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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詩 그리고 예술

고봉준 & 황선희 & 정혜윤

by 조영필 Zho YP

고봉준 (2023), '인공지능(AI)은 시를 쓸 수 있는가', 비평문학 제89호.


... 권보연은 인공지능이 하는 것은 '창작'이 아니라 '생성'이고, 따라서 '쓰다'보다는 '짓다'라는 술어가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과정'의 언어와 '결과'의 언어가 구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김언은 '저자'의 존재를 강조하면서 '주인 있음을 지향하는 말'와 '주인 없음을 지향하는 말'을 구분한다. 그는 이때의 '저자'가 물리적인 차원에서의 '필자'와 달리 개성의 주체이며, 시에서 이것은 '나의'라는 수식어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치라고 주장한다.


영국의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가 1872년에 출간한 소설 <에레혼>은 '기계파'와 '반기계파' 간의 내전 이후 모든 기계 장치가 금지된 나라가 배경이다... 앨런 튜링도... "어느 단계가 되면 우리는 새뮤얼 버틀러가 <에레혼>에서 묘사하듯 기계가 주도권을 쥐는 상황을 예상해야 합니다."*...


* 앨런 튜링,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노승영 역, 에이치비프레스, 2019, 121쪽



독일의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인공지능의 시대, 인생의 의미>에서 '인간'을 '인공지능의 타자'라고 명명했다... 인간은 동·식물에 대해서는 '이성'을 강조하고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감정'을 강조하는 이율배반에 빠지게 된다...


... 저자를 상정하는 일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비평'이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소위 인공지능이 (인간과 협업을 통해) 생산한 시가 소위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순간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


... 김언의 주장은 시를 쓰는 입장에서 이야기한 것이고, 권보연의 주장은 시를 읽는 입장에서 이야기한 것이다...


...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 같은 개념을 떠올려보면 된다...


**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Punctum)**은 그의 저서 『밝은 방(Camera Lucida)』에서 제시된 중요한 사진 이론 개념입니다. 푼크툼은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개인적이고 강렬한 감정적 충격을 주는, 우연하고 예측 불가능한 어떤 세부 요소를 의미합니다. 바르트는 사진을 감상할 때 두 가지 요소가 작용한다고 설명합니다.

스투디움(Studium): 사진의 일반적인 의미, 사회적·문화적 코드, 작가의 의도 등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보도사진에서 전쟁의 참상을 인식하거나, 가족사진에서 평범한 행복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스투디움은 지식과 교양을 통해 인식되며, 우리를 사진으로 이끌어들이는 '흥미'의 영역입니다.

푼크툼(Punctum): 라틴어로 '찌르다', '상처를 내다'라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푼크툼은 스투디움과는 달리, 사진 속의 어떤 사소한 디테일이나 우연한 요소가 관람자의 내면을 갑자기 꿰뚫고 들어와 강렬한 감정, 슬픔, 충격 등을 유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이며, 사진가가 의도하지 않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서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롤랑 바르트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어린 시절 사진에서 어머니의 '어색하게 마주 잡은 손'에서 푼크툼을 느꼈다고 설명합니다. 이 작은 디테일이 그에게 어머니의 존재와 죽음에 대한 깊은 슬픔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참조 Gemini)



... 이미 인공지능이 생성한 예술 작품이 소위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인공지능(GAN)이 그린 초상화 '벨라미가의 에드몽 벨라미(Portrait of Edmond de Belamy)'가 높은 가격에 낙찰되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참조 Gemini)




황선희 (2024), '인공지능 시대의 시집 읽기를 위한 시론', 돈암어문학 제45집.


... 생성형 인공지능이 거짓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전달할 수 있는 만큼 그로 인한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높다...


그레엄 휴는 시인의 소외된 상황이 그의 유일한 구원책일 수 있다고...


* 그래엄 휴, '현대시', 박인기 편역, <현대시론의 전개>, 지식산업사, 2001, 65쪽.



