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장기를 언제부터 두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릴 때, 명절이면, 삼촌들과 오목(Five in a Row)을 둔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한 5살 때부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오목을 자주 두었습니다. 장기(Janggi)는 초등학교 시절 곧잘 두었습니다. 아버지가 자주 두어주셨는데, 지면, 눈물을 많이 흘려, 가끔 일부러 져주시기도 하셨지요. 초등학교 3~4학년 때엔 가정방문 오신 담임선생님과 장기를 둔 기억이 납니다.
장기를 그만 두게 된 것은 바둑 때문이었습니다. 바둑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께서 바둑을 가르쳐주신 것이 분명히 기억납니다. 초등학교 때는 바둑이 지루하여 두기 싫었는데, 중학교때 쯤 되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바둑에도 어느 정도 적응하게 됩니다. 당시에 집에서 굴러다니던 조남철의 <바둑의 기초>란 책을 발견하고 읽게 되었는데, 실력이 급상승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아버지와도 장기보다는 주로 바둑을 두게 되었지요. 당시 바둑에서 최고의 기사는 일본의 프로기사 면도날 사카다(坂田)였습니다. 한국의 천재기사 조치훈이 몇 번 도전했는데, 특히 일본기원선수권전에서 3:2로 역전패를 당하면서 분루를 삼키기도 하였지요. 그래서 그런지 당시에는 서점에 사카다의 바둑책이 아주 많았습니다. 우선 그의 책을 조금씩 읽었고요. 이후 때려잡기 가토(加藤), 우주류 다케미야(武宮) 등의 바둑책을 읽으면서 장기와는 많이 멀어지게 되었지요.
다만 고등학교 때, 지금은 작고하신 네째삼촌 댁에 놀러가면, 삼촌이 장기를 좋아하셔서 장기를 많이 두었는데, 정말 잘 두셨지요. 언제나 말을 하나 접어주시고 면상과 농포를 주로 하셨는데, 초반전에서 손해를 안 보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혹 어쩌다가 저의 급전에 말리는 경우에도 기기묘묘하게 타개를 하셨는데, 어린 마음에 분하면서도 그 신출귀몰한 수순에 감동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둑에 눈이 먼 저한테 장기에서 몇 번 지는 것이 그리 큰 아픔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른이 된 후 장기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입니다. 부모와 자식은 여러가지로 대화를 하는 것이지만, 장기나 바둑과 같은 보드게임도 가족간의 유대감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님께 명절날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손자들과 장기를 두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이 장기를 알게 될 즈음, 독일에 나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장기보다는 아이들과 가끔씩 체스를 두었습니다. 서구사회에서는 아무래도 장기보다는 체스가 대인관계에도 더 도움이 될 테니까요. 물론 체스의 룰을 잘 몰랐기 때문에, 처음에는 엉터리로 두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앙파상'이라든가, '캐슬링' 같은 것은 처음에는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쨌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아이들도 저도 체스를 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아이들과 가끔씩 체스를 두었는데, 큰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더니, 체스 교본을 하나 사달라는 거였습니다. 예전에 제가 사카다의 책을 읽고 비약적으로 바둑이 성장했듯이, 제 아이도 Yasser Seirawan의 'Tactics' 를 읽더니 엄청나게 체스의 실력이 강해졌습니다. 결국 저도 명절날 시골 가는 길에 잠도 자지 않고 눈을 부릅뜬 채 그 책을 다 읽어내고야 말았습니다. 과연 훌륭한 책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소성이 떨어지는 늙은 머리에 체스의 tactic이 제대로 정착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기대 이상으로 얻은 게 많은 독서이었습니다.
