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마테오 리치Mattep Ricci(利瑪竇)는 천주실의에서 중국의 이기론 중 理에 대해서는 상세히 논했지만, 氣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氣를 근원요소로 하여 생동하는 음양오행설을 대체하여, 서구의 사원소론을 소개하였다. 그는 물질의 세계가 四行, 즉 물, 불, 공기, 흙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하였다. 이때 그는 공기를 단순히 氣로 번역하여, 이기론에서 氣 개념이 가지고 있는 세상 만물(생물 및 물질)의 질료로서의 포용력을 부정하였다. 따라서 리치의 관점에서 이기론과 음양오행설은 4원소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기를 근원물질로 하여 설명하는 이상한 논리였던 것이다.
음양오행설에 대한 보다 결정적인 공격은 마테오 리치 이후 알퐁소 바뇨니Alfonso Vagnoni(高一志)가 1633년에 <공제격치空際格致>를 저술하여 사행론을 전론專論하면서 본격화 되었다. 그 1장 ‘元行性論’에서 쇠와 나무가 원소가 될 수 없다(則金木不得爲萬物之元行也 又誰不知金木者 實有水火土之雜乎 雜則不能爲元行矣)는 점을 밝히고, 그 2장 ‘氣行有無’에서 공기가 색깔이 없어서 오행에 넣지 않은 점은 잘못된 것이라 하여 그 증거를 여섯 가지로 밝히고 있다(古或以氣無色 不屬五 外司疑爲無有 此說大謬 可証者有六).
오행五行에서 木과 金이 보다 근본적인 다른 원소들의 화합물에 불과하다는 지적과 더불어, 근본원소에 공기가 결여되어 있다는 주장은 동양인들에게도 그 문제점이 충분히 수긍되었다. 따라서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음양오행 비판에서는 이러한 지적이 항상 레파토리처럼 답습된다. 그러나 마테오 리치가 행한 중국의 氣 개념의 불명확한 정의에 대한 공격을 통해, 단순히 氣를 공기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시각은 홍대용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실학자들이 4원소 중 새로 도입된 공기 또는 氣의 위상과 개념에서 혼란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오행설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비판은 오행의 상생/상극설에 대한 비판이었다. 김문용(2005)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공제격치>에서 ‘수생목(水生木)’의 예를 들어 진행되는데, 우선 나무에는 물뿐이 아니라 불과 흙도 들어있다고 하여 내부 구성요소의 측면에서 나무가 물로부터 생성된 것일 수 없음을 논증한다. 다음으로는 씨를 심을 흙과 태양의 불이 없이 물만으로는 나무를 생성할 수 없다고 함으로써 외부 환경요인의 측면에서 반증을 시도한다. 이러한 논증/반증 작업은 ‘수생목’에 ‘목생화(木生火)’를 결합하여 고려함으로써 더 흥미 있게 진행된다. 나무가 불을 생성한다면 나무도 매우 뜨거운 것일 텐데, 매우 차가운 성질의 물이 어떻게 매우 뜨거운 성질의 나무를 생성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다시 ‘수극화(水克火)’를 결합하여 논의를 진전시켜 간다. ‘수생목’ ‘목생화’에 따르면 물은 불의 할아버지 격인데 할아버지와 손자가 어떻게 상반되고 상극할 수 있는가를 문제삼는다. 그리고 끝으로 역(易) 주(註)에서 말하는 수․화․목․금․토의 생성 순서가 상생 순서와 다른 점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오행의 상생상극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4원소론이 우주천체론 설명에 확장 적용되면서 오행설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는다. 이로 인해 오행설은 이때 이미 그 영원한 진리의 자격에 흠결이 생기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한반도의 우리가 음양오행적인 사고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지식의 관성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의 눈을 가리는 습속(국뽕)의 고착 때문일까?
그러나, 오행설과 관련된 논의만으로는 근대 동서양의 서로 다른 사고방식과 소통 과정을 충분히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왜냐하면, 오행설에 앞서 이기론 또한 세상을 인식하는 형식으로서의 타당성 여부에 대해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는 理와 상제上帝, 그리고 천주天主 간의 관계가 마테오 리치가 주장한 補儒론의 이데올로기로만 이해될 수는 없겠다는 단서를 라이프니츠의 시각을 통해 발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이기론의 보편적 의미에 대해서도 시간과 주의가 할애될 전망이다.