... 로만 야콥슨은 시작품을 시작품이 아닌 것과 구분하는 경계선은 중국이라는 제국의 국경선만큼이나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노발리스와 말라르메는 알파벳을 최고의 시작품으로 여겼고, 러시아 시인들은 포도주 품목표, 러시아 황제의 의복 일람표, 기차 시간표, 심지어는 세탁소의 요금표에 나타나는 시적 자질을 찬양했다는 것이다.**


** 로만 야콥슨, '시란 무엇인가', 같은 책, 13쪽.



시를 쓰는 이유를 묻지 말아주십시오

그냥 쓴 것입니다

쓸 수밖에 없기에 씁니다


...


시를 쓴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


바람에 씌운 무당벌레의

날갯짓입니다


...


시를 쓰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긴 말을 하는 것입니다


길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시간의 혓바닥 위에서

아직도 더 할 말이 있을 때

그때 씁니다


...


--시아, '시를 쓰는 이유' 일부(슬릿스코프·카카오브레인, <시를 쓰는 이유>, 리멘워커, 2022, 26-27쪽.


나는 오래된 집에 산다

생나무를 때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


나는 나무의 나이테를 세어보며

시간을 짐작한다

지붕은 비가 새지 않는지

도통 관심이 없다


아버지는 생전에

술을 좋아하셨다

...


나는 아버지가 심어둔 나무의 가지를

하나씩 흔들어본다.

시간을 알기 위해서는

가지를 아주 많이 펴야 한다.

지붕의 이끼는 매년

풍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술을 마시며 아버지는 자주

바람 속에 나무의 나이테가 없다고

노래하셨다


...


--시아, '오래된 집' 일부(슬릿스코프·카카오브레인, <시를 쓰는 이유>, 리멘워커, 2022, 16-17쪽.


② AI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일은 놀이를 하는 것만큼 꽤 재미있었다... '시인'으로서 함께 골몰할 동료가 되어주었다...

-이소호, '작가노트-her' (<9+1>, 블루버튼, 2022, 194-195쪽)


③ AI와 작업하는 동안 시적인 것을 추려내는 것은 인간만이 가능한 작업이 아닐까 싶었다...

-주하림, '작가노트-시가 최초의 꿈을 함께 꿀 수 있을까' (<9+1>, 블루버튼, 2022, 220쪽)


인공지능 전문가 이재성은 Chat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의 놀라운 발전을 '이미 온 미래'라고 지칭한다***...


이재성, <챗GPT, 이미 온 미래>, 마이북하우스, 2023, 222쪽.




정혜윤 (2023),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공지능의 예술도 진정한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철학·사상·문화 제41호.


... 2022년 8월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의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인공지능이 생성해 낸 작품이 1등을 수상한 것이다. 수상작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은 게임 디자이너 제이슨 앨런(Jason M. Allen)이 '미드저니(Midjourney)'를 이용해 제작한 것이었다...


심사위원 중 하나였던(? 한 사람이었던) 칼 듀런(Carl Duran)은 이 작품이 인공지능에 의한 작품이란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고백했는데, 사실을 알게 된 후라도 이 ‘아름다운 작품‘에 대한 결정을 번복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 Metz R., 'AI won an art contest, and artists are furious', 2022. 9. 3.



감정 관련 작업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확률이 낮다는 전망이 무색하게도 인공지능은 이미 감정의 영역에 침투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교로봇이다... 소니에서 1999년에 처음 출시하여...


... 소니사는 부품 부족을 이유로 2014년 아이보에 대한 수리서비스를 중단했다. 전기로 작동하는 아이보와 평생을 함께 할 줄 알았던 아이보의 주인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 아이보도 함께 화장해 내세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수명을 다한 아이보를 모아서 일본 전통 장례를 치루는 아이보 합동 장례식이 열리기 시작했다... 식이 거행되는 동안 작별편지를 쓰고 눈물을 흘렸다.


** 디지털뉴스팀 기자, '로봇강아지 수리 중단으로 곤경에 처한 노부인', 2015.2.12.



... 세계 최초의 사교로봇으로 알려진 MIT의 키즈멧(Kismet)... 인류학자 캐서린 리차드슨(Kathleen Richardson)... 키즈멧을 제작한 MIT 실험실의 한 관계자는 키즈멧의 성공요인을 인간과 비슷하게 보이는 것에 잘 속는 인간의 성향에서 찾는다. 로봇들은 어떤 작은 단서에도 대상을 의인화하려는 인간의 성향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지 두 개의 눈과 하나의 입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Pals, P., 'Kismet MIT A.I. Lab', 2011.9.8.



