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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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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이 May 09. 2019

시사프로그램으로서의 정체성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는 시사프로그램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새로운’ 프로그램이었다. 시사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정치, 사회, 경제 등의 현안을 다루는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모든 프로그램이 다루는 소재가 같을 수밖에 없고, 취재나 탐사 기법에 변화를 주려고 해도 그 다양성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시사프로그램의 면면만 살펴보아도, 유형별로 개략적인 분류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탐사보도류: 기본형: PD수첩(MBC), 추적 60분(KBS1), 그것이 알고 싶다(SBS)
                    응용형: 탐사기획 스트레이트(MBC), 시사기획 창(KBS1),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JTBC),
                                 탐사보도 세븐(TV조선)

토크쇼류: 판도라(MBN), 제정임의 문답쇼 힘(SBS CNBC), 저널리즘 토크쇼 J(KBS1), 용감한 토크쇼 직설
                 (SBS CNBC), 보도본부 핫라인(TV조선), 시사쇼 이것이 정치다(TV조선)

토론류: 100분 토론(MBC), JTBC 밤샘토론(JTBC), 생방송 심야토론(KBS1), 토론쇼 시민의회(KBS1)

사건 소개류: 사건파일 24(TV조선), 사건반장(JTBC), 사사건건(KBS1)

(각 프로그램의 소개 문구와 기획 의도, 진행방식을 기준으로 분류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는 달랐다. 함께 방영되는 타 시사프로그램 중에 이 프로그램과 비슷한 것은 찾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신선한 프로그램’이다. 신선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방영분을 보고 난 후 신선함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도전으로서의 신선함은 돋보였지만 그만큼 시사프로그램으로서의 아쉬움이 컸다.


연기자 서처 K

서처 K에 대한 아쉬움은 진행자인 김지훈 배우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진행 스타일에 대한 아쉬움에 가깝다. 다른 배우나 기자, 아나운서가 진행을 맡았더라도 같은 문제는 생겼을 것이다.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는 서처 K가 가짜 뉴스의 진실을 직접 파헤쳐가는 구성이다. 진행자가 직접 가짜 뉴스를 소개하고, 사실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컴퓨터로 검색을 하면서 관련 인물과 통화도 하고, 인터뷰 영상도 보며 진실을 찾아 나간다. 이는 주로 사건을 직접 취재한 기자가 나와 취재 결과를 소개하거나, 영상을 통해 사건을 소개하고 진행자가 그에 대해 발언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타 시사프로그램과는 다른 방식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방식은 득보다 실이 더 많아 보인다. 시청자는 김지훈 배우가 진행만 할 뿐, 정말로 취재하고 인터뷰하고, 통화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한마디로 김지훈 배우는 지금 연기 중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그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도 시청자들은 그들이 연기 중임을 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들은 재미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사실은 연기 중이라는 것이 시청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사프로그램은 다르다. 시사프로그램은 재미나 몰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방송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이 주는 신뢰감 또한 매우 중요하다. ‘연기’는 하나의 전달방식일 뿐이지만 그 밑에 깔린 허구성 때문에 시사프로그램에 맞지 않는 듯한 이질감을 준다.

갑자기 동료 아나운서에게 전화가 와서 관련 내용을 전달받거나, 기자인 지인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인터뷰하는 등의 과한 설정이 차별화 전략이 될 수는 있겠지만 시사프로그램이 가져야 할 신뢰감이나 무게감은 오히려 반감시켰다. 진행자와 기자 혹은 게스트가 대화하는 기존의 형식을 고집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시사프로그램의 목적을 방해하지 않는 적절한 전달방식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진실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는 주로 최근 가장 이슈가 된 문제들을 조사해왔다. 그래서 화제성이나 시의성 부분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 (아직 재판 중이거나, 논란이 끝나지 않은 문제를 다뤄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핵심인 팩트를 체크하는 과정에서 그 근거가 빈약하고 내용 구성이 불친절하다고 느꼈다.


설명 불충분

먼저 첫째로 아쉬운 점은 언급은 하였으나 그에 관련해 충분한 설명이 덧붙지 않은 것이다. [당신이 믿었던 황교익 논란] 부분을 보면 서처K는 황교익 논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자료와 함께 여러 번 보여준다.

