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

김영식

by 조영필 Zho YP

[1984년 민음사 간]


22/ 코페르니쿠스의 이같은 변혁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구조가 지니는 몇 가지 문제점을 해결해 주었다. 이 문제점들 중 첫째는 지구를 주위로 한 행성들의 배열의 순서와 그것들의 주기의 문제였다...

23/ 두번째 문제는 행성들의 <역운동retrograde motion>의 문제이다... 결국 프톨레마이오스가 채택한 설명은 epicycle이라는 것을 사용해서 가능했다. 즉 행성이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단순한 원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 4(a)에서 보는 것처럼 원 주위-이 원을 deferent라고 부른다-에 중심을 둔 작은 원(epicycle) 위를 돈다는 것이다...

24/ 프톨레마이오스 우주구조의 세번째 문제는 내행성과 태양 사이의 거리의 한계에 관해서 나타난다...

25/ 코페르니쿠스의 변혁에 의해 해결이 된 프톨레마이오스 우주구조의 문제점은 비단 이것들만이 아니지만 여기서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예만 더 들기로 하겠다. 지구에서 관측했을 때 행성이 지구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주기가 항상 일정하지 않은 것이 그것인데 그림6이 코페르니쿠스 우주구조에서 이를 보여주고 있다...

26/ ...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변혁이 위와 같은 행성의 운동에 관한 천문학적 문제들을 잘 설명해 주었지만 그 결과로서 천문학 외적인 문제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따라서 프톨레마이오스 우주구조를 깨뜨리는 일은 그와 결부된 아리스토텔레스 우주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28/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무거운 물체가 떨어지고 가벼운 물체가 올라가는 것에 대한 설명이다. 코페르니쿠스의 변혁에 의해 지구가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니면 무거운 물체가 굳이 일개 행성에 불과한 지구의 중심을 향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는 중심인 지구서부터 맨바깥의 항성천구까지가 어느 정도의 거리를 지닌 유한하고 꽉 째인 우주였는데 코페르니쿠스의 변혁은 이것을 깨뜨렸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구조 내에서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기 때문에 지구에서 별을 관측할 때 지구의 위치의 차이에 따라 그림 7에서 보는 것 같은 시차parallax가 관측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것이 관측되지 않았고 따라서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구조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지구와 항성천구의 거리가 그동안 생각해 오던 것에 비해서는 아주 멀다는-거의 무한히 멀다는-결론을 내리게 되었으며 이는 결국 우주의 크기가 거의 무한이 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우주의 크기가 무한하다면 그러한 우주에 있어서 <중심>과 같은 관념은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그렇게 근본적은 아니었지만 더 직관적인 문제로 만약에 지구가 하루 한 바퀴의 빠른 운동을 한다면 왜 그 위에 사는 사람이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도 있었고, 왜 지구 위에서 던져 올린 물체가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지는 동안 지구가 움직였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제자리에 떨어지는가 하는 문제도 생겨났다...


29/ ... 행성의 운동상의 문제들에 대해서 천문학자들이 정성적인 설명을 하는 것은 간단해졌지만 그들이 행성의 위치와 운동을 정량적으로 정확하게 기술하는 데 있어 지니는 어려움은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구조에도 존속했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의 이유는 실제로 행성의 운동이 등속원운동이 아니라 부등속 타원운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구조 두 가지가 다 행성의 운동을 등속원운동들로 기술하는 데 있다... 단순한 원운동 하나로는 불가능하고 위에서 본 epicycle 또는 eccentric, equant 같은 것들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타원운동을 나타내 주기 위해서 도입한 epicycle을 역운동을 위해 도입한 epicycle과 구분하기 위해서 minor epicycle이라고 부른다...

31/ ... 따라서 이런 간단함을 이유로 해서 코페르니쿠스의 변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실제 계산이나 수치와는 무관한 간단함, 조화로움 등을 중요시하는 독특한 미적 감각-우리가 흔히 정연한 논리전개나 간단한 수학적 증명에서 느끼는 종류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능력-을 지닐 것이 요구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미적 감각을 당시 유럽에 널리 퍼져 있던 신플라톤주의의 분위기가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신플라톤주의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당시의 아리스토텔레스 일색의 풍조에 대한 반발에 의해 플라톤의 사조를 부활시킨 것으로서 15, 16세기에 주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크게 떨쳤다...


33/ ... 코페르니쿠스 우주구조를 토대로 해서 극도로 신비적인 우주관을 펴다가 처형되었던 브루노 같은 사람은 그 대표적인 예가 되겠으며 그 후에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수용에 큰 역할을 한 케플러나 갈릴레오 등도 강력한 신플라톤주의자였다...