... 예술 영역에서 활약하는 인공지능은 많은 경우 인간처럼 몸을 입고 있다. 일본의 샤프사가... 2016년에 개발, 공급하고 있는... '로보혼(RoboHon)'도 그 중 하나다... 일본 도쿄의 가전 양판점인 '츠다야가전'에서 연주회를... 2017년 국내 무대에도 올랐던 블랑카 리(Blanca Li) 컴퍼니의 작품 <로봇>에 출연한 로봇 무용수들도 마찬가지다... 일본 최초의 안드로이드 연극 <사요나라>(2010)에 출연한 '제미노이드 F'를 빼놓을 수 없다. 제미노이드 F는 눈을 깜빡이거나 입을 움직이는 등 65가지 표정연기를 할 수 있는데...**** 2016년 미국에서 열린 무그페스트에 출연한 인공지능 로봇 '시몬(Shimon)'의 연주 모습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시몬의 상체는 팔이 네 개인 점만 제외하면 인간의 상체와 비슷한데, 마림바를 연주하는 시몬의 동작은 인간 연주자의 몸짓과 매우 유사하다. 시몬은 고개를 돌려 인간 연주자와 눈을 맞추기도 하고... 리듬에 맞춰 상체를 자연스럽게 앞뒤로 흔드는 장면이다...


**** 신유리, '안드로이드 연극을 아시나요?', 2011.7.30.

***** Murphy, M. C. W., 'Shimon the robot jamming with a human marimba player at Moogfest', 2016.5.23.



고대인들은 '코레이아(choreia)'^*를 통해 '엔토우시아스모스'^** 상태에 빠져 신과 교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대의 영감론은 19세기에 낭만주의 영감론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예술이란 예술가가 몸소 체험한 감정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보다 정교하고 세련된 형식으로 출현한 것은 20세기의 '표현론'에서다^****...


^* 코레이아(Choreia)는 고대 그리스에서 춤, 음악, 시가 통합되어 미분화된 형태로 이루어지던 인간 활동의 형태를 의미합니다. 즉, 단순히 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 세 가지 예술이 어우러져 표현되던 종합적인 예술 활동이었습니다. 이는 **코로스(choros)**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는데, 코로스는 집단 춤을 뜻하며, 원시 부족이나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제의에서 추던 춤을 포함합니다. 이 코로스는 훗날 영어 단어 'Chorus'(합창)의 어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코레이아는 단순히 오락적인 활동을 넘어, 감정 표현과 영혼의 정화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이후 시대가 지나면서 음악과 시는 코레이아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인 예술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지만, 코레이아는 예술의 근원적인 통합적 형태를 보여주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조 Gemini)

^** 엔토우시아스무스(Enthousiasmos)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현대 영어의 'enthusiasm'(열정, 열의)의 어원이 됩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단순히 열정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깊고 철학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엔토우시아스무스는 주로 신(神)에게 홀린 상태 또는 신적인 영감을 받은 상태를 의미했습니다. 'en(안에)'과 'theos(신)'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신이 내 안에 있는' 상태를 뜻했죠. 이는 이성적인 판단이나 일반적인 감정 상태를 넘어선, 신비롭고 초월적인 경험을 나타냈습니다. 이러한 엔토우시아스무스는 주로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사용되었습니다.

① 종교적 제의: 디오니소스 제의 등에서 무아지경에 빠져 춤을 추거나 예언을 하는 상태를 일컬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사람들은 신의 메시지를 전달받거나 신적인 힘을 경험한다고 믿었습니다.

② 예술적 영감: 시인, 음악가, 예술가들이 작품을 창작할 때 받는 신적인 영감이나 광기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플라톤은 시인의 이러한 '신적인 광기'를 높이 평가하며, 단순히 기술적인 능력으로는 얻을 수 없는 창조적인 힘으로 보았습니다.