그러나 정작 왜 시점이 중요한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물론 백종원 대표를 저격한 SNS 글로 인해 황 칼럼니스트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었고 이로 인해 가짜 뉴스와 게시물이 난무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가짜 뉴스를 다루는 프로그램인 만큼 어떤 사건 때문에 한 인물에 대해 마녀사냥과 같은 악의적인 글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거나, 혹은 이러한 논란을 일으킨 황교익 칼럼니스트의 발언에 대한 팩트체크가 이어졌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전혀 덧붙지 않았다. [당신이 믿었던 가짜난민] 부분은 더 심각하다.

공항에 갇혀 사는 루렌도 가족

-한국 정부나 공항, 항공사 측에서 어떤 지원도 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만 언급

-현재 왜 공항에 갇혀 지내고 있는지, 어떤 경위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현재 앙골라의 상황은 어떠한지 등 부연 설명 부족




유튜브 아이엠피터TV 속 김승규 전 국정원장의 “딸들 많이 뺏겼어요”라는 발언

-이러한 발언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왜 잘못되었는지 설명 없음.






무사증 불허국에 예멘 포함

-무사증 불허국이 무엇인지, 예멘이 포함되어 난민 문제에는 어떤 영향을 준다는 건지, 난민 문제와 무사증 불허국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부연 설명 부족





예멘 난민 인터뷰

-궁핍하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난민이라고 주장하는 남성 난민.

-경제적 수준과 난민의 자격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난민의 정의와 고정관념, 예멘 등 주요 난민 발생 국가의 상황 등 부연 설명 부족




말레이시아 사회연구소 소장 인터뷰

-한국이 난민협약에 사인했으니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

-난민협약 내용이 무엇인지, 다른 협약국들은 어떤 정책을 쓰고 있는지, 우리나라는 협약 가입 뒤에 어떤 일을 했는지 등 부연 설명 부족





위와 같이 단순히 언급만 하고 이를 뒷받침할 부연 설명을 충분히 해주지 않아 일반 시청자가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부연 설명이 없으면 잘못된 정보가 될 수 있겠다 싶은 내용도 있었다.

제주도 예멘 난민 신청자 월급명세서

-난민 신청자가 시급보다 더 적은 급여를 받고, 거기에 세금도 내고 있고, 따로 생계지원을 받지는 않고 있다는 내용

-난민으로 정식 등록이 된 것이 아니라 난민 신청자이기 때문에 저런 대우를 받는 것일 수 있는데 이에 관한 부연 설명 부족. 만약 그렇다면 전체 난민이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잘못된 내용으로 전달될 수 있음.

2019 국회 예산안 조정 소위원회 난민 예산 

-난민 예산이 난민이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오지 않도록 노력하는 용도로 책정된다는 내용.

-원래 난민 관련 예산이 어떤 용도인지, 이전에는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난민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노력에 무엇이 해당하는지 등에 대한 설명 부족. 전체 난민 예산이 이런 용도인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이고 만약 아니라면 잘못된 내용으로 전달될 수 있음.


뉴스가 있는데도 시사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은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전해야 해서 모든 내용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하는 뉴스 대신 시청자들이 알아야 할 내용을 취재하여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정된 시간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다루려고 했기 때문인지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는 설명 부족으로 시청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했다.


맥락에 맞지 않는 정보

둘째로 아쉬운 점은 맥락에 맞지 않는 정보 삽입이다. 먼저 [당신이 믿었던 황교익 논란]에서 서처K는 황 칼럼니스트에 대한 논란을 나무위키 사이트에 검색해보고, 분량이 매우 많은 것에 놀라며 이순신, 세종대왕 페이지와 비교해본다. 나무위키가 등장한 것부터 위인들과 분량을 비교하는 것까지 왜 등장했는지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나무위키는 누구나 작성 및 수정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가려 읽는 것이 중요한 웹백과다. 자신의 중요 관심사에 대한 정보를 개별적으로 써넣기 때문에 분량과 중요도 사이에도 또한 관련이 없다. (참고로 현재 나무위키에서 방송과 관련된 가장 긴 문서는 예능 프로그램 <이웃집 찰스>의 출연자 목록이다.) 더구나 황교익 칼럼니스트에 대한 논란이 나무위키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갑자기 나무위키는 가려 읽어야 한다든지, 나무위키 내용에 어떤 잘못된 부분이 있다든지 하는 언급도 전혀 없이 이런 내용이 삽입된 것이다. 뒷부분에는 행동분석전문가의 황 칼럼니스트에 대한 분석내용이 나오는데, 이 또한 의아한 대목이었다. 앞선 내용에서 황교익 칼럼니스트에 대한 논란은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고, 그의 발언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황 칼럼니스트가 대중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는 내용이 등장했다.