안종수 (2010), '마테오 리치의 리기관', 철학논총 제60집, 제2권, 4. 리치의 기관
리치는 리(理)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설명했지만 기(氣)에 대해서는 그만큼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도 천주실의 에 나오는 몇 가지 말들을 종합해 보면 기에 대한 그의 생각을 어느 정도 알 수가 있다. 우선 그는 기를 공기로 이해하였을 뿐이고, 중국철학에서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시 말해 리치는 물질의 세계가 사행(四行), 즉 물, 불, 공기,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는데 중국의 기가 바로 공기라고 생각했다.
그가 따랐던 사원소설은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가 주장한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대로 수용한 이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4원소설을 믿었는데 이들 네 가지 원소는 그 무게에 따라 제자리가 서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가장 무거운 흙이 우주의 중심에 자리 잡고 그 둘레에 물이 덮여 있으며 다시 그 둘레를 공기가 싸고 있으며, 불은 제일 바깥에 있다고 설명했다. 리치는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원소설을 그대로 따랐다. 리치는 <천주실의>에서 사원소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불, 공기, 물, 흙이라는 네 원소[四行]가 서로 결합하여 생성되지 아니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불의 성질은 뜨겁고 마르게 하는 것이니 물과 배치됩니다. 물의 성질은 차고 습합니다. 공기의 성질은 습하고 뜨거워서 흙과는 배치됩니다. 흙의 성질은 마르고 차갑습니다. [물과 불, 공기와 흙은] 둘이 서로 대치되고 맞서게 되면 자연히 필연적으로 서로를 해치게 됩니다. [四行]이 일단 한 사물 속에 함께 결합되어 있으면, 그 사물이 어찌 오랫동안 평화로울 수 있겠습니까? 그 사이에 때때로 서로 다투고 싸우는 것을 면하지 못하며, 단지 한쪽으로 승(勝)하게 되면 그 사물은 필연적으로 부서져서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이 네 원소를 가진 사물은 소멸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천주실의> 상권, 서울대학교출판부, p.128.)
리치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네 가지 원소의 결합으로 생겨났고, 그 원소들은 서로 배치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결국은 소멸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투쟁을 하게 되고, 어느 한쪽이 이기게 되면 그 사물은 파괴되고 만다. 여기서 리치가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영원하게 존재하지 못하고 유한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 눈에 띈다.
이러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던 리치가 볼 때, 신유학의 기론(氣論)은 네 가지 원소 가운데 하나를 가지고 세운 이론일 뿐이다. 그래서 리치는 “만약〔선비께서〕기(氣)가 하나의 원소[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면, 그 [공기의] 본체와 작용을 설명해 드리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또한 저 ‘공기’[氣]는 물, 불, 흙, 세 원소들과 함께 만물의 형체가 되는 것입니다”(<천주실의> 상권, 서울대학교출판부, p.188.)라고 말하였다. 리치가 볼 때 신유학의 이론으로는 만물이 소멸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하지만 리치가 기를 단순히 4원소 가운데 하나인 공기로 이해한 것은 그가 신유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 것 같다. 신유학에서는 말하는 기는 공기를 포함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존재이다. 리치가 말한 물, 불, 흙도 사실은 모두 기로 이루어진 물질일 뿐이다.
나아가서 신유학에서는 물질뿐만 아니라 영혼이나 정신도 모두 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활동능력을 가진 존재는 모두 기로 만들어진 것이다. 서양에서는 사람의 정신이나 영혼은 물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라고 믿었다. 그것이 물질과 다른 점은 무엇보다도 장소를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활동력을 가지고 있는 중요한 존재이고 물질보다 더 차원이 높다. 신유학에서는 정신이나 영혼이 기이기 때문에 장소를 차지하는 존재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천주실의 에서 중국 선비는 영혼 불멸설이 옳지 않은 이유를 제시하면서, 만약 영혼이 사라지지 않으면 이 세상에 너무 많은 귀신들이 생겨나지 않겠냐고 물었던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서양 선비는 대답하기를 “이런 것을 의심하는 것은 우주가 아주 광활함을 인식하지 못하여 쉽게 [우주 공간]이 채워지리라 생각이 드신 것 같습니다. 또한, ‘정신’[神, spirit]의 성질과 양태를 이해하지 못하여 그것들도 장소를 차지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형체 있는 것은 장소[所, 공간] 안에 있기 때문에 공간을 채웁니다. ‘정신’은 형체가 없으니 어떻게 공간을 채울 수 있겠습니까?[곡식] 한 낱알의 크기에도 온갖 만신(萬神)들이 깃들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영혼이 장소를 차지한다고 생각하는 중국 선비는 귀신이 너무 많아지는 일을 걱정하였지만 영혼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믿는 서양 선비는 그런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해명한다. 존재하는 데 공간이 필요하지 않기에 아무리 많은 영혼이 존재하더라도 공간문제는 없다. 이것이 중국과 서양 사이에 보이는 영혼
관의 근본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양에서만 장소를 차지하지 않는 존재를 생각한 것은 아니다. 신유학에서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바로 리이다. 부피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서양의 영혼은 신유학의 리와 같다. 그리고 서양에서 영혼불멸을 주장하듯이 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주희에 의하면 기는 생성하고 소멸하지만 리는 생성과 소멸이 없고 처음부터 영원히 존재한다.