③ 철학적 통찰: 때로는 철학자들이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얻는 비합리적인 직관이나 깨달음을 엔토우시아스무스와 연결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엔토우시아스무스의 의미는 점차 종교적인 색채를 벗어나 어떤 일에 대한 강렬한 열정, 몰입, 그리고 깊은 흥미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용어로 확장되었습니다. 현대 영어의 'enthusiasm'이 바로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뿌리에는 여전히 '내 안의 어떤 비범한 힘' 또는 '무언가에 사로잡혀 자발적으로 몰입하는 상태'라는 뉘앙스가 남아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의욕을 넘어선, 마치 신들린 듯한 강렬한 몰입과 활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엔토우시아스무스는 고대 그리스의 신적인 영감에서 시작하여, 현대에는 특정 활동에 대한 깊은 열정과 몰입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참조 Gemini)

^*** 오병남, <미학개론>, 2003. 4쪽.

^**** 표현론을 대표하는 학자들로는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 로빈 콜링우드(R. G. Collingwood),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 수잔 랭거(Susanne Langer) 등을 들 수 있다.



예술의 본질이 감정의 표현에 있지 않다는 적극적인 주장은 모방론을 대신해 표현론이 득세한 이후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분야가 음악이다... 에두아르트 한슬릭(Eduard Hanslick)... 한슬릭은 '음으로 울리는 움직임의 형식들(Toenend bewegte Formen)'이야말로 음악의 전부라고 선언했다.^***** 음악을 들으며 깊은 감정에 빠져드는 것은 '병적인 정취'이며... 포도주에 취함에서 포도주의 본질을 찾는 것이나 마찬가지... 한슬릭의 입장은 형식주의라는 이름으로 계승되어 논리실증주의와 더불어 오늘날 음악에 대한 사고와 담론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에두아르트 한슬릭, <음악의 아름다움에 더하여>, 이미경 역, 2006.

^^* 한들릭의 형식주의와 맥을 같이 하는 조형예술분야의 입장으로는 클라이브 벨(Clive Bell)과 로저 프라이(Roger Fry),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의 형식주의가 있다.



환기되는 감정에 대한 배제는 현대미학의 담론에서도 나타난다... 인지론은 피터 키비(Peter Kivy)의 '윤곽선 이론'^^**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데...^^***


^^** 피터 키비(Peter Kivy, 1934-2017)는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중요한 음악 철학자입니다. 그의 **윤곽선 이론(Contour Theory)**은 음악이 어떻게 정서(감정)를 표현하는지에 대한 그의 독특한 설명을 담고 있습니다. 키비의 윤곽선 이론은 음악이 특정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이, 그 정서를 느끼는 사람의 행동이나 외적 표현(얼굴 표정, 몸짓, 말의 억양 등)의 '윤곽선' 또는 '형태'와 닮아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어떤 사람의 얼굴이 슬퍼 보인다고 말할 때, 그 사람이 실제로 슬픔을 느끼는지와는 별개로, 슬픔을 표현하는 보편적인 **외형적 특징(늘어진 입꼬리, 처진 눈썹 등)**과 그 얼굴의 형태가 유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키비는 이와 유사하게 음악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슬픈 음악은 일반적으로 느린 템포, 하강하는 선율(처지는 느낌), 단조(어두운 음색), 작은 음량 등의 특징을 가집니다. 키비는 이러한 음악적 특징들이 마치 슬픈 표정이나 슬픈 몸짓의 **'윤곽선'**과 유사성을 띠기 때문에, 우리가 음악에서 슬픔을 느끼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즉, 음악 자체가 슬픔을 느끼는 주체는 아니지만, 슬픔의 행동적 표현과 유사한 청각적 윤곽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키비 이론의 핵심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인지주의적 표현주의 (Cognitivist Expressivism): 키비는 음악이 정서를 불러일으킨다고 보지 않고, 음악이 정서를 표현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음악이 정서를 표현하는 것은 작곡가나 연주자의 실제 감정 상태 때문이 아니라, 음악 자체의 객관적인 속성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② 음악의 내재적 속성: 정서는 음악 외적인 요소(작곡가의 의도, 청자의 주관적 경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음악 자체에 내재된 음고, 리듬, 템포, 음색 등의 조합에서 비롯되는 윤곽선을 통해 인지됩니다.

