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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자 공부

고려와 조선의 출판문화

젬선생

by 조영필 Zho YP

고려와 조선시대의 출판문화에 대해 알려주시오


고려와 조선시대의 출판문화는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지식과 정보의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은 한국 출판문화의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1. 고려시대 출판문화

고려시대는 한국 인쇄술의 황금기였습니다. 불교 문화의 융성과 함께 대규모 목판인쇄가 발달했으며,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등장하여 책의 보급에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인쇄술의 발달

목판 인쇄: 신라 시대부터 발달한 목판 인쇄술이 고려시대에 이르러 최고 수준에 달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한 염원으로 제작된 초조대장경과 팔만대장경이 있습니다. 이들은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정교하고 조직적으로 제작되어 고려의 목판 인쇄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금속활자: 12세기 중반(인종 때)에 최윤의 등이 **『상정고금예문』**을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는 기록(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이 남아 있어, 고려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실용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은 1377년(우왕 3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직지)』**입니다. 이는 서양의 구텐베르크 활자본보다 70여 년 앞선 것입니다.


출판기관: 초기에는 주로 불경 간행을 위한 사찰 중심의 인쇄가 활발했습니다. 국자감에 서적포를 두어 책을 인쇄하고 유통시켰으며, 공양왕 4년(1392)에는 금속활자 인쇄출판 업무를 전담하는 서적원이 개설되기도 했습니다.


주요 출판물

불경: 초조대장경, 팔만대장경 등 불교 경전의 간행이 활발했습니다.

역사서: 『삼국사기』(김부식), 『삼국유사』(일연), 『제왕운기』(이승휴) 등 민족 의식을 반영한 역사서들이 출간되었습니다.

학술서: 유교 경전, 의례서(『상정고금예문』) 등이 출판되었습니다.


서적 유통: 주로 국가나 사찰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인쇄된 책은 교육기관이나 관청, 승려 등에게 보급되었습니다. 민간에서의 상업적 유통은 미미했습니다.


2. 조선시대 출판문화

조선시대는 고려시대의 인쇄술을 계승하고 더욱 발전시켜 활발한 출판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특히 국가 주도의 출판이 활발했으며, 후기에 들어서면서 민간의 출판 및 유통이 점차 확대되었습니다.


인쇄술의 발달

금속활자: 조선은 고려의 금속활자 기술을 이어받아 끊임없이 개량하고 발전시켰습니다.

- 계미자(癸未字): 1403년(태종 3년)에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고 주조한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입니다. 약 10만 자의 활자가 주조되었습니다.

- 갑인자(甲寅字): 1434년(세종 16년)에 주조된 활자로, 계미자의 단점을 보완하여 글자 모양을 네모 반듯하게 개선하고 인쇄 방식도 효율적으로 개량하여 인쇄 효율을 크게 높였습니다.

이후에도 병진자, 을해자 등 다양한 금속활자를 주조하여 인쇄술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목판 인쇄: 금속활자와 함께 목판 인쇄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주로 중앙의 교서관, 지방의 감영, 그리고 사찰이나 향교 등에서 목판을 이용하여 서적을 간행했습니다. 특히 『동국여지승람』, 『경국대전』 등 국가 주요 서적들이 목판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출판기관

국가 기관:

- 주자소(鑄字所): 금속활자의 주조와 인쇄를 담당하는 핵심 기관이었습니다.

- 교서관(校書館): 경전 인쇄, 향과 축문, 인신 등을 관장하며 주로 국가의 공식 서적을 출판하고 유통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전문적인 업무를 맡은 중앙 관청들도 각자 필요한 책을 출판했습니다. (예: 훈련도감, 관상감 등)

민간 기관:

- 사찰: 오랜 기간 불서를 출판한 경험을 바탕으로 문집, 족보 등 지역 사회에서 요구하는 출판을 담당했습니다.

- 서원: 유학자들의 서원을 중심으로 문집이나 학술서 간행이 이루어졌습니다.

- 개인: 개인적으로 문집을 인쇄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주요 출판물:

유교 경전 및 학술서: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에 유교 경전, 주자학 관련 서적, 역사서, 법전 등이 활발하게 출판되었습니다.

실용 서적: 의학서, 농업서, 과학 기술서, 지리서 등 백성의 생활과 국가 운영에 필요한 실용 서적들도 많이 간행되었습니다.

문학 작품: 시문집, 가사, 소설 등 다양한 문학 작품이 인쇄되었습니다.


서적 유통:

국가 보급: 조선시대 책의 출판과 유통은 기본적으로 국가에서 관리했습니다. 중앙 관청에서 출판한 책을 관리나 하급 관청, 교육기관 등에 보급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지방 관청: 중앙에서 보낸 책을 바탕으로 번각본(飜刻本)을 만들거나 필요한 책을 직접 인쇄하여 보급했습니다.

