 산다는 것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단지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뿐, 그들은 역시 사람들 속에 섞여 있고, 그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나 혼자 산다>가 ‘혼자’ 산다는 제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혼자인 모습과 함께인 모습을 모두 담아내는 건 아마도 삶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은 결국 혼자 사는 거”라지만 함께일 때 더 행복한 순간도 분명히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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