기는 영원한 존재가 아니기에 기로 이루어진 모든 것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소멸할 수밖에 없다. 하늘의 구름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듯이 기로 만들어진 모든 존재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사람의 정신과 영혼도 역시 기로 되어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흩어져서 소멸하게 된다. 그래서 중국 선비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의 ‘정신’[神]이나 혼(魂)이 죽은 뒤에 흩어져 없어진다는 말은 ‘정신’을 기(氣)로 여기는 것일 뿐입니다. 기(氣)의 흩어짐에는 ‘바른 것’[速]과 ‘점진적인 것’[漸]의 차이가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명대로 죽지 못하면 그 기(氣)가 아직도 모여 있는 것이요, 오랜 기간이 지나야 점차적으로 사라집니다. 정(鄭)나라의 백유(伯有)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백유는 정나라의 귀족이었는데 귀족들의 권력투쟁 때문에 노(魯)나라 양공(襄公) 30년(B.C. 543)에 살해당하였다. 그런데 8년 후인 소공(昭公) 7년(B.C. 535)에 귀신으로 나타나서 정나라의 귀족들을 놀라게 했다.
이 이야기는 춘추좌전 에 나오는데 이것을 중국 선비가 요약해서 설명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주자(朱子)는 명대로 죽지 못하거나 원한이 있는 경우에는 간혹 그 기가 금방 흩어지지 않고 남아 있다가 나중에 사라지게 되는 수도 있다고 보충해서 설명했다.
신유학에서는 사람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다. 몸과 마음은 모두 기로 되어 있지만 그것을 이루는 기는 서로 다르다. 몸을 이루는 기가 잡박하다면 마음을 이루는 기는 아주 순수하다.
사람이 죽게 되면 육체도 점차 분해되지만 기로 이루어진 영혼도 마찬가지로 분해되어 흩어져 버린다. 육체는 사라지지만 영혼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영혼불멸설을 신유학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단지 영혼의 기가 사라지는데 어떤 경우는 빨리 또 어떤 경우는 조금 늦을 수도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와 같은 신유학자들의 주장에도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영혼도 기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고 리도 함께 있을 터인데, 사람이 죽으면 영혼을 이루었던 리는 어떻게 되는가? 영혼을 이루었던 기는 사라지는 것이 분명하지만 리는 사라질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여기에 대해서 신유학자들이 충분한 대답을 한 것 같지 않다. 기와 영혼을 동일시하는 신유학자들의 견해에 대해 리치는 사람의 영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래서 서양 선비는 중국선비에게 이렇게 설명하였다.
"기(氣)를 귀신이나 영혼[과 똑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은 사물들의 부류에 대한 실제 이름[實名]을 문란하게 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세우려면, 모든 ‘부류’의 ‘관념’[理, 즉 ousia]들이 각각 그 ‘부류’에 합당하게 본래대로 이름을 지어야 합니다. 옛날 경서(經書)에서 기(氣)를 말하고, 귀신을 말하는 글자가 같지 않았다면 그것들의 이치 [즉 관념]들 역시 다른 것입니다. 귀신들에게 제사 지낸 일은 있었지만 기(氣)에게 제사 지냈다는 것은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처럼 귀신과 ‘기’는 서로 기본 ‘관념’이 다르기 때문에 마땅히 그 ‘이름’들이 서로 달라야 하는데], 어째서 오늘날 [중국의]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을 문란하게 사용하는 것입니까?"