그것은 체스와 장기가 외견상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 한 꺼풀 벗겨보면 그 속살(게임내용)은 상당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차이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단연 폰(Pawn)이었습니다. 폰의 행마는 이동방향(직진)과 공격방향(사선)이 다릅니다. 한국장기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폰의 행마는 적응하기가 가장 힘듭니다. 체스에서는 상대의 폰 바로 앞에 내 말을 갖다 놓는 것은 적의 포대 바로 밑과 같이 역설적으로 꽤 안전한 구역입니다. 상대 폰이 공격할 수 없고 또 상대편 기물의 공격을 상대 폰이 막아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상대 폰 앞에 내 말을 슬쩍 갖다놓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또 폰의 사선방향에 무심코 말을 갖다 놓다가 상대에게 잡아먹히기가 일쑤입니다. 이런 것은 어린 시절의 DNA에 심어져 있지 않으면 잘 고쳐지지가 않습니다.
아마, 장기판(90점=9×10)보다 훨씬 좁은 체스판(64칸=8×8)에서 폰과 폰이 정면으로 맞부닥치면 서로 피할 공간이 없으므로 이런 규칙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직선적 공격으로 서로 난타전이 되면, 승부의 전략을 겨루는 시간도 없이 삽시간에 승부가 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체스에서는 폰의 전투력을 약화시킴으로써 게임의 묘미(전략성)를 살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폰의 특성으로 대국자는 폰의 안전을 위해 폰을 인접시켜 체인모양(연쇄상)을 형성하게 되는데요. 중반전에 접어들 때쯤이면 폰들은 살아있는 기물이라기 보다는 지어진 구조물(Pawn Structure)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체스는 이렇게 지형지물화된 폰의 숲을 넘나들며 여러 대기물들(퀸, 비숍, 나이트, 룩)이 근접전으로 몸싸움을 벌이는데 그 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폰 하나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의문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습니다. 체스에서 장기에 없는 퀸(Queen)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룩(Rook)은 전차(車)인데 왜 성벽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코끼리(象)는 비숍(Bishop)이 된 것일까? 폰(卒/兵)은 어떻게 승진(Promotion)할 수 있게 된 것일까? 또한 장기에 있는 포(包, Cannon/Catapult)가 체스에는 왜, 없을까? 장기에는 어떻게 궁(宮, Palace/Castle)이 생겨나게 된 것일까?
그러다가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제껏, 체스는 서양에서 두는 장기, 그리고 장기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 두는 장기 그렇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장기만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날벼락입니까? 중국의 장기는 상치(Xiangqi 象棋, Xiangxi 象戱)라 하고 또한 한국장기와는 장기판도 기물의 행마와 형태도 그리고 기물의 첫 포진마저도 조금씩 다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웃 일본도 조사해 보았더니 일본의 쇼기(將棋)도 우리나라 장기와는 장기(將棋)라는 한자만 같을 뿐 기반과 기물 그리고 규칙 등 모든 것이 너무나 다른 게임이었습니다.
체스가 세계챔피언이 있고, 바둑 또한 세계 대회가 있듯이, 장기 또한 세계적인 대회를 열어 최고를 가리면 어떨까하고 어렴풋이 생각해왔었는데, 그만 공염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한국, 중국, 일본 장기 외에도 태국장기(막룩), 미얀마장기(싯투린), 몽골장기(샬탈)가 별도의 전통을 따라 현재에도 두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20세기에 접어들어 서구열강의 서세동점을 등에 업은 체스의 영향으로 고유성을 잃게는 되었지만, 인도네시아장기(마인 차토르), 캄보디아장기(옥 차트랑), 인도의 로칼 체스 등 세계 곳곳에 다양한 장기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체스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단순한 의문의 차원을 넘어, 인류 문화교류의 역사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체스의 기원을 알아보려는 질문은 그 자체로 보드게임의 역사와 전쟁의 역사를 씨줄 날줄로 엮어야 되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훌륭한 학자들이 이러한 주제와 관련하여 책을 펴냈고 또한 현재도 훌륭한 분들의 홈페이지에서는 자료와 논의가 계속 쌓이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는 이런 자료를 모아보고 생각을 반추해보려 합니다.
(2009.11.15. [쓰지 않는 배: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