민간 서적 유통의 확대: 조선 후기에는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과 함께 민간에서도 상업적 서적 유통이 점차 활발해졌습니다.

- 책쾌(冊?): 서적상인 책쾌들이 전국을 다니며 책을 팔거나 구해다 주었습니다.

- 세책가(貰冊家): 18세기 중반 이후 등장한 책 대여점으로, 주로 소설 등 대중적인 책들을 유료로 빌려주면서 독서의 대중화에 기여했습니다. 특히 부녀자들의 소설 독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출판문화는 단순히 책을 만드는 것을 넘어, 지식의 축적과 확산, 문화 발전, 그리고 교육 보급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금속활자라는 독창적인 기술은 인류 문명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자랑스러운 유산입니다.



책을 찍어낼 때에는 한 번에 몇 부 정도 인쇄하였는가?


고려와 조선시대에 책을 인쇄할 때 한 번에 몇 부를 찍어냈는지는 인쇄 방식, 출판 주체, 책의 종류 등에 따라 달랐습니다.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추론과 기록을 통해 대략적인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고려시대는 목판 인쇄와 금속활자 인쇄가 함께 발달했습니다.


목판 인쇄:

팔만대장경과 같은 대규모 불경은 여러 번 인쇄하여 보급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목판은 한 번 새겨두면 필요할 때마다 계속 찍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팔만대장경의 경우 "몇 부를 인쇄했다"는 구체적인 기록은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규모와 목적(국난 극복 염원, 불교 진흥)을 고려할 때, 상당한 양이 인쇄되어 전국 사찰과 학승들에게 보급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반적인 목판 인쇄본도 필요에 따라 수십에서 수백 부 정도 인쇄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금속활자 인쇄:

금속활자는 소량 다품종 인쇄에 유리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즉, 여러 종류의 책을 소량씩 인쇄하는 데 적합했습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은 원래 2부가 인쇄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상하권 중 하권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필요에 따라 2~3부 또는 수십 부 정도만 인쇄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따르면 12세기 중반에 최윤의 등이 **『상정고금예문』**을 금속활자로 인쇄했는데, 강화도로 천도할 때 예관이 가져오지 못하여 28부를 인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금속활자 인쇄가 소량 다품종에 적합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국가 주도의 인쇄가 매우 활발했으며, 특히 금속활자 인쇄가 크게 발전했습니다.


금속활자 인쇄:

조선 초기에는 주자소에서 계미자, 갑인자 등 다양한 금속활자를 주조했습니다. 이렇게 주조된 활자로 국가의 중요한 정책서, 법전, 유교 경전, 역사서 등을 인쇄했습니다.

주로 관청, 교육기관(성균관, 향교), 지방 관찰사 등에 배포할 목적으로 인쇄했기 때문에, 한 번에 수십 부에서 많게는 수백 부 정도 인쇄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를 들어, 『계미자본 시경』 같은 경우 100여 부를 찍어 보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확한 인쇄 부수에 대한 기록은 부족하지만, 활자가 주조된 후 꽤 오랫동안 사용되었고, 후기로 갈수록 활자의 마모가 심해졌다는 기록을 통해 지속적으로 인쇄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목판 인쇄:

금속활자와 달리 목판은 제작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지만, 한 번 완성하면 오랫동안 대량 인쇄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대중에게 널리 보급해야 할 책 (예: 『삼강행실도』, 『농사직설』, 『구급방』 등의 교화서나 실용서적)은 주로 목판으로 인쇄했습니다. 이런 경우 수백 부에서 수천 부 이상도 인쇄했을 수 있습니다.

지방 감영이나 사찰, 서원에서도 목판 인쇄가 활발하여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서적을 간행했습니다. 이 역시 필요에 따라 대량 인쇄가 가능했습니다.


요약

고려시대 금속활자: 주로 소량 인쇄 (수십 부 이내)

고려시대 목판: 대량 인쇄가 가능했으며, 불경 등은 상당한 양이 인쇄되었을 것으로 추정

조선시대 금속활자: 국가 주도로 인쇄되었으며, 주로 관청 및 교육기관 보급용으로 수십에서 수백 부 인쇄

조선시대 목판: 대중 보급이 필요한 서적의 경우 수백에서 수천 부 이상도 인쇄 가능


결론적으로, 인쇄 기술과 목적에 따라 인쇄 부수는 크게 달랐습니다. 금속활자는 소량 다품종에, 목판은 대량 인쇄에 적합했기에 그 특징을 살려 책을 찍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목판이 금속활자보다 시간과 돈이 더 드는 것인가?