34/ ...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 우주구조의 기본요소인 천구는 그대로 존재했고 행성과 지구는 여전히 이 천구들에 고정되어 돌도록 되어 있었다. 더구나 당초 별자리의 하루 한 바퀴의 회전을 나타내 주기 위해 도입되었던 항성천구가 지구의 자전에 의해 더 이상 소용되지 않은데도 그대로 정지한 채 남겨져 있게 되었다... 이 세번째 회전운동이 필요없었으리라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36/ ... Kuhn이 코페르니쿠스의 De Revolutionibus가 <혁명적revolutionar>이었다기보다는 <혁명을 시작하는revolution-making> 것이었다고 얘기한 것은 이같은 한계성을 지적한 것이다.


이같은 코페르니쿠스의 한계성은 케플러와 갈릴레오가 깨뜨려 주었다. 케플러는 등속원운동에의 고수에서 벗어나서 행성에 부등속타원운동을 적용시켰으며 갈릴레오는 코페르니쿠스의 변혁이 제기하는 역학적 문제점을 파고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37/ ... 그러나 티코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구조를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시차parallax를 관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순전히 천문학적 관측결과만을 놓고서 티코의 구조는 코페르니쿠스의 구조와 <수학적으로 동등mathematically equivalent>했던 것이다. 또한 티코의 구조는 프톨레마이오스구조의 기본요소인 천구의 존재에도 일격을 가했다...

40/ ... (케플러)그는 당시 발표된 길버트William Gilbert(1540-1603)의 <자석에 대해서De Magnet>(1600)에 영향 받아 태양에서 방출되는 자기적 힘에 의해 행성이 움직인다는 대답을 하기도 했다...



[2001년 아르케 출판사 간]


19/ 먼저 1500년경의 유럽의 과학은 그리스의 과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에 전체적인 기초를 두고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갈레노스의 생리학, 유클리드의 기하학 등으로 보완된 내용이었고, 이런 내용이 중세유럽의 스콜라 학풍에 휩쓸려서 극히 사변적이고 지엽적이고 세부적인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1700년경에는... 코페르니쿠스에서 시작해서 케플러, 갈릴레오 등을 거쳐 뉴튼에서 완성을 본 새로운 천문학 및 우주구도를 비롯해서, 갈릴레오에서 시작해서 데카르트, 호이겐스를 거쳐 역시 뉴튼에서 완성을 본 고전역학, 베살리우스 이래 계속된 해부학적 지식과 하비에 의해 얻어진 피의 순환이론을 통해 자리잡힌 생리학, 데카르트, 페르마 등을 거쳐 뉴튼과 라이프니츠에 이른 새로운 수학 등의 참신한 내용으로 넘쳐 있었던 것이다.


22/ 과학상의 위기는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책이 출판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시작이 있고서도 본격적인 위기의 진행이 있기에는 6, 70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에는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1600년대에 들어서서야 본격적인 위기의 내용이 되는 현상과 사건들이 활발히 일어나고 1620-40년 사이에 위기는 극에 달했다. 갈릴레오, 케플러, 하비, 데카르트 등의 업적이 모두 이 시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과학상의 위기는 16세기 초 종교개혁이 시작된 후 천천히 진행되다가 그 후 잦은 종교전쟁 등으로 17세기 초에 극에 달한 정치, 사회의 위기와 평행해서 나아갔다...


... 이런 조화있는 우주구조는... 지상계-천상계-신의 세계로 삼분화된 우주구조... 인간의 지식도 감각-형태visible form-본질idea이나 자연철학physics-형이상학metaphysics-신학theology의 3분화된 구별로 지어지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교회-신, 왕-교황-신, 평민-귀족-왕, 인민-변호사-법정, 장인-길드guild-고객patron 등의 여러 사회구조가 모두 이처럼 3분화된 체계에 맞아들었다...


이런 가운데 15, 16세기에 이르면서 도시, 상인, 대학, 기술자 등 이런 안정화된 구조에 맞아들지 않는 새로운 그룹이 세력을 가지기 시작했다... 신자가 신과 직접 접함으로써 중간의 교회나 교황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든 루터의 종교개혁은 이의 가장 커다란 예가 되었다... 실제로 17세기 초가 되어서는 이런 3분화된 구조 중 거의 모든 것이 다 깨져 버리고 남은 것은 우주구조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우주구조마저 깨어지는 현상이 바로 과학혁명이었던 것이다.


25/ ... 우주구조가 깨어지면서 새로운 우주구조와 그에 바탕한 우주관이 들어서게 된다... 18세기의 계몽사조는 이러한 뉴튼과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프랑스 혁명이나 미국 독립혁명 같은 민주주의 혁명의 바탕에 이런 사조가 깔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