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 <콩나물>
<콩나물>, 한국, 윤가은, 2013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내 동생을 처음 심부름보내던 날이 떠올랐다.
동생과 나는 14살 차이가 난다.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나는 동생을 데리고 나갈 때면 꼭 내 손을 붙잡고 다니게 했다. 싫어하면서 손을 빼기라도 하면, 위험해서 안 된다고 그럴 거면 다시 집에 가자고 협박아닌 협박을 하면서.
동생을 처음 심부름 보내던 날도 그렇다. 아파트에 있는 마트를 보내는 거였는데, 나는 집에서 창문으로 동생을 내려다보며 동생이 집까지 잘 오는지 계속 감시했다.
지금은 혼자서 잘 다니지만, 그런 기억 때문인지 영화 속 보리의 여정도 나한테는 걱정이었다.
화면 속의 이야기인데도, 보는 내내 ‘엄마가 걱정하겠다. 집안이 발칵 뒤집혔겠는데, 사람들은 어린 애가 혼자 돌아다니는데 왜 집에 보내주려고 하지 않을까’하는 등의 염려가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 그런 걱정과는 달리 보리는 집에 무사히 돌아오게 된다. 뜻밖의 선물과 함께.
보리의 여정은 사실 실패한 여정이다. ‘콩나물을 사 오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돌아돌아 시장까지 갔지만, 결국 무얼 사러 왔는지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리는 콩나물을 사오는 것보다 더 값진 경험을 했는데, 바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만나는 경험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때로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은 매우 험난하고,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많은 영화들이 인물의 성장을 다루고 있고, 또 그 중 많은 인물들은 실패의 거듭을 통해 결국 성공을 이루어낸다. 하지만 이 영화의 보리는 그 목표가 작은 것이기는 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영화는 그렇게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 안에 성장이 있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보리의 여행기에 갑작스레 판타지가 개입되는 죽은 할아버지와 해바라기의 등장은, 우리가 삶의 여정에서 뜻밖의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그 과정 자체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아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목표는 계획을 통해 머리로 세워진다. 그래서 목표의 성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과 이를 위해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목표와 함께 명확하게 규명된다. 하지만, 성장은 다르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성장의 순간이 구체적인 것도 아니다. 때로는 성장한 뒤 한참 뒤에 ‘아 내가 그때 성장했었구나.’하고 알게 되기도 한다. 목표가 현실이라면 성장은 판타지인 것이다. 첫 심부름을 훌륭히 마무리하는 것보다 더 큰 성장을 이뤄낸 보리를 통해 영화는 현실보다 값진 판타지, 즉 목표보다 값진 성장을 보여준다.
봐야지 봐야지 하고 아직도 <우리들>(윤가은 감독의 장편영화)을 보지 못했는데... 그전에 <콩나물>을 보게 되었다. 윤가은 감독의 세심한 연출이 여기서부터 이어진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카메라 높이며, 아이가 주인공인 것 하며. 아이들은 굉장한 힘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일을 하던지 일단은 포용의 눈길로,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보게 하니까. 어린 아이의 사소하고 작은 무용담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아름답고, 기분 좋게 효과적으로 보여준 좋은 영화였다. 2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 한국예술종합하교 미디어콘텐츠센터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볼 수 있으니 한 번쯤 보시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