아닙니다. 목판 인쇄가 금속활자 인쇄보다 초기 투자 비용이 적게 들고 제작 과정도 상대적으로 단순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비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반면 금속활자는 초기 투자 비용이 매우 높고 제작 과정이 복잡하지만, 일단 제작되면 다양한 책을 대량으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인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목판 인쇄 (木板印刷)

제작 과정

1) 목판 준비: 나무(대추나무, 배나무, 가래나무 등)를 적절한 크기로 자르고, 물에 담가 나무결을 안정화한 후 건조하고 평평하게 다듬습니다.

2) 원고 붙이기: 인쇄할 내용이 적힌 원고를 목판에 뒤집어 붙입니다.

3) 판각(刻字): 숙련된 각수(刻手)가 글자를 하나하나 정교하게 새깁니다. 글자의 주변을 파내어 글자가 양각으로 돌출되게 만듭니다. 이 과정은 매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고도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4) 인쇄: 판각이 완료된 목판에 먹을 바르고 종이를 얹어 문지르거나 눌러서 인쇄합니다.


비용과 시간

초기 제작 비용: 한 장의 목판을 판각하는 데 드는 비용은 상당히 높습니다. 특히 각수의 인건비와 나무 재료비가 주요 비용입니다. 한 페이지의 내용이 변경될 때마다 전체 목판을 다시 새겨야 하므로, 오탈자를 수정하거나 내용을 바꾸는 것이 어렵고 추가 비용이 듭니다.

시간: 판각 작업에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예를 들어, 각수는 평균적으로 하루에 1판을 새기는 데 3일이 소요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대규모의 책을 인쇄하려면 수백, 수천 개의 목판을 만들어야 하므로 엄청난 시간과 인력이 투입됩니다.


장점:

한 번 제작된 목판은 마모될 때까지 계속해서 찍어낼 수 있어 대량 인쇄에 유리합니다 (특히 불경처럼 내용 변화가 적은 경우).

글자의 크기나 서체에 제약이 적고, 삽화나 그림을 함께 새기기 용이합니다.


단점:

수정 및 재활용이 어렵습니다. 한번 판각된 목판은 수정이 어렵고, 다른 책을 인쇄하는 데는 재활용할 수 없습니다. 즉, 책마다 새로운 목판을 만들어야 합니다.

보관에 부피가 크고, 나무의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 뒤틀리거나 갈라질 수 있습니다.


금속활자 인쇄 (金屬活字印刷)

제작 과정:

1) 글자본 만들기: 인쇄할 글자의 글자본을 만듭니다.

2) 어미자(母子) 만들기: 글자본을 바탕으로 흙이나 나무에 한 글자씩 어미자를 새깁니다.

3) 밀랍활자 만들기: 어미자를 이용하여 밀랍으로 활자(낱개 글자 모형)를 만듭니다.

4) 주형(鑄型) 만들기: 밀랍 활자 모형을 흙으로 된 주형 안에 배열하고 밀랍을 녹여 빼내면, 그 자리에 금속을 부을 수 있는 빈 공간(주형)이 생깁니다.

5) 활자 주조: 녹인 금속(주로 구리 합금)을 주형에 부어 식힌 후, 깨뜨려 낱개의 금속활자를 만듭니다.

6) 활자 다듬기: 완성된 활자를 다듬고 정리합니다.

7) 조판(組版): 인쇄할 책의 내용을 따라 낱개의 활자를 조판틀에 배열하고 고정시킵니다.

8) 인쇄: 조판된 활자판에 먹을 바르고 종이를 얹어 인쇄합니다.


비용과 시간

초기 제작 비용: 금속활자를 처음 주조하는 데에는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이 들어갑니다. 금속 재료비, 주조 기술자 및 인력, 그리고 활자 주조를 위한 설비 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태종이 계미자를 만들 때 "백성에게서 비용을 거두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며 종친과 훈신에게 비용을 대도록 권한 것에서도 초기 비용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간: 활자를 주조하고 조판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소요되지만, 이는 한 번의 초기 투자에 해당합니다.


장점:

재활용과 효율성: 한 번 제작된 금속활자는 수많은 종류의 책을 찍어낼 수 있으며, 내용 변경이나 오탈자 수정이 매우 용이합니다. 활자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내구성: 금속 재료이므로 나무 목판보다 내구성이 강하여 오랫동안 사용이 가능합니다.

보관 용이성: 낱개의 활자로 분리하여 보관할 수 있어 목판보다 보관이 용이합니다.


단점:

초기 투자 비용이 매우 높습니다.

