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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hongmin Nov 04. 2021

내가 명품을 살 줄이야

나 명품 좋아하네 (feat. 까르띠에 러브링)

내가 명품을 살 줄이야


결혼 준비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지금 내가 까르띠에 반지를 끼고 있을 줄은.


 프러포즈 반지를 종로에서 맞추기도 했고, 예물은 종로에서 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당연히 종로의 금은방 같은 데 가서 결혼반지도 맞추겠거니 했다. 뭐 이때는 반지를 종로, 청담, 브랜드에서 맞춘다는 게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지도 못하긴 했다.


가격을 기준으로 본다면 종로가 가장 저렴하고, 청담, 브랜드(명품) 순으로 비싸지는 걸로 보였고, 청담은 좀 더 디자인적인 측면에 중점을 둔 사람들이 선호하고, 브랜드는 명품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찾는다고들 하더라.


처음에는 여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결혼 준비를 시작하기도 했고, 애초에 명품은커녕 반지도 껴본 적이 없는지라 각각에 대한 선호도 존재하지 않아서 당연히 종로에 가서 맞추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 친구와 결혼반지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샌가 백화점 명품관에서 대기번호를 발급받고 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나는) 호기심이었다. 뭐 껴보는 건 공짜니까 라고 생각하며 결혼반지로 많이들 한다는 티파니, 불가리, 까르띠에에 대기를 걸었다. 근데 얘네는 들어가서 보기만 하려고 해도 기본 3~4시간을 기다리라고 하네.


점점 오기가 생겼다. 니들이 뭔데.


그러고 나서 4시간 정도를 기다리다가 입장을 했다. 오기가 생기긴 했지만 경호원을 지나쳐서 비싼 게 많은 화려한 매장을 들어가 보니 뭔가 공손한 마음이 들면서 아장아장 걸어 들어갔다.


처음엔 티파니, 불가리를 먼저 들어갔는데, 별로 이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특히 불가리는 엄청 두꺼운 반지를 보여주시는데, 이걸 정말 결혼반지로 한다고...?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샤넬도 한 번 가봤는데 패션 링에 가까워서 결혼반지 느낌은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명품이 마음에 들지 않다니. 종로에서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까르띠에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처음에는 일자 드라이버를 돌려야 할 것 같은 무늬들이 좀 어색하긴 했는데, 여자 친구가 낀 다이아가 하나 박힌 반지가 퍽 이뻐 보였다.


아차 싶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일단은 그냥 느낌만 보러 온 거니까 하고 서둘러 백화점을 나왔다. 그런데 프러포즈 장소 고를 때 느꼈던 시그니엘 병이 도졌다. 이쁜 걸 보고 나니까 다른 반지 친구들이 오징어처럼 보였다. 큰일 났다 싶었다.


그래도 결정은 해야 해서 일주일 정도 지난 후, 다른 백화점을 간 김에 다시 대기를 걸고 까르띠에를 방문했다.  혹시나 했지만 여전히 이뻐 보였다. 걱정이 현실이 되었다. 이젠 이걸 사야 할 것 같았다.


'그래, 평생 한 번뿐인 결혼 반진데', '커플링도 안 했었고 처음 하는 반진데', '처음 사는 명품인데' 등등 온갖 심리적 버프를 받으면서 우리는 까르띠에 반지를 결혼반지로 확정 지었다. 심리학과 졸업해봤자 다 소용없다.


사기로 마음을 먹고 조금이라도 싸게 사보려고 유튜브도 뒤져보고 검색도 해보고 했는데, 까르띠에가 워낙 고고하신 분이라 상품권으로 사는 것 말고는 가격을 깎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몸값도 계속 오르신단다.


세 번째 까르띠에 방문날 우리는 한 손 가득 상품권 뭉치를 쥐고 매장 문을 들어섰고, 잠시 후 고고하시고 아름다우시며 광택이 넘치시는 반지를 손에 쥐고 매장 문을 나섰다.


그리고 지금 내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는 까르띠에 반지가 끼워져 있다. 이쁘긴 하네.


나 명품 좋아하네.

내가 명품을 살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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