서양 선비는 신유학자들이 귀신이나 영혼이 기라고 말하는 것은 이름을 문란하게 하는 일이라고 나무란다. 실제로 경서를 살펴보아도 귀신이 바로 기라는 설명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것은 경전에 없다는 사실을 근거로 중국 선비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그러나 서양 선비의 반론에는 억지가 없지 않다. 신유학에서는 귀신도 결국은 기의 조화일 뿐이라고 본다는 것인데, 서양 선비는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 일은 있었지만 기에 제사 지내지는 않았다고 논박하였다. 그렇다면 다이아몬드를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 탄소를 귀중하게 여기는 것과 같은가?
육체와 정신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는 리치는 그것을 하나로 보려는 신유학자들의 이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리치에 따르면 육체는 스스로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살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다른 존재가 있어야 한다. 그런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정신이나 영혼이기에 그것은 육체와 같은 차원의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만약 기(氣)를 ‘정신’[神]으로 보고 살아서 움직이게 하는 근본으로 생각한다면, 살아 있는 것이 무슨 연유로 죽게 되는 것입니까? 사물이 죽은 뒤에도 기(氣)는 [그 사물의] 안과 밖에 여전히 가득 차 있습니다. 어디 간들 기(氣)를 떠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것들이 ‘기’가 없어서 죽는다”고 어째서 걱정합니까? 따라서 ‘기’는 [사물들을] 살아서 움직이게 하는 근본이 아닙니다."
리치의 견해에 따르면 사람의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이다.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떠나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영혼이 육체를 떠날 수 있는 것도 그것이 육체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와 정신이 같은 것이라면 육체와 같은 것이어서 분리될 수가 없다는 말이다.
리치가 이런 주장을 하게 된 이유는 중국 선비가 먼저 “기(氣)로써 만물들이 만들어지나, 만물들은 [그 모양으로] 부류가 달라집니다. 물고기가 물속에 있으면, 물고기 밖의 물과 뱃속에 있는 물이 동일하고, 쏘가리[鱖魚] 뱃속의 물과 잉어 뱃속의 물이 동일한 것과 같습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치는 신유학자들이 말하는 기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것 같다. 신유학자들이 모든 것은 기로 되어있다고 주장했지만 그 기가 모두 동일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이 세상에 동일한 사물이 둘이 존재할 수 없듯이 기라고 해서 다 같지는 않다.
돌이나 흙을 이루는 기가 있는가하면 동물을 만드는 기도 있고, 사람이 되는 기도 있을 것이다. 또한 사람의 정신이나 영혼이 되는 기도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도 모두 같지가 않으니 그 사람들의 영혼도 마찬가지로 동일하지는 않다.
송영배 (1995), '천주실의의 내용과 그 의미'.
이탈리아 마체레타Macereta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1552-1610)는 1582년에 마카오에 왔다. 그리고 <천주실의> 집필을 위한 대강의 자료를 모아(1595년), 초고를 탈고하고(1596년), 1601년, 마카오의 예수회로부터 정식출판 허가를 받고, 1603년 북경에서 출판한다. 풍응경馮應京(1555-1606)이란 유력 인사가 쓴 서문(1601)에서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천주실의>는 대서방국 이마두利瑪竇 및 그의 수도회원들이 우리 중국인과 문답한 글이다...
배주연 (2017), '한문서학서 <공제격치> 연구', 한국고전연구 37집, pp. 227-250.
주22: 1장 ‘元行性論’에서 쇠와 나무가 원소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밝히는 부분(則金木不得爲萬物之元行也 又誰不知金木者 實有水火土之雜乎 雜則不能爲元行矣)
주23: 2장 ‘氣行有無’에서 공기가 색깔이 없어서 오행에 넣지 않은 점은 잘못된 것이라 하여 그 증거를 여섯 가지로 밝힌 부분(古或以氣無色 不屬五 外司疑爲無有 此說大謬 可証者有六)
주27: 한문서학서를 통해 사행론을 동양에 처음 소개한 사람은 마테오 리치로 <천주실의>에서 불/공기/물/흙을 '사행'이라 명명하였고 <건곤체의乾坤體義>의 사원행론四元行論이라는 장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그러나 한문서학서 중에서 사행론과 관련하여 가장 주목할 만한 저작은 <공제격치空際格致>로 <건곤체의>의 사원행론이 24쪽 분량으로 쓰여진 데 반하여, 이 책은 전체 2권 145쪽 분량에 체계적인 장/절로 구성되어 있다.
김문용 (2005), '조선후기 한문서학서의 사행론과 그 영향', 4. 사행론의 의도와 성격.
