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마도 3호선의 해저유물에서 장기알이 발견되었다. 현재 문헌상으로는 우리나라에 장기가 언제 전래되었고, 언제부터 일반적인 놀이문화가 되었는지 불확실하다. 그런데, 명확한 시기가 증명되는 장기알의 발견을 통해 우리나라의 장기역사는 조금 더 명확해졌다.
다음은 마도 3호선 해저유물 조사보고에서 장기관련 기록을 정리해본 것이다.
1. 마도 3호선 침몰시기는 1260~68년이다.
2. 장기알이 발견된 곳은 선원들의 주요 생활공간인 선체 중앙부에서 이다.
3. 장기알은 47점이다.
4. 장기알은 타원형으로 생긴 검은 색 조약돌이다.
5. 장기알의 크기는 오늘날과 달리, 대기물과 소기물의 크기 차이가 뚜렷하지 않다.
6. 앞면과 뒷면에 장군(人+將), 차(車), 포(包), 졸(卒) 등의 글자가 확인되었다.
7. 장군이 초(楚)와 한(漢)으로 되어 있지 않고 그냥 장군으로 되어 있다.
8. 양 진영의 구분은 글자 밑에 동그라미○를 표시하여 구분한 듯하다.
이상의 사실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1) 고려시대, 특히 13세기 중엽에는 이미 장기가 선원들까지 둘 정도로 성행하였던 것을 알 수가 있다.
2) 장기알의 크기가 차이가 없고, 장군이 초(楚)와 한(漢)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아, 중국장기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후 어느 시기에 초와 한의 모티브가 장기 게임에 각인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새로운 조사 목록으로 추가된다.
3) 장기알이 오늘날의 32점 보다 훨씬 많은 47점이어서 2벌 이상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지만, 혹시 지금의 장기 보다 장기판이 크고, 장기알이 많은 대장기(廣象戱 등)를 두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5. 01.12)
다음은 기사 및 사진 전재
‘13세기 타임캡슐’ 마도 3호선서 유물 287점 인양[동아일보] 고려땐 ‘개고기포’도 공물이었다
13세기 중엽 어느 날, 한 척의 배가 전남 여수항을 출발해 인천 강화도로 향했다. 배는 전복젓갈, 말린 생선, 개고기포, 사슴뿔 등 권력자에게 보내는 물품으로 가득했다. 선원들은 조약돌로 장기를 뒀고 구석에 놓인 볏섬에서는 쥐가 낟알을 갉아먹고 있었다.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해역에서 2009년 9월 발견된 ‘마도 3호선’은 고려시대 생활유물의 보고였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성낙준)는 5월부터 최근까지 실시한 마도 3호선 발굴 조사 결과를 6일 발표했다.
발굴단은 지금까지 목간(木簡) 32점, 항아리 28점, 볍씨 조 등 곡물류, 사슴뿔, 쥐뼈, 장기돌 등 총 287점을 인양했다. 특히 목간을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고려사회의 단면과 삼별초의 조직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마도해역 일대는 물길이 험하고 짙은 안개로 선박 난파가 잦은 곳. 2009년 마도 1호선, 2010년 마도 2호선에 이어 올해 조사한 마도 3호선은 현재까지 발굴한 고려시대 선박 가운데 상태가 가장 양호하다. 길이 12m, 너비 8m, 깊이 2.5m. 그동안 발굴된 적이 없는 선수와 선미, 돛대가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 고려시대 선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도 3호선은 몽골 침략기에 임시 수도로 삼은 강화도에 거주하던 권력자들을 위해 지금의 전라도 일대에서 거둔 물품을 싣고 여수를 출발해 북상하다 마도 인근에서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항지는 목간에 나오는 여수(呂水)라는 지명에서 단서를 찾았다. 여수는 지금의 전남 여수(麗水)다.
목간에는 화물의 수취인으로 시랑(侍郞·4품으로 장군과 같은 품계)인 신윤화(辛允和)와 유승제(兪承制)가 적혀 있다. 유승제는 성이 유 씨이고 승제라는 관직에 있는 사람으로, 옛 문헌에 따르면 유천우(兪千遇)가 유일하다. 이들이 해당 관직을 지낸 시기를 감안했을 때 마도 3호선의 침몰 시기는 1260∼1268년으로 보인다.
또 ‘김영공(金令公)에게 홍합 젓갈과 날것 40항아리 합 51항아리’를 보낸다는 내용도 목간에 쓰여 있다. 김영공은 무신정권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은 김준을 이른다. ‘영공’은 고려시대 왕실 사람들에게만 붙이던 극존칭인 만큼 그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삼별초에 대한 새로운 사실도 밝혀졌다. ‘우삼번별초도령시랑(右三番別抄都領侍郞)’이라는 목간 기록을 통해 삼별초가 좌우 각 3번으로 나뉘어 있었고 별초의 지휘관이 4품의 시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동안 별초의 지휘관은 7∼8품의 하급 무반으로 알려져 있었다.
(동아일보, 2011.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