이렇듯 갑자기 등장하는 맥락에 맞지 않는 내용은 프로그램 시청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관련 없는 내용이 중심내용보다 강렬히 기억되어 프로그램 전체의 핵심내용으로 둔갑할 수도 있다. 이 또한 시사프로그램으로서는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알맞지 않은 정보 출처

마지막으로 알맞지 않은 정보 출처다. [당신이 믿었던 가짜난민] 편에서 난민법에 관해 설명하면서 인용한 자료는 네이버 지식백과였다. 네이버 지식백과는 위키백과처럼 모두 수정하고 작성할 수 있는 자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매우 공신력 있는 자료라고도 말할 수 없다. 나는 화가 정선에 대한 자료를 지식백과에서 찾던 중 자료 간의 내용이 상충한 것을 발견했고, 이에 대한 내 수정 요청이 받아들여져 실제로 수정된 경험이 있다. 일개 고등학생이었던 나의 눈에도 오류가 보일 정도의 자료라면 믿을 수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법에 관한 설명은 변호사를 인터뷰하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고, 서처K가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도록 연출하고 싶었다면 국가법률정보센터 사이트를 활용해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네이버 지식백과를 택한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또한, 독일의 가짜 뉴스 대응법에 대해서도 기자와의 인터뷰로 그 내용을 소개했는데 법에 관련된 내용이니 국제변호사와 인터뷰를 하거나 실제 처분을 받은 사례를 인용해 소개했다면 더욱 신뢰도를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충분하지 않은 설명, 맥락에 맞지 않는 내용, 신뢰도가 낮은 정보 출처는 시사프로그램으로서는 치명적인 내용이다. 특히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는 가짜 뉴스를 가려내고 진실을 밝히는 프로그램이다. 기존에 있던 주장과 논리를 합당하고 충분한 근거로 반박해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이번 방송을 통해서 그런 통쾌함은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다 어디서 들어본 내용만 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팩트체크형 시사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는 매우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다. 젊은 층을 공략한 진행자 선정과 새로운 형식의 도입이 돋보인다. 하지만, 시사프로그램 본연의 목적과 정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맥락에 맞지 않는 내용과 신뢰도가 낮은 정보 출처를 수정하여 시사프로그램으로서의 신뢰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기본이고, 이에 더해 시청자들이 시사프로그램에 기대하는 바를 충족하면서도 새롭고 기발한 프로그램이 되기 위해서는 이번 휴식 기간에 더 철저한 정비가 필요할 것이다.

이에 대해 나는 두 가지 변화를 제안하고 싶다. 먼저 한 주제에 대해 미리 팩트체크를 진행한 여러 서처가 등장하여 진행자와 함께 가짜 뉴스의 진위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진행방식을 제안한다. 여러 명의 패널이 등장하여 의견을 나누는 것이 뻔한 구성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토크쇼는 예능이나 시사프로그램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고 시청자들이 편하게 수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특히 방송이 진행되는 현장에서 서치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서치를 미리 해온 결과물과 함께, 혹은 서치 과정을 담은 동영상과 함께 팩트 체크를 한다면 ‘연기’라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도 ‘서처’라는 인물을 계속 사용할 수 있으면서 자연스레 서처들의 가짜 뉴스에 대한 의견까지 담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한 회에 한 주제만 다룰 것을 제안한다. 이번 시즌에서는 한 회에 두 주제를 다루면서, 또 각 주제의 여러 면에 대해 다루다 보니 한 주제 안에서도 다루는 내용의 순서가 뒤섞여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시청자들이 알고 싶은 만큼 깊게 다뤄주지 않는다는 아쉬움도 들었다. 하지만 한 회에 한 주제를 다룬다면 주제에 대한 여러 내용과 시각을 다루면서도 깊이 있게 파헤칠 수 있고, 서처들이 이에 대해 의견까지 나눌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확보될 것이라고 본다.

시즌2까지는 단 한 달만이 남아있다. 한 달 후 방영될 시즌2는 아쉬움보다는 만족감으로 마무리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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