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바둑
1
돌이 움직인다
自由의 대오(隊伍)를
보무(步武)처럼 포복(匍匐)처럼
손가락 끝에 실린 기백으로
꿈틀거린다
무채색(無彩色)의 군복 단단히 여미고
사각의 골대 속으로
첨벙!
웅덩이를 피해
뛰어든다
2
돌이 아프다
두점머리 세점머리를
텅, 하니 얻어맞고
돌이 아프다고 한다
깨어져도 가루가 되어도
아픔을 몰라야 하는
이놈이 글쎄
오염된 물고기도 아닌데
흰 배 검은 배 떠올리며
아프다 아프다 한다
데굴데굴 구르며
제자리에서
가슴을 쩌릿쩌릿 울려가며
아프다 아프다 한다
3
돌이 웃는다
돌이 운다
표정없이 소리없이
게걸스레 먹어댄다
피 흘린다
밥통 없이 염통 없이
피톨 뿐인 피가
두점머리 되고 세점머리가 되어
쑥 쑥 잘도 기어나온다
4
집을 짓겠다는 것인지
여기저기 말뚝을 친다
전쟁과 평화의 기병대가
휘익 쓸고 간 자리에는
점과 선을 이용한 한 폭의 추상화
고치고 고치고 허물고
빼고 더하는 괴로운 실험이 이어진다
5
세력(勢力), 세력, 세력의
바람이 불어온다
가끔씩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서
대우주(大宇宙)를 경영하겠다는데
미친 사람 취급하며 비웃던 자들, 이젠
그 무서움을 안다
지금 어느 지점(地點)에서
실현되지 않은 이상을 차지하고
산목(散木)을 움틔우는 돌이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6
천하에
시큼 새큼 매콤 달콤
맛
맛이 많아도
이 맛은 따를 수 없어요
그것은 진정
감질나고 징그러운 것이어서
뒷맛이라
부끄러워 하지요
저 필연의 무중력(無重力)지대를
혼신(渾身)의 염발(焰魃)로 걷는다 해도
이 뒷맛을 냄새 맡으면
없던 힘도 다시 솟네
7
여린 껍질 매만지며
탈출을 다듬는다
빨간 모자의 구령소리
군화 속은 피멍들고
고개는 숙였어도
눈빛만은 덮지 않았다
중대엣--- 차렷!
저며오는 전율을 마시며
다시금 탈출을 다듬는다
(199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