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칼뱅의 예정론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에 나온다. 막스 베버는 칼뱅의 예정론이 프로테스탄트들로 하여금 자신의 천직에 매진케 하고 그리고 성공을 한 후에도 근검절약하는 기풍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에 서구의 자본주의를 잉태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예전에는 이러한 베버의 주장에 대해 생각할 때, 마르크스의 유물 변증법과 사적 유물론에 대응하는 정신적 제도의 힘에 대한 통찰이라고 감탄하기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칼뱅의 예정론에 대해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완전히 무시되면서, 태초 이전에 어떤 인간이 구원될지 구원되지 못할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그의 이론이 단순한 학문적 주장을 넘어 기독교의 교리가 되려면, 성서적 근거가 있는 게 틀림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성서적 근거는 무엇일까?
이렇게 생각하고 조사해 보는데, 막상 예정론의 성서적 근거는 무척 빈약했다.* 대체로 칼뱅주의 교리는 인간의 자유의지의 역할을 완전히 무시하여 성서적 근거도 부족하고, 또한 사회 교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들을 접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신학자나 목회자들이 할 일이지만 평범한 나의 이성으로는 칼뱅적 운명론이 쉽게 수긍되지 않았다.
항상 신교(프로테스탄트)는 구교(가톨릭)의 폐습과 독단적 교의를 성서적 근거에 의해 제거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연한 교리를 구축한 것으로 생각해왔는데, 그 신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의 일부가 이상한 고집과 억측들에 의해서 기반이 세워졌다고 생각하니, 다시 한번 정신적 상부구조의 강력한 힘을 새삼 실감한다. 왜냐하면, 오늘날에 와서 종합적인 정보를 갖추고 들여다볼 때는 논리적 근거가 많이 부족한 이러한 교리가 당시에는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을 교화하는 데 훌륭한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은 이러한 운명론적으로 선민이 되어 칼뱅적 예정론을 신념화한 사람들이 역사에 기여한 엄청난 영향력이다. 막스 베버에 따르면, 초기 자본주의의 주요 기업가들은 대부분 프로테스탄트 신자의 가정에서 나왔다. 그들에게는 기존 체제에서의 안락한 지위가 보장되지 않았기에 더더욱 스스로의 힘으로 산업혁명 초기의 혁신을 주도하여 서구 자본주의의 기틀을 만들었다. 게다가 그들은 끝없이 사업을 확장하면서도 자신의 부귀영화를 추구하지 않고 내세의 행복을 위해 근검절약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초기 자본주의의 자본축적이 일어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다른 문화권에서는 발생하기 힘든 근대 자본주의로의 도약이 가능하였다.**
칼뱅은 기존의 가톨릭에 대해서는 강력히 저항하였지만, 제네바에 구축한 자신의 교회 내에서는 일말의 비판도 허용치 않는 냉엄한 신정통치를 구사하였다. 그리하여 그에게 비판을 한 사람들은 모두 가차없이 처단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미 엄청난 종교 세력의 주요 교리가 된 칼뱅의 운명론 또는 예정론에 대한 비판은 오늘날에서조차 상당한 용기를 요구한다. 그것은 이 주제에 대한 오랜 숙려와 명확한 자기 정체성의 확신이 필요한 일이다.
이렇게 볼 때, 세상은 옳고 그름의 투쟁인지? 옳고 그름이 언젠가 밝혀질지 안 밝혀질지 모르지만, 그것은 당장은 중요치 않고 얼마나 많은 무리를 모을 수 있는 신념의 덩어리 간의 크기 싸움인지? 다시금 의문이 든다. 가톨릭을 비판하면서, 그 위에 세워진 프로테스탄티즘의 핵심 교리 또한 따지고 들면 양파껍질처럼 남는 게 별로 없는 독단적 성경 해석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니 역사의 교지가 더욱 두렵게 다가온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옳으며, 성공한다고 믿으면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무한한 성공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사람은 자기를 믿는 만큼 힘을 발휘할 수 있다. (2024.10.4)
Note:
*구글 검색창에 '칼뱅 예정론 성경'으로 클릭하면, 예정론의 성서적 근거에 대한 많은 비판 글들을 참조할 수 있다. 그 대신 칼뱅의 예정론의 입장에서 그 주요 성서적 근거는 마태복음 7장 15~20절의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이다.
**서구에서 근대 자본주의로의 도약이 가능했던 종교적 원인에는 천직(소명)과 예정설 외에 두 가지가 더 있다. 그 하나는 가톨릭의 고리대usury에 대한 탄압이었다. 이는 결국 적정 이자라는 개념으로 발전하여, 5~10% 정도의 이자수준을 상회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하였다. 이것이 이자에 대한 탄압이 자본주의 발전을 장기간 억제하였지만, 건전한 자본축적으로의 숨통을 틔워준 한 역설이다. 이러한 유럽의 이자율에 비해 동아시아의 이자율은 그 한계가 훨씬 더 높았던 것은 밀의 수율(1톨->4~5톨)에 비해 엄청나게 높았던 쌀의 수율(1톨->100~120톨)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전근대의 주요 산업은 농업이기 때문에 이자율도 농업의 생산력에 따라서 자금 배분의 시장논리에 따라 결정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신교를 믿는 범유럽의 네트워크이다. 서로 같은 종파를 믿는 사람들 간에는 정보 교환과 신뢰가 매개되어, 서로 믿고 교역을 하게 되고 또 낯선 식민지 환경에서도 협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제도경제학에서 말하는 거래비용을 감소시켜, 오늘날의 인터넷에서 보이는 저렴한 정보비용과 좋아요의 평판과 같은 안정성을 산업혁명의 격변하는 대륙간 교역에 제공하였다. 어떻게 보면 같은 신념을 가진 신교 종파간 신뢰의 네트워크가 또한 서구의 근대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칼뱅에 대해 갑자기 드는 생각은 그가 대단히 계시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루터의 경우에는 모든 것을 굉장히 숙고하여 하나씩 하나씩 제시하는 데 반해, 칼뱅은 자신만만하게 거침없이 주장하고 실천한다. 어떤 의미에서 루터는 엄정한 이성의 힘과 함께 용기를 갖춘 개혁가라고 한다면, 칼뱅의 경우는 계시를 받은 예언자 필feel이 난다. 사람들은 이성의 힘으로 뚜벅뚜벅 추진하는 신중하고도 강인한 지도자보다는 감성의 힘을 자극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명령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루터교 교회의 약세에 비해 칼뱅교의 강세는 그러한 일반 대중의 선택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종교 개혁은 이성의 루터가 이뤄냈으나, 그 과실은 감성의 칼뱅의 몫이 되는 것은 또 하나의 알 수 없는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2024.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