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인 물질주의 가치관 여전......", 2017.2.28.]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30여년이 지난 1980년대와 가치관이 너무 똑같아서 ‘우리가 이렇게 안 변했나’ 싶어 저도 당황했습니다.”
28일 전화로 연결된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말했다. 장 교수는 송호근ㆍ송복ㆍ김우창과 함께 쓴 책 ‘한국 사회, 어디로?’에다 ‘데이터로 본 한국인의 가치관 변동’이란 논문을 실었다. 앞선 3인의 글이 연대의식과 공공성이 부족한 한국 사회 문제점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면, 이 글은 경험적 연구 자료를 가지고 이 통찰을 검증한 것이다.
경험적 연구 자료는 1981년 미국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의 제안으로 시작돼 전세계적으로 지금까지 여섯 차례 조사가 진행됐고 지금 일곱 번째 조사가 진행 중인 ‘세계가치관조사’와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세계문화지도’다. 각 국가별 가치관에 대한 비교평가 자료로는 최고로 꼽힌다. ‘자기표현적 가치관’의 정도를 X축, ‘세속합리적 가치관’의 정도를 Y축에 놓고 가치관 조사를 한 뒤 국가별 평균을 좌표 위에 표시한 것이다.
잉글하트는 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일정 정도 소득이 증대되면 ‘탈물질주의’가 등장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질주의가 “경제성장, 권위주의적 정부, 애국심, 크고 강한 군대, 법과 질서”를 선호한다면, 탈물질주의는 “개인의 발전과 자유, 정책결정에 대한 시민의 참여, 인권과 환경을 중시하는 가치관”이다.
이에 따라 1981년 이후 세계 각국의 가치관 변화를 추적해보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증가에 따라 다른 국가들의 가치관은 역동적으로 변한다. 조금 더 세속적으로, 그리고 조금 더 자기표현에 능동적인 형태로 나아간다. 이 변동에 예외적인 국가가 중국, 핀란드, 그리고 한국 3개국이었다. 중국은 세속합리성이 원래 아주 높은 국가여서 변화 여지가 적다. 여기에다 인구나 영토 규모에서 “신뢰성 있는 전국 단위 사회 조사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핀란드의 경우 원래부터 “매우 높은 세속합리성과 자기표현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이 곳 역시 변화 여지가 적다.
이렇게 보면 한국은 세속합리성은 높으나 자기표현적 가치가 낮은 상태를 계속 유지한 특이한 국가다. “1981~1996년 기간 동안 명목 GDP상으로 무려 7배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변함없이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의 유일한 예외 사례”가 된다. 자기표현적 가치가 낮다는 것은 “경제와 안보를 중시하며 자민족중심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장 교수는 잉글하트를 따라서 각 국의 탈물질주의자 비율을 뽑아봤다. 그랬더니 미국 일본 등 다른 선진국들은 45% 수준인데 반해 한국은 14% 수준에 그쳤다. 대개 물질적 풍요는 심적 여유를 불러온다. 먹고 사는 문제를 떠나 조금 다른 것들을 찾아보게 하고 너그러워지게 마련이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것 없이 오히려 더 강팍해지는 쪽을 택했다는 의미다. 장 교수는 그 원인을 ‘불안’으로 풀어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불안한 것이다. 전쟁의 경험, 이념적 대립, 정치나 제도에 대한 낮은 신뢰 같은 것들이 자꾸만 불안을 만들어낸다. 장 교수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물질적 성장을 하고 싶어 애써 노력했고 대성공을 거두었으나, 탈물질주의 가치관으로 옮겨가지 못해 오히려 성장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정리했다.
탈출구는 있을까. “사회 전반적으로 ‘이제 조금 내려놔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던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한가지는 ‘명확한 학습’이다. 장 교수는 “불안을 완화하는 것이 복지인데 복지에 대해서도 ‘불안’이 적지 않다”며 “이 상황에서는 100원 증세한 뒤 100원 복지를 제공하는 식으로 차츰 나아진다는 경험을 확실히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조선일보, "중간으로 산다는 것", 2017.9.19.; 머니투데이, "'나라별 중산층 기준'......, 2013.8.13.]]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은 조르주 퐁피두 전 대통령이 제시한 '삶의 질' 공약 내용을 토대로 했다. 그러나 퐁피두 전 대통령이 제시했다고 알려진 기준에는 공분에 참여하는 것과 약자를 돕고 봉사활동을 한다는 내용은 없고, 대신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자립시킬 것 등 네 가지 기준이 추가된다. 영국(옥스포드대학이 제시한 '영국 중산층')과 미국(미국 공립학교가 제시한 '미국 중산층')의 기준에 대해 영국과 미국 대사관은 "처음 듣는 기준"이라며 "현재로서는 그 기준을 입증할 자료가 없다"고 전했다.
'나라별 중산층 기준'은 2007년 한 노동단체 간부가 기고한 '중산층 별곡'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간부는 "영국의 기준은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에서 본 것을 옮긴 것이고, 프랑스는 다른 책에서 읽은 것을 인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기준도 정확히 일치하는 조사 결과는 없다. 2015년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에서 당시 중위소득의 50%~150%에 해당하는 직장인을 상대로 조사해 중산층이라 불리는 이들의 평균 생활 모습을 통계로 냈다. 이들은 주로 본인 소유의 약102㎡(31평 정도) 아파트에 살며, 절반 이상인 62%가 중형급 이상의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다. 자녀 1인당 사교육비로 월 37.4만원을 지출하고 있었다. 응답자 절반 이상이 최근 3년 이상 해외여행을 가지 않았다고 답했으며 영화 관람 등 문화생활은 월 0.9회 정도에 그쳤다.
서양 선진국으로 가지 않고 우리와 같은 문화권으로 묶이는 중국, 일본과 비교할 때도 우리의 중산층에 대한 기준이 경제적 요소에 치우친 것은 사실이다. 지난 2012년 매경이코노미가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의 국민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한국인과 중국인은 중산층의 기본조건으로 소득, 주택, 금융자산을 꼽았고, 일본인은 소득에 이어 두 번째로 '일정 수준 이상의 상식과 시사지식'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자녀 세대 때 중산층의 기준으로 무엇이 중요한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 한국인은 500만원 이상 월평균 소득(16%), 일정 수준 이상의 금융자산(15%), 안정된 노후 보장(13%) 등 경제력과 관련된 조건들을 1~3위로 꼽았다. 하지만 중국인은 꾸준한 사회봉사와 기부(11%)를 2위로, 일본인은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14%)과 일정 수준의 상식과 시사지식(14%)을 3위로 선택했다.
각 나라 중산층의 기준과 함께 열거되는 '조선시대 중산층의 기준'은 사실 조선 중종 때 학자 김정국이 친구에게 쓴 편지에 써 있는 구절이다. 김정국은 기묘사화로 삭탈관직을 당했다가 복관되어 전라감사와 병조참의, 공조참의 형조참판 등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어느 날 오로지 재산 모으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한 친구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문화생활을 영위하고 사람 사이의 의리를 지키면서 세상에 대한 도의를 지키고 사는 것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