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메이저리그 챔피언을 가리는 시리즈가 한창이지만, 아메리칸 리그 시즌 MVP는 일본 출신 오타니 쇼헤이 선수가 거의 확정적인 듯하다. 그도 그런 것이 타자로 46 홈런에 100타점, 26 도루 103 득점을 기록하며 문자 그대로 호타준족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어디 그뿐인가? 투수로서도 130이닝 이상을 던지며 9승 2패 평균 자책점 3.18을 기록했다.
투수로서는 다소 아쉬운 결과지만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전천후 선수로서 그 이상의 성적을 거두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느 유명 선수가 언급했듯 우주급 선수임에 틀림없다. 특히 동양인으로서 거둔 성적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고, 메이저리그에서도 그 진가를 인정받고 있는 듯하다.
최근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도 투타를 겸하는 선수가 출현하고 있다. 한 포지션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좋겠지만 투수 등 전혀 다른 포지션에 도전하는 것은 그만큼 각고의 노력을 요하는 만큼,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학생 야구에서 어릴 때 정한 포지션이 성인까지 굳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실제로 본인에게 더 맞는 역할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여자배구의 독보적 자랑인 김연경 선수가 더욱 훌륭한 것은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실제로 2012년 런던올림픽 리시브상을 수상했다), 그야말로 천재적인 선수이지 않나 싶다. 이는 고등학교 시절 수비 전담인 ‘리베로’ 경험이 있어서였을 것이고, 자신의 배구 시야를 훨씬 넓혀 주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이렇듯 스포츠 선수들의 다방면에 걸친 출중한 능력들도 연습과 경기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고, 우리에게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주곤 한다.
대부분의 직장인 또한 여러 부서와 직무를 경험하기 마련이다. 본인의 성격과 스타일과는 다른 일로 배치되면 당연히 염려와 부담이 따른다. 새로운 일과 사람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그 일에 녹아들 때 직장인으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수천 명의 영업사원과 접하고 수십 명의 소장을 선발하고 육성한 듯하다. 이러한 경험도 당연히 지점 근무에 기인한 것으로, 하나하나 되돌아보고자 한다.
교육과 고객만족 부서에서 나름의 성과를 인정받아 초급 관리자로 지점에 발령받게 되었다. 사실상 지점 영업 전반을 책임진다는 걱정과 두려움보다는 자신감과 패기로 뭉쳐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 자신감은 오래 못 가고 말았으니…….
#1
월간 실적회의가 주는 당연한 긴장감에 더해 지역본부 담당 임원이 주재하는 첫 번째 1월 영업실적회의라 더욱 딱딱한 분위기일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새로 부임한 신임 부지점장들은 무겁게 가라앉은 회의실의 분위기와 실적 발표에 대한 부담감으로 자연스레 경직된 표정으로,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본사에서 처음으로 지점에 발령받고, 더구나 영업이 처음이었던 나는 바짝 졸아 있었고 게다가 실적도 밑에서 두 번째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본부 주관 전년도 12월 실적 발표 이후, 지점별 반성에 이어서 다음 달 영업계획 발표가 제법 길게 진행되었다. 한 시간을 훌쩍 넘게 진행된 발표가 끝나자마자 역시 예상했던 대로, L 이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회의실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사진 출처 : 아이 스톡 바이 게티이미지스
“그 따위로 밖에 못해? 하위 3개 지점 자리에서 일어나!”
순간 멍했다. '설마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지?'
아, 아니었다. 나도 일어나야 했다. 5분은 쓴소리를 들어야 했던 거 같다. ‘생각이 없다 느니, 무책임하다’ 느니, 머리가 띵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영업 현장이 처음이었던 나는 처음으로 느끼는 강한 모멸감과 수치심으로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기다렸다.
중학교 1학년 때였던가? 외국인 영어강사의 수업시간이었다. 짝꿍이 장난을 걸어와서 대응하다가 강사에게 딱 걸렸다. 둘 다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벽을 보고 손을 들고 있을 때 나도 모르게 찔끔 눈물이 났던 적이 있다. ‘외국인에게 이게 뭐야’ 하는 수치심과 친구에 대한 짜증으로 그랬던 것 같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 하지만 학창 시절에 꾸중을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불쾌감이 나를 찾아왔다.
고통스러운 시간이 가고 결국 마지막 결정타가 우리를 아프게 했다.
“너희들 지방으로 발령 내주면 되겠어? 제대로 하는지 한 번 보겠어.”
#2
긴 회의가 드디어 끝나고 당연한 것처럼 우리 몇몇은 본부 앞 술집으로 발걸음을 같이 했다.
“말이 너무 심하지 않아? 임원이면 다야? 새해 첫 달부터 너무 심하네 이건”
“그러게 말이야. 내가 임원이라면, 어렵겠지만 기운들 내고 올해 파이팅해보자고 하겠다” 하고 누구 할 것 없이 울분을 씹었다.
가만히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고, 맞장구치며 너무 하다고 함께 하던 나는 술자리가 2차 3차 거듭될수록 푸념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니 1월에 발령받은 사람한테 시간도 안 주고 이게 뭐 하는 거지? 그래 조금만 기다려 봐. 다시는 그런 막말 하지 않도록 내가 보여주마’ 하고 술자리 특유의 투지(?)가 불타올랐다.
사진 출처 : MBC 무한도전
그러나 영업 신출내기였던 나에게 현실은 녹록치 않았고, 상황은 조금씩 나아져갔지만 약 반년 간 하위권에서 쉽게 탈피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초급 관리자로서 패기는 온데 간데없이 사라지고, 갈수록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1월 회의 석상에서 그때 함께 공개적으로 질타를 받았던 다른 부지점장은 결국 몇 달 못 가서 버티지 못하고 급기야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몇 달째 거듭되는 면박과 수모에 차라리 내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제법 큰 규모의 유흥주점을 차렸다 들었고 서로의 앞날이 잘 되길 바란다는 덕담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후에도 조금씩 실적은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목표에 미달되다 보니 말로만 듣던 영업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체험할 수밖에 없었다.
방법을 잘 모르니 나로서는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고, 전전긍긍 고민의 연속인 시기였다. 패기만 있었고, 영업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할 생각도 못하고, 영업조직 생리에 대한 이해 또한 미흡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지점의 경쟁력도 현저하게 떨어져서, 타 지점 대비 영업사원의 수가 절반도 안 되니 실적이 제대로 갈 리 만무했던 것이다.
결국 하나하나 몸으로 부딪혀 체득해 가고, 차근차근 그러나 빠르게 개선해 나가는 것만이 해결책이었다. 가장 중요한 영업소장의 성향과 일하는 방식, 영업팀장의 장단점과 영업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성을 살펴보고, 영업조직의 개선점을 찾아가는 그 과정 속에서 ‘영업도 해볼 만하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또한 돌이켜보면, 순간순간의 과정을 통해 살아 있는 현장 경험을 익혔던 것은 영업 문외한인 나로서는 영업에 대한 자세와 태도, Skill과 지식 등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고 확신한다.
(다음 편에서……)
작가의 말
-애환편은 7편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