한문서학서 사행론의 정체를 확인하는 데는 그 기본 개념을 탐색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몇 개의 기본 개념들이 사행론의 뼈대를 이룬다면, 그것의 이러저러한 적용 사례는 사행론의 살에 해당한다. 사행론의 뼈대와 살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중세의 토미즘에 이르기까지 순수 서양적 전통 속에서 형성된 것이 중심을 이룰 테지만, 중국의 언어․문화적 환경이나 저자인 중국 주재 선교사들의 종교적 의도에 의해 부분적으로 변형될 수 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는 사행론 저작 속에 드러나는 저자의 의도나 목표를 중심으로 사행론의 사상적 성격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사행론 저작 속에서 매우 쉽게 발견되는 사실의 하나는 그것이 동양의 오행론 전통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오행론의 행 개념과 대비하여 원행 개념을 제기하고, 원행이 다섯이 아니라 넷인 점을 논증하는 것 자체가 이미 오행론 비판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논의는 대체로 사행론의 개념 체계 내에서 진행되는 것으로서, 객관적인 설득력이 약할 뿐만 아니라 사행론의 사상적 성격을 가늠해 보는 데도 큰 의미가 없다. 오행론 비판과 관련한 사행론의 의도는 사행론과 오행론의 구성 요소의 차이점을 논하거나 오행론의 상생/상극설을 직접적인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데서 잘 드러난다.
제일 먼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오행에 포함되어 있는 금․목이 원행일 수 없는 까닭을 논증하는 부분이다. 그 논증 방식을 압축하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이다. 첫째, 금․목이 사람․곤충․조류․포유류(人蟲鳥獸) 즉 동물의 구성 요소가 아닌 점을 든다. 둘째, 금․목은 수․화․토의 합성물에 지나지 않음을 든다. 그러면서 만약 합성물도 원행일 수 있다면 원행은 비단 다섯에 머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서경 의 「대우모(大禹謨)」․「홍범(洪範)」에서 언급한 오행은 민생에 절실한 것을 말하는 것일 뿐, 원행 즉 만물의 근본(本)이나 근원(所從出)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이 마지막 주장은 이후 조선후기 실학자들에게서도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반면에 오행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기행의 존재를 논증하는 방식은 조금 특이하다. 여기서는 기가 원행임을 논증하기보다는 기 즉 공기가 실재하는 것임을 논증하는 데 치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두 여섯 개의 논거가 등장하는데, 그 중에는 “기가 없다면 하늘 안쪽이 텅 비어 땅이 그 가운데 위치할 수도 없다.”는 식의 우주론적 논거와 “사람이 공중에 채찍을 휘두르거나 탄환을 쏠 때 소리가 나는 것은 바로 공중에 기가 있기 때문”이라는 경험적 논거가 혼재되어 있다. 이러한 주장은 요컨대, 옛날에는 기가 직접 감각되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잘못이라는 데로 모아진다. 이러한 논의는 비록 기행을 직접 논증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공기가 광범위하게 실재함을 설득력 있게 논증함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사행론의 신빙성을 제고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오행론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비판은 오행 상생/상극설의 오류를 지적하는 데 있다 할 것이다. 상생/상극설 비판은 <공제격치>에서 ‘수생목(水生木)’의 예를 들어 진행되는데, 우선 나무에는 물뿐이 아니라 불과 흙도 들어있다고 하여 내부 구성요소의 측면에서 나무가 물로부터 생성된 것일 수 없음을 논증한다. 다음으로는 씨를 심을 흙과 태양의 불이 없이 물만으로는 나무를 생성할 수 없다고 함으로써 외부 환경요인의 측면에서 반증을 시도한다. 이러한 논증/반증 작업은 ‘수생목’에 ‘목생화(木生火)’를 결합하여 고려함으로써 더 흥미 있게 진행된다. 나무가 불을 생성한다면 나무도 매우 뜨거운 것일 텐데, 매우 차가운 성질의 물이 어떻게 매우 뜨거운 성질의 나무를 생성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다시 ‘수극화(水克火)’를 결합하여 논의를 진전시켜 간다. ‘수생목’ ‘목생화’에 따르면 물은 불의 할아버지 격인데 할아버지와 손자가 어떻게 상반되고 상극할 수 있는가를 문제삼는다. 그리고 끝으로 역(易) 주(註)에서 말하는 수․화․목․금․토의 생성 순서가 상생 순서와 다른 점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상생/상극설은 오행론의 핵심적인 기제에 해당하는 만큼, 그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오행론에 결정적인 위해를 가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것은 조선후기 학자들의 오행론 비판․극복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고, 결과적으로