③ 표현과 환기의 구분: 키비는 음악이 특정 정서를 '표현'하는 것과 청자에게 특정 정서를 '환기'(불러일으키는)하는 것을 명확히 구분합니다. 슬픈 음악을 듣는다고 해서 반드시 슬퍼지는 것은 아니며, 음악은 단순히 슬픔을 '표현'할 뿐이라는 것이죠. 이는 음악이 듣는 사람에게 감정을 직접적으로 '유발한다'고 보는 **유발주의(Arousalism)**와 대조되는 지점입니다.

키비의 윤곽선 이론은 음악미학에서 음악의 정서 표현성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그는 음악의 형식적 특성에 주목하면서도, 음악 외적인 요소인 정서와의 연관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음악의 형식주의를 강화하고 발전시킨 '개선된 형식주의(Enhanced Formalism)'의 대표적인 이론으로 평가받습니다. (참조 Gemini)

^^*** Kivy, P., Soun and Sentiment, 1999.



... 감정의 표현이나 전시와 전혀 무관한 것들이 있다. 존 케이지(John Cage)의 <4분 33초>(1952)...

...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샘>(1917)...

... 쥴리안 올리버(Julian Oliver)와 다냐 바실리예프(Danja Vasiliev)의 <뉴스트윅>도 그 중 하나다.^^**** '뉴스트윅'은 무선랜 라우터가 내장된 소형 단말기다...


^^**** 줄리안 올리버(Julian Oliver)와 다냐 바실리예프(Danja Vasiliev)의 작품 <뉴스트윅(Newstweek)>이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 2011년 인터랙티브 아트 부문에서 최우수상인 골든 니카(Golden Nica)를 수상했습니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이자 공학 기술 연구 기관, 박물관(Futurelab, Center)**입니다. 1979년에 시작되어 디지털 예술, 인터랙티브 미디어, 가상현실,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다루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매년 **프리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Prix Ars Electronica)**라는 권위 있는 상을 수여하는데, '인터랙티브 아트'는 이 상의 주요 부문 중 하나입니다. <뉴스트윅>은 줄리안 올리버(뉴질랜드/독일)와 다냐 바실리예프(러시아/독일) 두 작가가 협업하여 만든 인터랙티브 아트 작품으로, 뉴스 조작의 가능성을 폭로하고 미디어 리터러시를 촉구하는 '비판적 공학(Critical Engineering)' 프로젝트입니다.

이 작품은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벽 콘센트처럼 생긴 작은 장치입니다. 하지만 이 장치를 공공장소(예: 카페, 도서관 등)의 무선 인터넷 핫스팟에 연결하면, 근처에서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 등으로 뉴스 웹사이트에 접속하는 사람들의 뉴스를 몰래 조작하여 보여줄 수 있습니다. 사용자는 자신이 보고 있는 뉴스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합니다.

작품의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미디어의 신뢰성 문제: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 콘텐츠가 얼마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미디어의 정보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를 비판합니다.

② 네트워크 보안 취약점: 무선 네트워크의 취약점을 시각적으로 드러내어, 사용자들이 인터넷 환경에 대한 인식을 높이도록 유도합니다.

③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접하는 정보가 '사실'인지 '조작'인지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뉴스트윅>은 기술적인 해킹 기법을 예술적 맥락에서 사용하여, 일반 대중에게 복잡한 네트워크와 미디어의 작동 방식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에서 추구하는 예술과 기술, 사회의 융합적 가치를 잘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조 Gemini)



... 헤더 듀이 해그보그(Heather Dewey-Hagborg)의 작품 <스트레인저 비전스>(2015)를 들 수 있다. 해그보그는 벽에 걸려있는 그림의 유리 틈새에 낀 머리카락 한 올을 바라보던 중... 해그보그의 이러한 작업은 우리의 유전적인 정보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수집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뜻밖의 검열과 감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섬뜩한 일깨움을 준다.


... 감동평가의 문제다... 이러한 문제는 예술감상이 순전히 지각적인 문제만이 아니라는 데에서 발생한다.^^**... <전원교향곡>이 실은 베토벤이 '하이리겐슈타트 유서'를 쓰는 고통을 극복한 후 작곡한 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인간적인 가치를 높이 평가하려는 우리의 성향은 간혹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대량생산된 제품이 외관상 더 훌륭하고 쓸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비용을 기꺼이 감수하고 수작업 제품을 택하는 것이 그러한 경우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또 다른 인간적인 가치로는 '예술가와의 소통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