각 활자 간의 간격 조절이나 정렬이 어려워 조판 과정이 복잡하고 인쇄 품질이 목판에 비해 고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초기 활자).


결론

결론적으로, 초기 제작 비용만 본다면 금속활자가 목판보다 훨씬 많은 돈과 기술, 시간이 듭니다. 금속활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금속 주조 기술과 대량의 금속 재료, 그리고 활자를 만들 숙련된 장인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한 종류의 책을 아주 대량으로 인쇄하거나, 삽화가 많은 책이라면 목판이 유리합니다. (예: 팔만대장경)

다양한 종류의 책을 소량씩 자주 인쇄하거나, 내용을 자주 수정해야 하는 책이라면 금속활자가 훨씬 경제적이고 효율적입니다. (예: 관청의 문서, 학술서, 역사서)


조선시대에 국가 주도로 금속활자 인쇄가 발달한 것도 바로 이러한 효율성과 재활용성 때문이었습니다. 다양한 관찬 서적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인쇄하여 보급해야 할 필요성이 컸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목판과 금속활판 중 어느 것이 더 활발하였는가?


고려와 조선시대의 출판 문화에서 목판 인쇄와 금속활자 인쇄는 각자의 장단점 때문에 함께 활용되었으며, 특정 시기나 목적에 따라 어느 한쪽이 더 활발하게 사용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시대별 인쇄 방식의 활발성


1. 고려시대

목판 인쇄가 압도적으로 활발했습니다.

불교의 영향: 고려는 불교가 국교였기 때문에 방대한 불경을 인쇄해야 할 필요성이 컸습니다. 초조대장경과 특히 팔만대장경은 목판 인쇄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처럼 대량으로, 그리고 영구히 보존해야 할 불경은 목판 인쇄가 가장 적합했습니다.

기술의 안정성: 목판 인쇄는 이미 신라 시대부터 발달하여 안정적인 기술이었습니다.


금속활자는 발명되었으나, 보급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하는 등 혁신적인 기술을 선보였지만, 초기 금속활자는 제작 비용이 매우 높고 조판이 까다로워 대량 인쇄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주로 국가의 중요 서적이나 소량 인쇄가 필요한 경우에 사용되었으며, 일반 민간에까지 널리 보급되기는 어려웠습니다.


2. 조선시대

조선시대는 고려시대의 인쇄 기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며 두 인쇄 방식 모두 활발하게 활용했지만, 그 양상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조선 전기 (건국 ~ 임진왜란 이전)

국가 주도의 금속활자 인쇄가 활발했습니다. 태종 때 계미자, 세종 때 갑인자 등 국가에서 금속활자를 주조하고 주자소를 설치하여 유교 경전, 법전, 역사서 등 국가 운영에 필수적인 서적을 인쇄했습니다. 금속활자는 다양한 종류의 서적을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수정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목판 인쇄도 중요하게 활용되었습니다. 특히 『삼강행실도』, 『농사직설』처럼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하고 교화해야 할 목적의 서적이나, 내용의 변화가 적고 대량 보급이 필요한 서적은 목판으로 인쇄되었습니다. 목판은 한 번 새기면 수백, 수천 부를 찍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 (임진왜란 이후)

목판 인쇄가 더욱 활발해지고 대중화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을 거치며 활자 대부분이 유실되고 국가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금속활자 제작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민간의 출판 활동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서원, 사찰, 그리고 개인 문중에서 문집, 족보, 실용서적 등을 목판으로 간행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특히 **방각본(坊刻本)**이라 불리는 민간 출판업자들이 소설, 가사 등 대중적인 문학 작품을 목판으로 대량 인쇄하여 상업적으로 유통시켰습니다. 이는 독서 인구의 증가와 문화적 수요 변화에 따른 것으로, 목판 인쇄가 지식과 오락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국가에서도 금속활자 외에 목활자(나무 활자)를 사용하거나,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을 다시 목판으로 복각하여 간행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물론 국가 주도의 금속활자 주조와 인쇄는 여전히 이어졌지만, 민간의 폭넓은 출판 활동을 고려하면 목판 인쇄의 전반적인 활용 빈도와 보급량은 더 많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전체적으로 볼 때, 목판 인쇄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꾸준히, 그리고 더 넓은 범위에서 활용되었으며, 특히 대량 보급과 민간 출판의 활성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금속활자는 한국 인쇄술의 혁신적인 발명품이자 기술적 우위를 보여주지만, 주로 국가 주도의 중요 서적 인쇄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고, 보급량 면에서는 목판 인쇄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총체적인 활용도와 보급 규모를 고려하면 목판 인쇄가 더 활발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