오행론 비판이 사행론의 중요한 면모임을 확인케 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물론 한문서학서의 작자들은 오행론 이외에 불교의 사대설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언급을 남겨놓았다. 건곤체의 에서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 가운데 풍(바람)이 기와 다르고 지(땅)가 토와 달라서 그것들이 순체일 수 없다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사대에 대한 비판의식은 오행론에 대한 그것보다는 전면적이지도 않고 강렬하지도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사행론 저작에서 오행론 비판에 이어 다음으로 두드러지는 면모는 이론의 적용 범위가 지구의 우주론적/기상학적 환경에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지구의 기상학적 환경에 대한 논의를 검토해 보자면, 언뜻 보기에 그것은 매우 체계적이라는 인상을 갖게 된다. <공제격치>의 「원행생물론장」은 38개의 기상학적 현상을 화․기․수․토에 분속하여 배치하고, 사행론의 개념과 원리를 동원하여 그것들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루는 기상학적 현상은 눈․비․바람․안개․우뢰․번개 등 통상적인 것들 외에, 화표(火熛)․운굴(雲窟)․밀이(蜜飴)․지내화(地內火) 등 중세인들의 눈에 비친 신비적인 자연 현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경우가 많다.
따지고 보면 그 현상들에 대한 사행론적 설명 역시 그다지 균형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편이다. 요컨대 지구의 기상학적 환경에 대한 사행론의 논의는 중세학술적 성격을 강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지구의 우주론적 환경에 대한 논의는 어떠한가? 어떤 면에서 사행론의 개념 체계는 본래 중세의 우주론을 바탕으로 다듬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제격치>는 원행․원정․원동 개념 이외에 원행의 차례․형태․두께․성질(情)․운동(動) 등의 항목을 두어 원행론을 보강하였는데, 여기에 드러나는 관점이나 지식도 대체로 중세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었다. 그러한 점은 지구설을 중심으로 한 다음의 몇 가지 우주론적 입장을 통해서 분명히 드러난다.
사행론으로부터 도출되는 지구 관련 우주론을 순차적으로 나열해 보자면 첫째가 지구구형설이다. 이것은 토행이 제일 무거워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다는 데서부터 쉽게 추론되는 것이지만, 공제격치 에서는 흙이 사방으로부터 허공의 중심으로 서로 다투어 모이고, 그것이 응결하여 구형을 이룬다고 함으로써 그 까닭을 분명히 한다. 두 번째는 지구중심설이다. <공제격치>에서는, 만약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지 않다면 해와 달이 가장 멀리 떨어져 마주보고 있을 때 지구의 그림자가 달을 가릴 수 없어 월식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지구 위의 장소에 따라 우주의 중심으로 향하는 힘의 크기와 방향에 차이가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원행설로부터 도출되는 세 번째 견해는 지구정지설이다. 공제격치에서는 땅은 성질이 매우 무거우므로 상하․사방의 공간 안에서 반드시 가장 낮고 깊은 곳에 이르고자 하고, 일단 그 곳에 이르면 반드시 안정되어 다시 움직이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만약 다시 움직인다면 이는 본성을 거슬러 상승하는 것인데, 그 무거운 것이 어찌 상승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이 때 땅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이 장소를 이동하지 않는다는 것뿐 아니라 회전하지 않는다는 것까지도 포함하는 것이었다. 결국 사행론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모두 부정하고 재래의 천동설을 지지하는 논거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오행론 비판이 한문서학서 사행론의 사상적 기능의 소극적인(negative) 형태라면, 지구설 중심의 우주론 논증은 그 적극적인(positive) 형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자연관 또는 자연학의 측면에서 한편으로는 동양적 전통을 불식하고, 다른 한편으로 서양 중세의 전통을 피력하고자 했던 한문서학서 작자들의 의도가 그대로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사행론이 지구구형설․지구중심설․천동설과 같은 서양 중세의 우주론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는 동시에, 공교롭게도 동양적 자연학의 핵심적 이론 기제의 하나인 오행론과 적절히 대응하는 형태를 띄고 있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하였다. 이러한 공교로움으로 인하여 사행론은 결국 서학의 유력한 이론 가운데 하나로 확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