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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Mar 18. 2021

바둑

조영필

바둑




1
돌이 움직인다

自由의 대오(隊伍)를

보무(步武)처럼 포복(匍匐)처럼

손가락 끝에 실린 기백으로

꿈틀거린다


무채색(無彩色)의 군복 단단히 여미고

사각의 골대 속으로

첨벙!

웅덩이를 피해

뛰어든다

 


2
돌이 아프다


두점머리 세점머리를

텅, 하니 얻어맞고

돌이 아프다고 한다


깨어져도 가루가 되어도

아픔을 몰라야 하는

이놈이 글쎄

오염된 물고기도 아닌데

흰 배 검은 배 떠올리며

아프다 아프다 한다


데굴데굴 구르며

제자리에서

가슴을 쩌릿쩌릿 울려가며

아프다 아프다 한다


  

3
돌이 웃는다

돌이 운다

표정없이 소리없이


게걸스레 먹어댄다

피 흘린다

밥통 없이 염통 없이


피톨 뿐인 피가

두점머리 되고 세점머리가 되어

쑥 쑥 잘도 기어나온다



4
집을 짓겠다는 것인지

여기저기 말뚝을 친다


전쟁과 평화의 기병대가

휘익 쓸고 간 자리에는

점과 선을 이용한 한 폭의 추상화


고치고 고치고 허물고

빼고 더하는 괴로운 실험이 이어진다



5
세력(勢力), 세력, 세력의

바람이 불어온다


가끔씩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서

대우주(大宇宙)를 경영하겠다는데

미친 사람 취급하며 비웃던 자들, 이젠

그 무서움을 안다


지금 어느 지점(地點)에서

실현되지 않은 이상을 차지하고

산목(散木)을 움틔우는 돌이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6
천하에

시큼 새큼 매콤 달콤

맛이 많아도

이 맛은 따를 수 없어요


그것은 진정

감질나고 징그러운 것이어서

뒷맛이라

부끄러워 하지요


저 필연의 무중력(無重力)지대를

혼신(渾身)의 염발(焰魃)로 걷는다 해도

이 뒷맛을 냄새 맡으면

없던 힘도 다시 솟네



7
여린 껍질 매만지며

탈출을 다듬는다


빨간 모자의 구령소리

군화 속은 피멍들고

고개는 숙였어도

눈빛만은 덮지 않았다


중대엣---  차렷!


저며오는 전율을 마시며

다시금 탈출을 다듬는다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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