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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Apr 30. 2021

병자(病者)

조영필

병자




팔이 안으로 굽어도 지구가 태양을 돌고 그 모계의 고루한 대가족마저도 우주의 중심은 아니라는 것을 신학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듯이 어느 낯 모르는 몇 세포의 만남과 분열 이후 수없이 많은 세대를 거쳐왔을 내 몸 속의 병균들아! 이제는 그대들의 세계에서도 인체를 무작정 훼손시킨 죄과를 짊어지고 싱싱한 다른 몸을 찾아 가장 우수한 종균들만 체액과 먼지의 캡슐에 태워 이주시킬 준비가 되었는가? 달에 발을 디딘 최초의 인류가 바라본 녹색의 희망을 격리수용해야 마땅하다는 환경회의의 안건이 별세계의 공감을 점차 넓혀가는 차제에 아비 없이 태어나 외동으로 숱한 시인들을 거느려온 불임의 달은 이미 사자(死者)인가? 성자(聖子)인가? 흡연과 운동, 음주와 독서의 뚜렷한 사계절에 이상기온 현상이라면 오히려 길조라고 날뛰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나의 병균들아! 블랙홀에서 함께 퇴적될 너희의 세포분열이 내어다 보지 못하는 미래에 병(病)은 곧 에너지라며 허공에서 곰보자국의 달이 거울 같은 미소를 짓는데 오, 중력이 사랑이라면 간을 맞출 때는 달팽이를 쓰세요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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