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영남2동

조영필

by 조영필 Zho YP

영등포 영남2동



서울로 이사 간다고 동네 구석구석 휘파람 날리고 손가락 달력에 이모가 표해준 매니큐어에 신이 난 영등포 영남2동 좁은 골목길 빼꼼한 뒷문턱 너머 다섯 식구 화투판처럼 누운 지붕 낮은 단칸방


시골에선 배우지도 않은 구구단을 벌써 끝내고 이쁜 여자 선생님이 교과서에 없는 이국적 노래에 춤까지 추며 가르쳐 주던 과연 서울


시큼한 공기는 저녁 시가의 불빛을 루오의 그림처럼 머금고 리어카 가스등 향내에 끌려 형들이 혀를 다시는 멍게엔 무슨 맛이 있을까? 저 큰길가 빌딩의 길게 내려걸린 큰 간판 허바허바사장은 무슨 뜻일까? 궁금하기 그지 없건만 왜 물어보지 않았는지 궁금한 서울


공동수돗가와 공동변소가 동네 세 사는 사람들을 모으는 길 건너 어른 키 몇 곱이나 되어보이던 공장 담장 너머 아버지께서 큰맘 먹고 그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신 축구공을 바로 그날 큰형이 뻥 차 넘겨버렸을 때의 가슴 가득하던 우울


말만 꺼내면 웃는 급우들 “선생님예~" 해야 하는데 "선생님." 하고마는 서울말의 매정


아버지는 3개월이나 일자리를 찾아다니고 머리 큰 형들은 집 따라오는 친구들을 피하느라 부끄러웠다지만 철 모르던 내겐 그저 그립기만한 가족사의 한때 콧물나는 서울




(1993. 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